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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Mar 28. 2020

아픈 가족을 둔 의료진

병원 이야기

그의 아들은 의사였다.

그가 우리 병동에 입원했을 때 그의 아들은 그가 입원한 병동인, 신경외과에 근무하는 레지던트 3년 차였다.

그의 진단명은 폐암이었고 우리 병동에 입원하게 된 건 뇌전이 소견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들은 자신이 공부하던 어느 시점에 자신이 아버지의 주치의가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을까...

그는 폐 기능이 떨어져 호흡을 편하게 하지 못했다.
늘 가래가 차있었고 가래를 뽑아도 돌아서면 다시 그렁거리는 가래소리가 났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뇌로 전이된 암세포는 그의 뇌 기능을 점차 악화시켰다. 운동기능이 점점 떨어져 갔다.
전신 상태도 좋지 않았다.
그는 잘 먹지 못했고 50kg이 채 되지 않게 말라갔다.


그는 자신을 번거롭게 하는 모든 처치를 거부했다.
가래를 뽑는 일도 주사를 맞는 일도, 그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고통이었다.
그를 위한 처치를 수행할 때, 하셔야만 한다고 설득하기까지의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거동이 힘든 그의 목욕과 세발을 도우러 갔다.
그는 역시 거부했다.

그 누구도 자신을 건드리지 말고 가만히 쉬게 놔둬주기를 바랐다.

그는 구강 간호 세발 목욕 등 모든 기본간호행위를 거절해왔는데, 그날은 평소와 다르게 목욕을 시켜달라고 했다.
머리도 좀 감고 싶다고 했다.

오래도록 씻지 못한 몸을 정갈하게 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보호자와 함께 뼈밖에 없는 그의 앙상한 몸을 닦였다.
그리고 새하얀 머리를 감겨 드렸다.
아픈 환자 같지 않게 곱고 풍성한 머릿결이었다.

오랜만에 환의도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 입혀드렸다.

-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그는 희미하게 웃고 말았다,



그리고 3일 뒤 그는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마지막 날을 알았던 것처럼 그는 그의 몸을 정갈하게 하고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그의 아들은 병동 내 자신의 환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아버지와의 이별을 맞이했다.
그는 오열했다.
의료진도 환자도 보호자도, 모두들 숙연해졌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나를 보는 의료진도 누군가의 가족이고, 그 누군가를 질병으로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지켜보며 눈물을 훔쳤다.

자신들의 아픔도 잊은 채 그의 아픔을 함께 느끼는 것만 같았다.
그 공간의 공기가 무거웠다.


그가 세상을 떠고 약 2년 후 그의 아들은 전문의 시험을 고 본원을 떠났다.
그의 소식을 더 듣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환자를 치료하고 있을 것이다.


머리의 지식뿐만 아니라 가슴의 경험으로 환자들의 마음까지 알아줄 수 있는 좋은 의사가 되어 많은 이들을 치료하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그를 그의 아버지도 하늘에서 기쁘게 바라보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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