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人生は生きがたいというのに
詩がこのようにたやすく書けるのは
恥ずかしいことだ。
- <쉽게 씌어진 시>에서 발췌함
어제 친구 만나 점심 먹으러 이케부쿠로 나간 김에, 얼마 전 뉴스에서 본 릿쿄대학(立教大学) 교정에 설치된 윤동주 시인의 기념비를 찾아가 보았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온 그는, 교토의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으로 편입하기 전까지 반년 정도 이곳에서 공부하며 「쉽게 씌어진 시」를 비롯한 다섯 편의 시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주쿠만큼이나 교통이 복잡한 이케부쿠로 역에서 5분 정도 걸어간 곳에 위치한 릿쿄대학 캠퍼스는 아담했지만 담쟁이로 뒤덮인 고풍스러운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덥지도 춥지도 않은 대학교정을 걷다 보니 그 자체로 마음이 평안해졌다.
ChatGPT에 물어보니, 윤동주 시인의 기념비는 릿쿄대학의 다치가와기념관(太刀川記念館)과 라이프스나이더관(Lifesnyder館)을 잇는 통로 근처에 있다고 했다. 산책하듯 천천히 걷다보니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소박했지만,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끌기에는 충분한 자리였다. 비문에는 윤동주 시인이 릿쿄대학 재학 시절 노트에 직접 쓴 「쉽게 씌어진 시」의 원문이 새겨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일본어 번역문이 함께 적혀 있었다. 시와 더불어 시인의 짧지만 깊은 생애가 간결하게 소개되어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는데, 한 할아버지가 내 옆에 다가와 비문을 찬찬히 읽으시더니 “내가 태어난 다음 해에 돌아가셨네”라며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그러고는 자신이 “1944년생이며 이 학교의 졸업생”이라고 소개하셨다. 윤동주 시인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시인의 시가 그분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닿았을까 문득 궁금해졌지만,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고, 곧 할아버지는 자리를 떠나셨다.
교정을 한참 배회하다가, 그냥 돌아서기 아쉬워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 잠시 묵상에 잠겼다. 윤동주 시인이 느꼈을 답답함과 외로움, 서글픔, 그리고 자책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해 문득 울컥했다. 어제의 이 숙연한 감동의 여운을 오래도록 기억하고자, 내가 좋아하는 그의 詩 구절들을 필사로 남겨두고 싶다.
…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
<별 헤는 밤> 중에서
…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
<참회록> 중에서
…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
<자화상> 중에서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서시> 중에서
…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새로운 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