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집 놔두고 생돈 내며 스벅으로 향하는 이유.
“퇴사하고 나면 이제 뭐 하실 거예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퇴사를 앞둔 내가 직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다름 아닌 이것이었다. 그 질문 속에는 호기심보다는 약간의 의심과 경계심 역시 묻어있었다. 그래 아무래도 그게 가장 궁금하겠지. “나는 계속 직장에 매여 있을 건데, 이런저런 기회를 다 걷어차고 제 발로 나가는 너는 무슨 특별하고도 대단한 계획이 있길래? 어디 좀 풀어놔 봐.” 그래 아마 나였어도 그게 가장 궁금했을 거다. 질문하는 그들의 눈빛은 마치 "제발 헛된 짓거리 하지 마"라고 일러두는 듯했다.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그리 긴 생각의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그동안 심적 여유가 없었다는 핑계, 난 아직 그만한 실력이 안 되니까 라는 핑계. 그런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두었던 ‘글쓰기’에 매진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솔직함을 그들 앞에서 드러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목구멍까지 거의 다 나온 그 대답을 결국 밖으로까지 뱉어내진 못했다. 아마도 글쓰기란 단어 자체가 때로는 현실도피나 허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겠지. 대충 두루뭉술한 대답으로 얼버무리고는 슬그머니 다른 대화 주제로 넘어갔다.
왠지 고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헝그리한 뉘앙스가 가득한 글쓰기라는 취미. 누구나 1인 1미디어 그 이상을 소유한 시대. 누구나 온라인에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요즘 같은 시대. 작가란 타이틀이 더 이상 대단한 것이 아닌 시대에 글쓰기가 뭐 그리 대수라고. 이 귀한 중년의 시간 중 몇 개월을 나는 굳이 글쓰기에 할애하려 하는 걸까.
게다가 글쓰기는 나 같은 백수가 누리기엔 여전히 사치스러운 취미인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구구절절 설명해도 직원들은 나의 이런 욕구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할 테니. 아니 이건 우리 남편과 딸도 이해하지 못할 나의 깊은 욕구이니. 나의 온라인 글벗들에게나 솔직한 내 마음을 털어놓기로 하고. 마저 나머지 글을 이어가 보자.
앞으로 이어갈 글에서도 차차 설명하겠지만, 글쓰기에 대한 나의 애정과 집착은 대단하고도 또 오래되었다. 오늘도 나는 그러한 이유로 오전 느지막이 스벅으로 출근했다. 딱히 스벅의 커피 맛이 훌륭하다거나 아주 저렴하게 그 공간을 이용할 수 있어서는 아니다. 왠지 여기에 오면 글이 잘 써지고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은 느낌. 이곳은 단순한 커피숍이 아니라 마치 내 꿈의 무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멀쩡한 집을 두고 이곳을 찾는 이유는 자유로움과 집중, 그리고 나를 둘러싼 작은 자극들 때문이다.
사실 평일 오전의 우리 집은 그 어느 공간보다 조용하고 집중하기에 적절한 공간이다. 남편과 딸은 8시 반 이전에 이미 다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따스한 햇살이 남향집 안으로 서서히 그리고도 깊숙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를 방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고, 집안은 조용하고 적막하기 그지없다. 집중하기에 딱 좋은 상태인 것이다. 설령 이 조용함을 참을 수 없다면, 몇 년 전 블프 때 직구로 구입한 S사의 스피커를 통해 멋진 BGM을 깔아도 좋다.
내 입맛에 딱 맞는 원두를 구비해 두어 언제든 드립커피를 내릴 수 있고, 그게 귀찮다면 커피머신이라는 대안도 있다. 빈속에 커피가 너무 쓰리다고 느껴지면, 역시나 다양하게 구비해 놓은 티로 커피를 대신할 수도 있다. 냉동실엔 언제든 꺼내 먹을 수 있는 베이커리류도 늘 구비되어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글쓰기 공간이 있을 수가.
하지만 내게 스타벅스는 다르다. 왜 나는 굳이 생돈을 들여가며 여길 찾는 것일까. 여기는 나의 내면세계와 외부 세계가 만나는 경계선이다. 노트북과 책을 펼친 사람들, 그들의 집중하는 모습은 나에게 묵묵한 응원이자 자극이기도 했다. 나는 그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자극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집에서는 쉽게 포기하고 말 나의 의지를 여기서는 붙잡을 수 있다. 결코 불편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장시간 앉아 있기엔 약간의 고통이 느껴지기도 하는 스벅의 좌석. 아마 집이었다면 약간의 고통을 느끼자마자 침대나 소파에 바로 퍼져버렸을 테지만. 여기는 그럴 공간도 없을뿐더러, 나는 대중 앞에서 그럴 용기도 없다. 다소 불편한 의자, 주변의 시선, 그 미묘한 긴장감이 나를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내 허리와 엉덩이가 버텨낼 수 있을 때까지. 내게 주어진 시간은 딱 그만큼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더 본질적이고 에센셜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다들 어떤 작업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중에는 또 작가의 꿈을 꾸며 원고를 집필하는 이도 있을 것이므로. 나도 여기서 절대 어영부영할 수 없지. 그 속에서 나는 묘한 자극을 받는다.
아마도 나는 타인의 시선과 적절한 감시가 있어야만 무언가를 지속할 수 있는 나약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나약함 속에서 나의 강인함 역시도 발견하게 된다.
그동안 한 장 두 장 모아두었던 커피숍 기프티콘을 요즘은 참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요즘 내게 가장 반가운 선물이 커피 기프티콘이기도 하다. 백수의 사치스러운 취미가 되지 않도록. 오늘도 열심히 집중하다 가야지.
오늘도 커피 기프티콘을 꺼내 들며, 한 권의 책이 될 원고를 쓰고 있다. 단 한 명의 독자에게라도 공감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엉덩이가 저리는 이 시간을, 훗날 나는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하다. 그 답은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글쓰기라는 여정 속에서 나는 나를 찾아가고, 또 나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