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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소리 Dec 09. 2024

40대 자발적 백수 날것의 기록

허세와 진솔함 사이 그 어딘가

 공식적 백수가 된지 오늘로 9일째. 지난 일주일은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고,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미뤄왔던 일들을 하느라 그 누구보다 분주하고 정신없는 하루들을 보냈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결코 근거 없는 말이 아님을 몸소 실감했던 지난 일주일이었다.


 분주한 약속들로 정신없이 보내다 문득,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음을 깨달았다. 오늘에서야 40대 자발적 백수 여성이 느끼는 날것 그대로의 솔직한 생각들을 기록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뭉글뭉글 구름처럼 일었다. 수많은 스벅 중 왠지 글이 잘 써 질 것 같은 곳을 골라, 그 중에서도 가장 편안하고 글이 잘 써질 것 같은 자리를 스캔한 뒤, 그 곳에 급하게 짐을 펼쳤다. 노트북을 열고 한글창을 띄우고 이리저리 편안한 자세도 취해본다. 모름지기 글은 이렇게 카페에서 써야 술술 잘 써진다는, 이 허세 가득한 나의 모습이란.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조금은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것 또한 나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니까. 오늘만큼은 나의 소회를 가감 없이 술술 써 내려가기로 한다.






 ‘하루의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다’라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을 되뇌며, 과거의 나는 매일 아침 분주하게 어딘가로 향하던 직장인 중의 한 명이었다. 세상에는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슈퍼 워킹맘도 많지만, 나는 업무에 몰두하느라 정작 중요한 나의 가정은 제대로 돌볼 여유가 없었던, 그저 그런 평범하고 흔한 직장인에 불과했다.


 이 얼어 죽을 책임감 덕분에 한 순간도 일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하루 8시간 직장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붓고 나면, 퇴근 후에는 더 이상 가용할 수 있는 체력과 정신적 여유가 남아있질 않았다. 니체의 말처럼 역시 직장인의 삶은 노예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며, 언제쯤 이 보이지 않는 근로노동자의 족쇄를 끊을 수 있을까 틈날 때마다 고민하곤 했다. 하지만 여느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뾰족한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기계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어느새 맞이한 계약기간 종료의 날. 이 D-day를 나는 얼마나 간절히 손꼽아 기다렸던가. 누군가 억지로 일하라고 내 등을 떠민 것도 아니요, 나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취업이었다. 비록 계약직이었지만 꽤 만족스러웠던 직장이었고, 업무 강도나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그리 심한 편은 아니었다. 이것저것 너무 깊은 생각을 하면 문제지만, 무념무상 소울리스 직장인으로 한달 한달 월급 받으며 연명하기엔 그리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입사와 동시에 퇴사의 꿈을 키우는 여느 직장인의 이야기를 어느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 그들처럼 나 또한 취업과 동시에 퇴사의 날을 은밀하게 그리고 있었다. 퇴사 후 하고 싶은 것들 리스트를 몰래몰래 작성하며 잠시나마 설레기도 했고, 어느 누구보다 바쁜 백조의 삶을 살겠다고 속으로 꾹꾹 다짐도 했다. “그날이 오기만 해봐. 아주 여기서 벗어나기만 해봐.” 그 날이 오면 완전히 새롭고도 다른 세상이 펼쳐질 줄 알았던 아주 호기로웠던 과거의 나.






 하지만 다부진 나의 결심과는 달리, 매일 아침 출근할 곳이 없어졌다는 사실은 예상보다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제는 쓸모가 없어진 나의 명함을 스스로 휴지통에 던지며, 내 마음에 어딘가에도 큰 구멍이 난 것 같았다. 그렇게 자유의 몸이 되길 간절히 원했으면서, 더 이상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나를 한없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퇴사 후 며칠 동안은 ‘이렇게 시간을 흘려 보내도 되는걸까,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해가는데 너무 유유자적 달팽이처럼 지내는게 괜찮은걸까’ 라는 걱정에 밤잠까지 설치기도 했다. 가만히 있는 시간들이 불안해 며칠 동안은 일부러 더 분주하게 나를 채찍질하기도 했다. 이러다 세상에 하등 쓸모없는 잉여인간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의 가지는 꼬리를 물고 한없이 뻗어만 갔다. 퇴사가 내 인생 처음도 아니고, 과거 퇴사 시절엔 이런 기분도 아니고 그저 홀가분 그 자체였는데. 이번 퇴사로 인한 상실과 허탈감은 예상보다 컸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이런 걱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왜 나는 바로 재취업하지 않는걸까?”답은 단순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이 없어서도 아니고, 그저 쉬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내 안에는 여전히 하고 싶은 일들이 있었고, 나름의 철학도 있었다. 해당 질문에 대한 내 안의 답들을 잘 정리해 한 편의 글로 남기고 싶어졌다. 나이가 마흔을 훌쩍 넘어가니 나름의 인생관이 생겼고, 혹시나 꼰대가 되어가는 증거일수도 있겠으나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생겼다. 이쯤에서 내 마음의 소리를 기록해두어야 겠다는 욕구가 일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겐 뻔하면서도 그렇고 그런 자기계발서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고, 너무 사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라 안물안궁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적어보기로 결심한 이유는 나와 비슷한 경로를 걸어가고 있는 40대 그 즈음의 여성들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를 전하고 싶어서이다. 그대는 이미 충분히 잘 살고 있는거라고 공감 한 스푼을 더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특별한 경험이나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도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지 이 나이에도 고민이 많은 사람이다. 육아와 코로나로 뚝 끊긴 나의 경력을 어떻게 이어나갈지, 아니면 늦게나마 아예 다른 방향으로 길을 틀어야 할지, 오늘도 내일도 고민 중인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다. 때로는 나의 이야기가 독자에게는 찌질하게도 혹은 구질구질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이 다 그런게 아니겠나. 음 아닌가. 나만 그런것인가 ㅎㅎ


 내 인생의 여백, 40대 자발적 백수의 솔직발칙한 고백. 그렇게 용기 내어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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