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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Oct 26. 2024

후회와 자책

돌아보니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인 것을 알았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도 우리에게 예상하지 못한 어렵고 큰 일들이 닥친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일 앞에서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부족했던 흔적들을 찾아 괴로워하며 더 잘하지 못한 자신을 반성했다. 돌아보니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인 것을 알았다. 



예수께서 가시다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 요한복음 9장 1~3절



다발성골수종의 발병 원인은 현대의학으로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우리 가족은 아빠의 발병 이유를 각자 나름대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빠가 너무 힘드셨던 것 같다. 몸을 제대로 돌 볼 새가 없었다. 너무 잘 못 드셨다.' 등등등

그리고 질병을 진단받고 치료받는 과정 동안 순간순간 각자의 몫으로 자신을 자책했다. 


아빠가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생긴 합병증으로 연하 장애가 생겨 잘 드시지 못하게 되셨을 때 엄마는 많은 날 엄마의 음식을 타박했던 아빠를 생각하며 맛있는 음식을 해드리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

미식가셨던 아빠의 음식에 대한 요구와 엄마의 요리실력에는 좁아질 수 없는 간극이 있었는데 평생 아빠의 식사를 담당했던 엄마는 그 요구를 맞추지 못한 당신을 자책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엄마가 아니라 누구였어도 그 요구는 맞추지 못했을 것이었다.


언니는 더 많은 날 아빠와 함께 하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 아빠는 미식가에 식도락을 즐기고 여행하는 것도 좋아하셨는데 아빠랑 좀 더 많이 여행 다니고 함께 즐기는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 하지만 우리 가족 중 유일하게 가족여행을 추진하여 성공시킨 사람은 늘 언니였다. 늘 언니 덕분에 우리는 해외와 국내 곳곳에서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오랜 시간 간호학을 공부했음에도 가장 사랑하는 가족의 질병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마음이 괴로웠다. 간호사는 대상자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영적 건강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니 대상자를 다각도로 살피며 증상을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수많은 날 그 가치대로 공부했고, 현장에서 후배들과 학생들에게 같은 가치를 가르쳤다. 그런데 나는 정작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매일 출근을 하는 우리 집의 가장인 아빠가 어느 날 온몸이 아팠을 때 아빠는 얼마나 불안하셨을까?

70대의 연세에 병원을 알아보고 찾아가는 것이 그리 편한 일은 아니셨을 텐데, 간호사인 딸에게 아빠의 증상을 말하면 이후의 절차들을 함께 처리해 줄 것이라고 믿고 의지하셨을 텐데 나는 그저 상식적인 내용만을 말하며 근처병원을 방문해서 진료를 받고 진단서를 받아오라고 이야기했으니, 아빠는 얼마나 섭섭하셨을까?

아빠가 온몸이 아프다고 처음 나에게 말했던 그날, 나는 그냥 병원 가서 진료받아 보시라고 말하기 전에 아빠 손을 잡고 함께 병원을 갔어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무게로 일정시간 각자를 감정적으로 고문했다. 그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그래도 지금이라도 그것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것도 각자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스스로가 잘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엄마는 아빠의 음식을 챙기고, 언니는 아빠에게 여행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나는 아빠의 치료 전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의료적인 절차들을 설명하고 해결했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우리의 부족함으로 아빠가 질병에 걸린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에게 예상하지 못한 어렵고 큰 일들이 닥쳤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일 앞에서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부족했던 흔적들을 찾아 괴로워하며 더 잘하지 못한 자신을 반성했다. 


돌아보니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인 것을 알았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우리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빠와 나의 관계 속에서 내가 잘했던 것과 잘하지 못했던 것, 그로 인해 지금의 결과에서 내가 아파하는 것들의 경험을 기억해 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돌보았다. 

비록 못했던 것들만 가득 기억날지라도 아픈 기억에는 위로를, 부족했던 기억에는 격려를 해주었다.

그래야 앞으로의 남은 시간들에 내가 더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남은 과정에서 좋은 기억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해 나는 이렇게 나를 돌아보며 나의 최선을 다해보고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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