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라는 안식처에서 찾은 작은 행복
백수가 되니 지갑이 점점 얇아져 오는 건 당연한 일. 비록 월급 루팡이었을지라도 때 되면 따박따박 알아서 들어오던 급여. 그것의 힘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욕심이 줄어드는 건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풍족한 시간이 주어지니, 그동안 못했던 것들에 대한 욕구는 거의 폭발 직전이었다.
문제는 이 모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려면 지출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 아, 이 철저한 자본주의 세상이라니. 오호통재라. 다시 월급쟁이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나 잠시 멘탈이 흔들렸지만, 금세 정신줄을 다잡았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나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넘쳐나 여기저기 발을 담그는, 하고잽이 문어발 스타일이다. 다재다능하거나 혹은 산만하거나 둘 중의 하나일 텐데. 아마도 나는 후자일 확률이 높다. 퇴사 후 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히 글쓰기뿐만이 아니었다. 글쓰기만큼이나 흠뻑 빠져보고 싶었던 건, 바로 ‘SNS 물릴 때까지 실컷 하기’. 어떻게 보면 글쓰기와 맥이 닿아있는 활동이기도 하다.
퍼거슨 감독이었나. 인생의 낭비에 불과하고 했던 SNS. 퇴사 후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 겨우 그거냐고 누군가는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SNS는 그 이상의 의미였다. 마치 직장에 다니듯 하루 8시간을 온전히 SNS에 쏟아붓고 싶었다. SNS에 대한 진심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짙었다. 오프라인에서의 충실한 삶도 중요하지만, 온라인에서 나만의 입지를 다지는 것도 현대 사회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족한 나의 능력과는 별개로, 나는 블로그, 스레드, 인스타그램, X, 브런치 등 여러 SNS를 운영 중이다. 헙. 이 많은 걸 다 운영한다니 말만 들어도 벌써 숨 막혀 오는 느낌. 사실 여기저기 계정만 만들어 두었지, 모든 플랫폼에 제대로 집중하지는 못했다. SNS 활동에 있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기도 했고, One Source Multi Use(OSMU) 전략을 활용해 나와 맞는 플랫폼에서 조금씩 나의 영향력을 높일 필요 역시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엔 블로그, 스레드, 브런치, 이 세 가지에만 주력하고 있는 요즘. 흥미롭게도 이 세 플랫폼은 공통점이 있다. 짧든 길든, 헛글이든 제대로 각 잡고 쓴 글이든, 글쓰기에 적합한 플랫폼이란 것이 바로 그것.
여러 해 SNS를 운영하며 내 온라인 정체성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나는 영상 제작에는 취약한 편이었고, 영상 자체를 그리 즐겨보지도 않았다. 한때 사진 중심이었던 인스타그램도 릴스 중심으로 바뀌면서 점점 흥미를 잃었고, 광고판 같은 느낌이 들어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나와 잘 맞는 세 가지 플랫폼에만 집중하고 있다.
가장 먼저, 나의 온라인 본진이자 가장 오래 운영해 온 블로그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요즘 블로그의 화력과 확산력이 예전만 못하지만, 여전히 블로그는 나에게 마음 편안한 고향 같은 곳이다. 한때는 수익화를 해보겠다며 이런저런 체험단 활동도 하고, 여행 및 경제 분야 인플루언서도 하며, 여러 시도를 했지만, 결국 남는 것은 허탈함 뿐이었다.
체험단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을 홍보하며 느끼는 피로감, 그리고 덕지덕지 붙은 살만 남겼다. 여행 인플루언서는 사춘기 아이가 부모와 함께 나가길 꺼리면서 자연스레 중단됐다. 그래, 한창 친구가 좋을 나이니까 그럴 수 있지. 마흔이 넘어서니 핫플레이스를 쫓아다니는 것도 체력적으로 버거웠다. 경제 인플루언서 활동도 매일 포스팅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과 '남의 옷을 입은 듯한 어색함'에 오래가지 못했다. 결국 꾸준히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는 비결은 '나다움'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요즘 나는 조회수, 상위 키워드, 블로그 지수, 수익화 같은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쓴다. 당연히 검색 노출도 안 되고 파급력도 떨어졌으며, 그로 인한 수익화의 길과도 멀리, 아주 멀리 멀어졌다.
그럼에도 블로그가 지금처럼 즐거운 적은 없었다. 밤마다 "내일은 어떤 글을 쓸까?" 행복한 고민을 하며 잠들고, 새벽에 눈 뜨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블로그 글 작성이다. 심지어 한밤중에 잠이 깨면 블로그 앱을 열어 새 소식이나 댓글을 확인하고 다시 잠드는 '중병'에 걸린 상태다. 물론 밤새 댓글이 달리지 않은 날이 대부분이지만.
블로그에서 나는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행복하다. 회사에서처럼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고, 내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 보헤미안 스타일인 나는 마치 날개를 단 듯 블로그 세상을 누빈다.
어디 그뿐이랴. 오프라인에서는 갖가지 험한 꼴도 많이 보고 피곤한 일들을 많이 겪지만, 블로그에서는 내 취향에 맞는 이웃들과 따뜻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간혹 알고리즘에 의해 글이 과도하게 노출되어 이상한 댓글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지만, 블로그는 다른 플랫폼에 비해 악플이 적은 편이라 이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나는 돈돈거리며 수익화에 집중하는 블로거도 존중하지만, 결국 내가 끌리는 사람은 자신만의 매력을 풍기는 블로거였다. 나 역시도 그런 블로거가 되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에 매력을 느끼고, 독자들을 조금씩 끌어당기는 블로거 말이다. 누군가 내 글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나에게 스며들길 바란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매력적인 사람. 그런 사람이 나의 워너비.
나처럼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블로그는 최고의 플랫폼이다. 나는 오프라인에서는 말수가 적은 'I'형 인간이지만, 블로그에선 할 말이 차고도 넘친다. 블로그에 미처 다 쓰지 못한 이야기는 스레드에서 이어가며 나의 글쓰기 욕구를 해소하기도 한다.
각 잡고 쓰는 글도 좋지만, 부담 없이 주절주절 내 생각을 풀어낼 수 있는 블로그의 매력은 끝이 없다. 이번 장에서 블로그에 대해 너무 예찬만 늘어놓은 듯 하다. 덕분에 다른 SNS 플랫폼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신에게는 아직 써야 할 무궁무진한 장들이 남아 있사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