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병준 <클럽 골든 플라워> 대안공간 루프 2019년 1월에
기계의 작동원리로 로봇 팔이 움직였다. 여러 개의 로봇 팔은 상단의 불빛을 통해서 다른 로봇팔의 그림자를 벽면에 그려냈다. 각각의 로봇 팔이 그림자 속에서 하나의 형상이 되기도 하고, 근경과 중경으로 나뉘어 그들 사이의 공간의 느낌을 더 극대화시키기도 했다. 초반에 시작되는 이러한 공간감 연출은 작품 전반에 몰입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작품에 깔린 정서는 로봇팔 자체에 있기보다는 보는 이가 상상해 낸 것이었다. 로봇 팔은 프로그래밍된 채로 움직일 뿐 그것에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서로의 관계를 의식하지도 않는다. 누군가 움직인다고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누군가 안 움직인다고 해서 의지를 가지고 행하는 동작이 아니다. 동작이라는 용어보다 작동이라는 용어가 더 적합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작가)이 감정을 이입해서 만든 기계는 여느 기계와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필시 우리에게 어떤 암시를 주고 있음에 분명하다.
서로의 모습을 벽면에 비추는 그들의 형상은 음악의 고조에 따라 움직이다가 클라이맥스를 향해서 가다가 막이 내린다. 결코 자신의 형상만으로 이러한 거대한 퍼포먼스를 만들어낼 수 없다. 이것은 인간이 타인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과 닮은 듯하다. 그 닮음은 다시 프로그래밍된 로봇팔의 반복되는 동작처럼 우리의 삶 같기도 하다. 어떠한 이념과 사상이 프로그래밍되어 달리는 우리의 하루하루는 스펙터클한 역사의 한 요소이자 반복되는 하루하루의 우울한 현대사가 된다.
작동이 멈춘 로봇 팔이 있었다. 그래서 작가가 직접 와서 보수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로봇 팔은 규칙에 저항하는 아름다움으로 표현되지 못한다. 그저 오류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그것을 끊임없이 제거하는 방식으로 로봇 팔은 움직인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지워내는 것들은 우리의 동작들을 만들어낸다. 그 속에서 우리의 희망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생산되어 삶을 계속 이어나가도록 한다. 그 광경은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는 수많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진다. 다시 보자면 로봇팔의 그림자 형상은 그러한 광경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서정적 그림자와 반복되어 파생되는 기계적 소리의 결합은 그러한 아름다움의 아이러니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움직이는 로봇팔 영상 보기>
https://www.facebook.com/alternativespaceloop/videos/2252495721686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