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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Dec 09. 2022

나를 안타까워 하지 말아요

나를 안타까워하는 인물 중에 동생의 남편이 있었다.

매제는 언제까지 그렇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것이냐고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 물음에 대답하기가 애매했다.


“끝까지 가보려고.”


다소 그 말은 목적 지향적이었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과는 다소 맞지 않았지만

언제 까지냐고 묻는 말에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끝도 없고 시작도 없었다. 나는 언제나 여기에 있었다.


우린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세계에 끌어들이려는 것처럼

서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같은 말을 다른 내용으로 반복했다.


그러다 보면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 같은 내용이더라도 더 깊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결국 내가 썼던 소설에 대한 얘길 했다.


가족들 사이에서 철없는 낙인을 찍힌 채 살아가는 중년의 남자.

뭐 딱 내 얘기였다.


성공지향적인 삶을 살아가는 가족들 틈에서 주인공의 존재가 휴식을 주는 역할을 맡았다.

그로 인해 가족들은 한숨을 쉬면서도 한숨을 돌리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나는 끝내 그 이야기의 엔딩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는데,

매제처럼 나에게 그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며칠 지나면 말끔히 사라진다)


결국 나는 주인공이 가족들을 위해 취업과 평범한 삶을 약속했을 때,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엔딩을 썼다.


그게 일상을 사는 사람들과 섞일 수 없는 주인공이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었다.


매제는 이야기의 줄거리를 신중하게 듣고 있었다.

나는 그런 주인공의 삶이 남은 가족들에게 미묘한 파장처럼 영향을 미칠 것이라 했다.


매제는 내 얘기에 수긍하기보다 이야기의 결론에 다소 섬뜩함을 느낀 듯했다.

그는 나를 응원해줄 거라고 했다.


어쩌면 이 결론에 이르기 위해 내가 썼던 이야기의 결론을 얘기한 걸까? 씁쓸했다.


나는 그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자주 들었다는 80년대 음악을 나중에 가족들이 듣게 되는 상황을 썼다. 주인공의 죽음 이후 가족들은 그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데 그 노래는 나미의 <빙글빙글>이었다. 생전에 춤을 추는 것을 좋아했던 주인공이 듣던 노래였다.


디스코 음악의 신나는 비트 속에서 가족들은 서로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것처럼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나는 그 장면이 주인공에게 주는 가족들의 선물이 되길 바랬다.

그리고 작업실에서 엔딩을 쓰며 <빙글빙글>을 들으면서

그만 눈물이 핑 돌아버렸다.

이야기의 모든 것이 슬픔이 되어 나를 덮쳤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이야기 안에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나는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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