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 <사라지고도 존재하는> 아르코미술관 2018년 8월에
모든 작품은 비누의 원료로 제작되었다. 굳어버린 균열을 그대로 액자로 가져온 작품을 보고 있으려니 아주 느린 속도로 변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작품은 내가 있는 공간의 공기를 빨아들이고 숨 쉬는 듯했다. 액자에만, 혹은 오브제로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공기 중에 무수한 물질과 반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살아있는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멸해 갈 것이다. 작가는 그런 부분조차 작품의 일부로 담아냈다. 관람객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에 놓여있는 비누 조각상 작품은 사람들이 손을 씻는 용도로 사용되면서 마모되었고, 그 과정을 그대로 전시장으로 가져왔다. '불상'은 그런 과정을 담은 작품이었다. 사라진다는 것과 존재한다는 것이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준다.
'폐허 풍경'은 인간이 이루어 나아가는 문명이 치열하게 쌓이고 끝내는 소멸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린 역사라는 명칭을 붙여 이것을 유기적 관계로 묶어내지만 무언가가 사라지고 대치되었던 치열한 과정이 현재도 반복되고 있다.
'폐허 풍경'의 인상적인 부분은 나무 지지대였다. 작가는 비누라는 소재로 소멸해가는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지만 미술관 측은 작가의 원래 의도를 지키기 위해 기울어가는 비누 기둥에 지지대를 세운 것이라 했다. 과연 이것은 작가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스쳤다. 쓰러지고 녹아서 사라지는 것을 시각화한 작가의 작품을 끝내 보존하려는 과정이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