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들린 문(전편)
2020년 1월 13일 오전
"뭐? 비상구가 뭐? 어디라고?"
저스트 06시. 새벽부터 출근해 각각 지하 1층과 19층에서 비상문을 지키고 선 전략처의 두 꼬마는 평소보다 훨씬 더 소통이 안됨을 피부로 느끼며 애먼 휴대폰에 고성을 내지르고 있다. 특히 '식'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주관하는 이대리는 전략처가 이런 허드렛일을 하는 부서인 줄 알았다면 엉덩이를 걸치기 위해 그리 애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툴툴거리며 굳은 구두 속 엄지발가락을 꼼지락 움직여본다. 꽁꽁 언 발을 느끼려 노력 중인 것이다. 칼바람에 자꾸만 닫히는 지하 1층 비상문에 한쪽 어깨를 걸쳐두고 눈알을 굴리는 모양새가 절박하다. 정대리가 말한 스톱퍼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19층도 크게 다를 것 없는 풍경이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해 얼굴이 단단히 부은 30대 여성 하나가 문 앞을 왔다 갔다 하며 강당까지의 동선을 스무 번째 체크 중이다. 한 가지 차이점은 지나가던 정대리가 19층 비상문에 친히 스톱퍼를 끼워주고 갔다는 것이다. 강사원은 설마 스톱퍼가 문 뒤에 자석으로 붙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정확히 눈높이에 자석으로 붙어있는 스톱퍼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잠시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오래 부끄러울 새도 없이 바쁜 일정이다. 비상문을 열어두고, 취임 식순과 슬라이드를 맞추고, 강당 배치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강사원이다. 19층의 유일한 장점은 오로지 따뜻하다는 것 하나뿐. 몸뚱이 하나로는 역부족이다.
강사원이 19층에서 몸 하나를 나눠 멀티를 전개하고 있는 동안 지하 1층에서 동태가 되어가고 있었던 이대리에게는 큰일이 닥치고 말았다.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거인과 실랑이가 붙어버린 것이다.
"거기, 형씨. 어디야? 또 19층이야?"
"네?"
"이리, 이리해봐."
거인은 두터운 목장갑을 낀 팔을 이대리 눈앞에서 위협적으로 휘휘 젓더니 비상문을 쾅하고 닫아버린다.
"어어, 아저씨 아, 안돼요. 저희 사장님 오세요."
'째릿'
눈빛만으로 작디작은 이대리를 제압하는 관리소장이다. 문이 닫히자 역풍이 회오리처럼 이대리를 감싸고 올라온다. 덕분에 버릇이 잘못 든 곱슬머리가 삐쭉 오른쪽을 가리킨다. 이대리는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저항 한 번 못하고 움찔하며 비켜서고만 자신을 돌아본다. 너무 비굴했다. 초라했다. 아마도 추운 탓일 게다. 문을 닫으니 잠시간의 온기가 팔목을 휘감는다.
"거, 그 아가씨는 어딨어?"
"네?"
"관뒀어?"
"네??"
"거, 왜 있잖아, 싹싹하니 우엉차랑 백설기 주던."
"우엉... 백... 설기요?"
이대리는 머릿속이 하얘진다. 나만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 관리소장과 우리 회사 사이에는 모종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 아가씨'란 정대리일 것이다.
'아, 정대리! 이런 걸 말해줬어야지!'
"아, 아, 그분은 지금 부서가 바뀌어서..."
"딴 데로 갔어? 잘 됐네. 고생을 그렇게 하더니 나쁜 인간들. 쯧쯧."
힐끗 노려보는 눈이 매서운 관리소장이다. 이대리는 나는 결단코 그 아가씨를 괴롭힌 적이 없다는 눈빛을 쏘아대며 어색하게 몸의 방향을 돌린다. 몸은 반대쪽 벽면을 향한 채로 이따금씩 흘끗흘끗 관리소장과 눈을 마주친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서로 친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했다.
"여튼 안 돼, 오늘은."
"네?"
"소방 점검이라 안된다고!"
'덥썩!'
이대리는 반사적으로 관리소장의 팔을 붙잡는다.
"왜 이래 이거!"
이번에는 소장의 완력도, 눈빛도 통하지 않는다. 이대리가 이겼다.
"저..., 저요, 저 과장님한테 죽어요."
관리소장은 침을 튀기며 얼굴을 들이미는 젊은이의 좀비 같은 몰골에 질색하듯 팔을 뿌리친다. 두 발짝 거리를 두고는 이 선을 넘지 말라는 듯 한 손에 든 랜턴으로 바닥의 타일 선을 가리키며 공중에 줄을 긋는다.
