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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남순 May 30. 2024

사장님, 내일 조식 메뉴는 뭐예요?

밥 한 끼는 특별한 무엇이 되기도 한다.

     

배꽃집은 조식으로 한식을 제공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한식을 제공한다고? 처음에는 믿지 못하는고 되묻는  손님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빵과 커피를 제공하고 조식이 없는 게스트 하우스도 많다. 지금이야 비용을 받고 한식을 제공하는 게스트하우스도 있지만, 당시만 해도 거저 제공되는 배꽃집의 조식은 특별했다. 배꽃집 조식을 좋아하는 손님들이 많았고, 배꽃집이 게스트하우스로 일찍 자리를 잡게 된 것에 이 조식이 한몫했던 것 같다.

아침을 먹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배꽃집 조식은 먹었다. 갓 지은 쌀밥과 반찬들을 접시 가득 담아 먹은 사람들은 “오래간만에 집 밥을 먹었다”는 둥, “우리 엄마가 만든 음식보다 더 맛있다”는 센스 있는 칭찬으로 나를 더 춤추게 했다.     


게스트하우스를 준비하면서 조식을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데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배꽃집은 도시 외곽에 있어 마트와는 꽤 거리가 있다. 빵을 사려면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한다. 도시처럼 버스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장을 봐서 돌아오는 것까지 생각하면 시간이 꽤 소비된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것은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효율이 떨어지는 일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피자나 치킨 같은 음식배달도 되지 않는 지역이다. 시간적 거리로는 20분 남짓 되지만 배달을 해 줄 수 없단다. 이해는 된다. 단독주택인 시골집은 도시 아파트처럼 호수만으로 쉽게 찾지는 못할 것이다. 랜드마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배달 시간이 더 소요될 것이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야식 먹는 습관을 들이지 않았다. 야식 문화의 파발마인 ‘배달의 민족’이 닿지 않는 곳에 살게 된 지리적 덕을 본 셈이다.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고 있는 배꽃집은 우리가 직접 지은 집이다. 배 밭을 사고 터를 닦아 집을 짓고, 10년 살다가 빈 방에 침대를 들이고 지금껏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집 짓던 남편에게 아는 목수가 “세상 남자의 2프로만 집을 짓는데, 그중에 2프로만 자기 손으로 짓는다.”는 말을 했단다. 배꽃집은 2프로에 속하는 집이다.     

집을 완성하기까지 남편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가장 크게 고생한 사람이다. 남편을 도운 사람들은 나와 아이들, 그리고 도시에 살던 지인들이었다. 주말이면 지인들은 우리 집 공사현장으로 몰려왔다. 느릿하게 진행되던 일은 지인들이 다녀가고 나면 몇 배 빠르게 속도가 났다. 멀리서 찾아와 준 그들을 위해 나는 열심히 밥을 지어 먹였다. 한 달에 80킬로 쌀 한 가마씩 밥을 지었으니, 집이 완성되었을 때 나는 밥 짓는 선수가 되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노동 끝에 먹는 밥이다. 땀 흘린 뒤 함께 어울려 먹는 밥은  꿀맛이다. 찬 거리 걱정은 하지 않았다. 마트는 바로 집 뒤 텃밭에 있다. 내가 가꾼 텃밭에는 부추, 상추, 감자, 고구마, 깻잎, 돌미나리, 쑥갓, 시금치, 고추, 오이, 오가피 같은 채소들이 자랐고, 계절에 따라 절로 자라는 냉이, 달래, 고들빼기, 곰보배추, 민들레, 담배나물 같은 것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텃밭에는 다양한 식재료들이 자랐다. 갓 따서 무친 겉절이와 불에 구운 두툼한 삼겹살이면 우리 가족과 지인들은 배부르고 밥을 먹었고 술잔은 나누었고 그리고 다시 힘을 내서 일을 했다. 주말이면 지인들과 모여 축제를 벌이듯 힘든 줄 모르고 집을 지었다.     


그래, 내가 잘할 수 있는 걸로 해보자.”   

  

고민 끝에 집 지을 때 밥 짓던 경험을 살려 조식을 한식으로 결정했다. 열댓 걸음 나가면 싱싱한 채소가 풍성하게 자라고 있다. 채소보다 고기를 더 좋아하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나물 반찬 위주의 한식을 좋아할까? 결정을 하고도 이런저런 걱정들이 밀려왔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밥을 안치고 칼과 바구니를 들고 밭으로 나간다. 당일 메뉴 결정은 텃밭이 한다. 알맞게 자란 부추와 상추를 잘라 함께 겉절이를 하고 시금치는 삶아 무친다. 호박잎은 쪄서 강된장과 궁합을 맞추고 가지는 구워서 양념장과 함께 내놓는다.

