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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Nov 24. 2024

야생화

좋았던 기억만 그리운 마음만

좋았던 기억만, 그리운 마음만, 니가 떠나간 그 길 위에 렇게 남아 서 있다

야생화, 박효신




아빠가 계신 요양 병원에 다녀왔다.


나와 아빠가 다정한 부녀사이였냐고 묻는다면 반은 그렇고 반은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의 관계는 그랬다. 다정한 듯 서먹하고 어색한듯 애틋한 그런관계, 아빠와 나의 관계는 그랬다.


노총각이었던 아빠는 직장에서 엄마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에 성공했다. 나는 그런 아빠 막내딸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다른 집 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아빠가 있었고, 아빠에게는 친구들보다 나이가 조금 어린 두 딸이 있었다.


빠른 성공 곡선을 그리던 아빠의 삶에 두 딸의 성장 곡선은 상대적으로 더디게만 느껴졌고, 그런 아빠의 인생 최고 전성기에 우리는 고작 초중생이었다.

두 딸의 학비로 씨름해야 하는 시기에 아빠는 이른 퇴직을 했다. 퇴직금과 종잣돈으로 계획한 아빠의 일들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지 않으며 아빠는 많은 날  여러가지 고민들을 하셨다.

하지만 그 고민을 공감해드리기에 나는 어리고 철없었다.


아빠와 나의 삶의 속도와 시기에서 온 차이들은 우리사이의 공간을 넓혔고 그 공간만큼 우리는 멀어지고 때로는 나는 아빠를 원망하고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많은 날 그렇게 어색하고 서먹하게 필요할때만 아빠를 찾으며 지냈다.


요즈음 아빠를 볼때마다 우리가 이별할 때가 점점 가까워 진다는 생각을 한다. 야윈 아빠의 다리를 보며 질병의 무게를 느낀다.

아빠가 우리 곁에 언제까지 계셔 주실지 모르겠다.
는 아빠를 대단히 애뜻하게 느끼는 딸은 아니었을것도 같은데, 그런 아빠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이어폰 너머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다가 버스에서 오열 하고 말았다.


흘러나온 노래는 박효신님의 야생화였다.
박효신은 야생화에 자신의 인생을 빗대어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전혀 다른 나의 상황에서 왜 이리 이 노래의 가사가 내 마음을 슬프게 하는지 모르겠다.

아빠와의 좋았던 기억들만 떠올라서, 그 날들이 너무 그리워서, 어리고 작았던 나의 삶에 눈부시게 빛나던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서, 아빠가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것만 같아서, 그 멀어짐을 내가 잡을 수가 없어서...
너무 슬프다...

야생화
                                  박효신


하얗게 피어난 얼음꽃 하나가
달가운 바람에 얼굴을 내밀어
아무 말 못했던 이름도 몰랐던
지나간 날들에 눈물이 흘러
차가운 바람에 숨어 있다
한줄기 햇살에 몸 녹이다
그렇게 너는 또 한번 내게 온다

좋았던 기억만
그리운 마음만
니가 떠나간 그 길 위에
이렇게 남아 서 있다
잊혀질 만큼만
괜찮을 만큼만
눈물 머금고 기다린 떨림 끝에
다시 나를 피우리라

사랑은 피고 또 지는 타버리는 불꽃
빗물에 젖을까 두 눈을 감는다
어리고 작았던 나의 맘에
눈부시게 빛나던 추억 속에
그렇게 너를 또 한번 불러본다

좋았던 기억만
그리운 마음만
니가 떠나간 그 길 위에
이렇게 남아 서 있다
잊혀질 만큼만
괜찮을 만큼만
눈물 머금고 기다린 떨림
끝에 다시 나는

메말라가는 땅 위에
온몸이 타 들어가고
내 손끝에 남은
너의 향기 흩어져 날아가
멀어져 가는 너의 손을
붙잡지 못해 아프다


살아갈 만큼만
미워했던 만큼만
먼 훗날 너를 데려다 줄
그 봄이 오면 그날에
나 피우리라 라 라
라라라 라 라 라
라라라 라 라 라라 라 라
라라 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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