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한번은 나를 완전히 이해하고 죽어서 다행이야.
작년 나는 수치심이 많은 사람이고 이것은 모두 엄마로 부터 물려받았다는 것을 알고 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만든 우주안에 살았던, 나의 우주가 그랬으니 이제 다른 우주를 만드는 작업은 실로 엄청난 작업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죽기전엔 알게 되어서 말이다. 엄마를 보고 있으면 아직도 엄마가 만든 감옥안에 살고 있음에 안타깝다. 그렇지만 나는 엄마를 바꿀수 없다는것도 알기에 서로 고통스럽지 않게 건강한 거리를 두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내면아이를 정화하는 과정중에서 한가지 더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나는 호주에 온지 10년이 넘었다.
이상하리만치 '일'로서는 잘 풀리지 않았다. 아니, 반대로 말하면 한국에서의 삶이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지방 디자인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큰 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것도 집에서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회사생활자체는 정말로 괴로움의 연속이었지만, 그 다음 회사도 또 그 다음 회사도 어찌어찌 스무스하게 이직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이직의 여왕'이라고 불리울 정도였으니까.
20대의 나는 일욕심이 정말 많았다. 정말 야망으로 가득찼었다. 주말엔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 가서 살았다. 거기 있는 모든책을 달달 외울정도가 되었다. 감이 떨어질까바 안간힘을 쓰며 시장조사도 다녔다. 그러다가 한국보다 외국에서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 호주로 오게 되었다. 참 무식하고 용감했다. 무슨일이든지 밑바닥 부터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한국에서 쓴 잘나가는 감투는 벗어버린지 오래였다.
그렇지만 호주는 정말로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물론 영어도 안되고, 비자도 문제가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안될수 있지? 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나에게 있어서 디자인은 전부였다. 디자인일을 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였다. 정말 무용했다. 나는 디자인일로 돈도 벌고 성공하고 싶었다. 나는 좋은 디자인으로 증명할 수 있는데 나보다 디자인을 잘 못했던 주니어 디자이너가 공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나의 자존심이 점점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거기다 갑자기 나는 자가면역질환을 앓게 되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정도의 고통스러운 병이었다. 치료제도 없고 언제낫는지도 모른다. 몇년씩 약을 먹어야 한다니 공황발작까지 생겼다. 인생의 모든 불안이 삶을 덮쳐오던 순간이었다. 병까지 있으니 일하는데 더 제약이 컸다.
잔인했다. 이토록 일이 잘 안풀릴수 있을까? 점점 운명을 탓하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에 안것이 있다.
정말로 우주가 나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이랬다는 것을.
우주는 나에게 이런메세지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었다.
니가 성공하려고 하는 이유는 자애심이 낮아서야.
칭찬을 받고 자라지 못한 너는 엄마한테 너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하고 싶어했지.
성공하고 싶은 이유가 그 때문이잖아.
디자인일이 곧 너라고?
주변은 계속 변할텐데 이렇게 계속 가변지는것은 니가 아니야.
내가 너에게 병까지 줘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었지.
내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너는 존재 그 자체야.
한없이 작고 연약한 너의 자애심을 만드는 작업을 지금이라도 해봐.
너는 성공하지 않아도, 돈을 벌지 않아도, 그저 너로 충분해.
길가에 핀 들꽃도, 나무도, 돌맹이 하나도 이유가 있듯이
그렇게 존재에 이유가 있는거야.
너의 쓸모를 증명할 필요가 없어.
너는 너 존재만으로 훌륭해.
너를 사랑해봐 그럼 세상이 바뀔거야.
나는 드디어 우주가 하는 지난 10년의 메세지를 드디어 알아듣게 되었다.
나에게 이런 상황을 거울처럼 만들어서 깨닫게 만들려는 자애한 우주의 계획말이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그럼 나의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까.
움켜줬던 손을 풀고나니 손에 피가 도는 느낌이다. 디자인은 아직도 내가 제일 사랑하는 일이지만 디자인일을 하지 않아도 나의 존재는 충분하다. 작년부터 나는 열심히 나를 사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우주는 당신이 알아차릴때까지 메세지를 준다.
계속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한다면 우주의 메세지를 보라.
우주가 하는일엔 실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