메뉴는 계절마다 다르고 매 아침 다르다. 그래서 ‘조식이 뭐냐?’ 물어도 대답해 줄 수 없다.

배꽃집 조식은 매번 이렇게 완성된다. 2시간이 걸려 완성한 조식을 게스트들은 눈을 비비며 먹는다. 그들은 배꽃집 조식을 ‘건강 밥상’이라 불렀다.   

   

배꽃집 조식에서 일 년 열두 달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반찬이 있다. 김장 김치다. 배추만 백 포기를 담갔다. 모든 재료는 유기농으로 가꾼 것들이다. 배꽃집 김장에는 특별한 것이 하나 들어간다. 늙은 호박이다. 잘 익은 늙은 호박 껍질을 까서 약한 불에 은근히 끓이면 호박죽이 된다. 이 호박죽에 고춧가루와 새우젓, 그리고 대파, 마늘, 갓을 버무려 만든 소를 넘고 김치를 담는다. 호박죽을 넣은 김장 김치는 시원하고 끝까지 아삭아삭 하다. 벌레를 손으로 잡아가며 키운 배추와 무로 담근 시원한 김장김치는 배꽃집이 자랑하는 일 년 반찬이다.          

누군가에게는 밥 한 끼는 특별한 무엇이 되기도 한다.


여행할 때 보고 싶은 것 중 하나가 그 나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가정식이다.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은 소박하고 정서적이며 사람이 함께 한다. 그래서 더 경험해 보고 싶다. 하지만 여행자가 일반 가정을 방문할 일은 없다. 어쩌다 그런 기회를 갖게 된다 하더라도 가정식을 먹게 된다? 그런 일은 생긴다면 그건 정말로 특별한 여행이다. 그래서 찾게 되는 곳이 시장이다. 시장에 가면 그 나라의 원색적인 식재료와 사람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외국 여행자에게 배꽃집 조식은 특별했던 것 같다. 대여섯 가지로 차린 반찬을 밥과 함께 남김없이 싹 싹 비워준 영국 여행자 스티븐이 있었고, 그리고 멸치와 아이컨택을 해버려서 멸치를 먹지 못하겠다고 했던 얼도 생각난다. 도시락을 싸들고 봄꽃 나들이를 했던 독일 여행자 엘리자베스와 이탈리아에서 온 카피아, 그리고 빅 패밀리였던 프랑스 가족들과 인도가족 비셜도 생각난다.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던 프랑스 두 청년도 기억난다. 모두 배꽃집 조식에서 한국의 문화를 찾고 맛있게 먹어준 사람들이다.     


그중에는 한 끼 밥으로 특별한 감동을 드린 분들도 있다. 오랫동안 해외에서 살고 있던 동포들이 게스트로 오셨을 때다. 하와이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는 60대 손님은 긴 머리에 비녀를 꽂고 오셨다. 요즘은 할머니들도 모두 파마를 한다. 하와이 손님 가방 안에는 여러 개의 비녀가 들어 있었다. 독일에 살고 있는 교포 분은 한국 친구와 번갈아 서로를 방문한다. 올 해는 독일 친구가 한국을 방문하는 해였고, 두 분이 여행 중 배꽃집에서 머무셨다.      

하와이 손님과 비녀

인천 월미로에는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있다. 1902년 하와이로 떠난 102명이 우리나라에 기록된 첫 공식 이민자들이다. 그들이 배를 타기 전 마지막으로 밟은 땅이 인천이다. 인천의 비릿한 냄새는 이민자들이 평생 잊을 수 없는 공기냄새였을 것이다.

그분들은 배꽃 집 조식에서 고국의 정서를 느꼈다며 감사하다 했다. 투박한 엄마의 손맛의 정성이 담긴 가족들의 밥상이 생각났던 것이리라. 삶의 뿌리가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아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해외 동포의 삶을 온전히 공감할 수 없다. 어쩌면 해외동포들의 삶은 식어버린 국처럼 채워지지 않는 어떤 허전함을 가진 삶은 아니었을지. 그분들을 위해 차린 조식은 그래서 더 마음이 쓰였다. 밥상에 따뜻한 위로를 담아 드리고 싶었다.      


시인 김지하는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이라고 '밤은 하늘이'라고 했다.

밥 한 끼는 내게 '나눔'의 전부였다.

전부였던 나눔을 팬데믹 기간 중단을 했다. 깊은 고민 끝에 그렇게 했다.

지쳐 있던 내게 팬데믹은 좋은 핑계였다.

조금 더 핑계에 기대 보려 한다.

그러다 어느 날 불쑥 다시 시작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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