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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Nov 16. 2024

아빠의 배려

아빠는 나의 아빠로, 나는 아빠의 딸로 우리 다시 만나요

'아빠 천국에서 편히 쉬세요. 아빠는 다시 또 나의 아빠로, 나는 아빠의 딸로 우리 그 곳에서 다시 만나요. 사랑해요.'


아빠의 발인 날은 날씨가 정말 좋았다. 햇빛이 쨍하고 공기도 청명했다. 아빠를 모시기로 한 선산에 도착했을 때, 풀냄새와 꽃향기가 코를 찌르고 상쾌한 공기가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아빠는 그렇게 좋은날 가셨다.


거짓말처럼 발인이 끝나고 며칠간 비가 내렸다. 눅눅하고 축축한 날씨가 지속됐다. 아빠는 마지막 가시는 날까지 모두를 배려하셨다. 아빠가 가시는 길, 함께하는 모든 이가 편하게 오라고 좋은 날씨에 그렇게 가셨다.


"그래도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었다는게...정말 부러워요."

아버지를 심근경색으로 여읜 지인이 나에게 말했다. 지인의 아버지는 일년 전, 아침일찍 등산을 다녀오겠다고 나가서 저녁에 차가운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아빠는 다발성골수종 진단 받은 후 약 1년 4개월동안 투병하셨다. 그 시간동안 우리는 아빠의 컨디션이 조금씩 조금씩 나빠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날 우리에게 이별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걸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아빠가 가시기 한 달 전부터 아빠의 혈압이 불안정했다. 반복된 감염증상으로 아빠의 몸은 많이 상해있었다. 통증은 심해졌고 아빠는 많이 힘들어 하셨다. 우리는 돌아가면서 아빠의 주치의와 면담을 했다. 주치의는 일관되게 우리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주었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컨디션은 점점 안좋아지실겁니다."

우리는 모두 아빠와의 이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아빠를 보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기도는 하나라는 것을 알았다.

"아빠...아빠가 원하는대로 해드리고 싶어요. 조금만 더 힘내시라고, 이겨내시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이제 아빠 편안하시라고 기도드려요. 아빠 아프지마세요. 우리가 아빠를 많이 사랑해요. 우리를 위해 괴로움도 아픔도 참고 힘을 내고 있는거라면, 우리가 아빠의 그 마음 다 알았으니 이제는 아빠가 원하는대로 하세요. 아빠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날 밤 병원에서 전화가 왔을때만해도 이틀 후 아빠가 세상을 떠날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늘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지만 그 상황이 나의 현실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혈압도 산소포화도도 모두 낮았지만 그래도 아빠는 그 힘든 상황에서 우리에게 다시한번 시간을 주셨다. 아빠와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말이다.


아빠가 계셨던 요양병원은 보호자 상주가 불가능했다. 아빠는 병원의 치료실에 나와 여러가지 모니터를 달고 계셨고 우리는 그런 아빠의 곁을 지켰다. 간호사가 아버님이 잘 견디고 계시니 오늘 밤은 그만 집에가서 모두 주무시고 오라고 했다. 가족들도 여기서 며칠을 이렇게 계시기 쉽지 않을거라고 했다.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교대로, 지금은 내가 여기 있고 언니가 엄마 모시고 집에 가서 좀 쉬고 오면 어때? 엄마 조금이라도 편히 주무시고 오시게"

"그러게. 근데 우리 네가족 이렇게 같이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해서 그냥 여기 있고 싶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아빠와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새벽에 잠시 아이들을 보러왔다. 갑작스레 엄마의 부재를 겪고있는 아이들의 자는 모습을 잠시 바라봤다.

아빠가 제일 사랑했던 아이들. 아직 수유 중인 둘째에게 모유를 주고 새벽같이 일어난 시완이를 아버님과 함께 놀이터로 보냈다. 그리고 병원으로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언니에게 전화가왔다.

"주이야 빨리 와야겠다. 아빠 수치가 안좋아."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가는 그 20분 동안 아빠의 마지막 순간을 내가 지키지 못할까봐 아빠가 나를 마지막으로 못보고 가실까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아빠, 아빠 주이가 가고 있어요.'

아빠는 우리가 도착할때까지 힘을 내고 계셨다. 우리가 도착하고도 아빠 곁에서 한참을 이야기 할 시간을 주셨다.


그렇게 몇시간이 흘러, 엄마와 언니, 나와 남편, 이모와 사촌동생이 모두 모일 때까지 아빠는 힘을 내셨다.

많은 사람들이 아빠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아빠는 우리 모두가 아빠의 임종을 지킬 수 있게 허락하셨다.

어느 누구의 마음에 그 마지막을 지키지 못하는 아픔이 남지 않도록 우리모두를 배려하시며 그렇게 가셨다.




10여년 전 지금 친정이 있는 동네로 이사를 왔을때, 지금 우리가 다니는 교회로 우리 모두를 인도한 건 아빠였다. 그 인도로 엄마는 새로운 곳에서 많은 좋은 사람들을 사귀었고, 새로운 지역에서 다시금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셨다.

장례식장에 찾은 많은 교인들이 엄마를 위로하고 힘을 주는 모습을 보며, 홀로 남은 엄마에게 든든한 지지자들을 심어준 것도 결국은 아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아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래도 우리가 믿는자여서, 아빠의 영생을 믿는다는 것이, 아빠가 천국에서 편안히 계실 거라는 믿음이, 아픔 가운데 힘을 낼 수 있게 했다. 아픔 가운데 말씀 안에 위로를 받을 수 있게 한 것도 결국 아빠의 인도 덕이다.



'아빠 천국에서 편히 쉬세요. 아빠는 다시 또 나의 아빠로, 나는 아빠의 딸로 우리 그 곳에서 다시 만나요. 사랑해요.'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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