"진짜 안돼요."
성큼 한 발짝, 또 한 발짝. 두 손을 턱 아래에 웅크려 모은 채로 텁텁 소장에게로 다가가는 이대리다. 소장은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어 뒷걸음질 친다. 인생 최초의 식을 망치게 생긴 전략처의 애매한 신입은 이미 이성을 잃었다. 그때였다.
'끼리리릭'
이대리의 고개와 함께 관리소장의 눈동자도 끼익 돌아간다. 반쯤 열린 무거운 철문 사이로 냉동창고 같은 서늘한 바람이 든다. 이대리의 바짓가랑이가 펄럭인다. 두 사람의 멈춘 동작 사이에 드는 바람만이 이곳의 공기가 건재함을 말해준다.
"귀신 들렸구만."
"네?"
관리소장의 한 마디에 몸이 차갑게 굳는 이대리다.
"몸이 잘 안 움직여지지 않어?"
이대리는 도통 영문 모를 말을 하는 관리소장이 무섭다. 이성을 찾고 다가갔던 걸음을 돌려 뒤로 두 걸음 후퇴한다. 뒷걸음질쳐 열린 철문 쪽으로 다가서는 이대리의 등이 서서히 냉기로 물든다. 이번에는 관리소장이 두 걸음 다가온다. 이대리의 코앞까지 얼굴을 밀착하고는 좌우로 눈동자를 힐끗거리더니 박하 향기 가득한 입으로 속삭인다. 노쇠하고 자상한 목소리다.
"그놈이야."
"..."
"그 놈이라고. 3년 전에. 그놈."
"..네에? "
"따라다니는 거야. 귀신이. 그 아가씨한테도. 너 한테도."
"..."
관리소장이 다시금 멀어지자 문 사이로 들이치던 드라이아이스 같은 냉기가 거짓말처럼 잦아든다. 떠올랐던 이대리의 곱슬머리가 조용히 가라앉을 때쯤 왼쪽 엉덩이에서 소름 끼치는 진동을 감지한 이대리는 '흐앗'하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짧은 비명을 내지른다.
"풉, 싱겁기는."
잔뜩 겁을 줘놓고는 움츠러든 이대리의 모습에 웃음이 터지는 관리소장이다. 어깨에 목이 거의 다 잡아먹힌 이대리를 똑바로 쳐다보기 어렵다는 듯이 시선을 공중에 분산시키더니 철문을 탓한다.
"아구가 안 맞어, 아구가. 저 봐 저, 다 갈렸잖어. 멀쩡하다가 소방 때마다 이런다니까."
그는 뒷짐을 지고 잔걸음으로 삐쭉삐쭉 문쪽으로 다가가며 이대리를 문쪽으로 밀어붙인다. 마치 너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는 듯 시원한 움직임이다.
"아껴줘야지. 이 높은 빌딩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막 쓰니까 닳고 닳는 거야. 알고 말고."
이대리는 태연스레 스톱퍼를 문 뒤에 붙여두고는 비상구 복도를 빠져나가는 건장한 노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있다가 이 묘한 긴장감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한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아! 전화!'
송과장이다. 망했다. 현실 세계의 귀신을 잠시 잊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급히 전화를 받느라 휴대폰이 손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기괴한 문보다 더 해괴한 목소리가 괴성을 지른다.
"어디야 새*야!"
"네? 아, 과, 과장님. 저 지하 1층 비상..."
"됐고, 올라와."
"네?"
"19층이라고 새*야!"
2020년 1월13일 월요일 맑음
<전략처 이대리> 1층으로 온다고 말을 하던가
지하로 온다며어, 문 잡고 기다리라며어!! 미친 거 아냐? 미리 연락을 줬어도 되는 걸 사람을 오들오들 떨게 만들고 말이야. 정대리는 이런 식으로 일해온건가? 다 그냥 헤헤 하고 받아주면서? 아오! 난 못 해. 더 이상 이 지경으로는 못 살아! 빨리 과장 달고 영업으로 돌아가야지. 저 망나니 같은 거랑 일 못한다고!
<전략처 강사원> 혼자 간다
혹시나 했는다 역시나다. 유빈이가 다시 온 줄 알았다. 유빈이였으면 이런 상황에 익숙하기라도 했을 텐데. 수시로 변하는 상황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저 해로운 인간이 내. 상사. 전략이 뭔지, 기획이 뭔지, 그 최유빈이보다 더 모르는 저 해로운 사람이. 곧.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