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의 세계일주. 한국에 돌아오면 모든게 달라질 줄 알았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풍경, 새로운 가치관들로 새로운 한국을 맞을 줄 알았다. 예상대로 맞았다. 정말 새로운 한국이었다. 이전보다 더 부정적이었고, 이전보다 더 형편없었다. 달라진 건 나밖에 없었고, 그대로인 한국과 나와의 괴리감을 소화하기 힘들단 것도 역시 새로웠다.
한국에 돌아와서 한동안 그리웠던 한식도 많이 먹고,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도 포함해서 많은 친구들과 사람들을 만났다. 1800만원으로 1년을 살만큼 아껴 살았는데, 남겨온 150만원이 2주만에 술과 음식들로 날라갔다. 만남은 쉴 새 없이 이어졌지만, 사람과 만날수록 회의감도 같이 따라왔다.
'돈과 시간을 들인만큼 이 사람과의 인연이 계속될까?'
사람을 만날수록 인간관계에 대한 허무함에 빠졌다. 스무살에 진입하고 각종 동호회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며 인연을 만드는걸 게을리 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살짝 당혹스러웠다. 이 후, 계획된 약속을 모두 취소하고 본격적으로 집순이 생활을 시작했다.
집에 있는 걸 지독히도 싫어하던 내가, 틈만나면 밖으로 나갔던 내가, 그래서 세계여행까지 한 내가, 외출이 싫어졌다. 1시간 거리를 2년동안 출퇴근했는데, 대중교통으로 반경 10분 이내도 버거워졌다.
한국에서의 나는 휴식을 몰랐다. 강박증이 심해서 한 시간이라도 가만히 휴식할 줄을 몰랐다. 처음 세계여행을 떠날때도 그랬다. 한달 일정을 완벽하게 짜놓고, 계획에 흐트러지는 일을 싫어했고, 엄청난 나만의 관광 스케쥴을 이행하고자 했다.
완벽한 계획은 애초에 없다. 계획했던 일들이 틀어지고, 인종차별이나 거리에서 침을 맞는 등의 충격적인 일을 당한 변수들로 계획을 지킬 수가 없었다. 돈을 아끼겠다고 계속해서 걸어다니면서 너무 피곤해 지기도 했다. 그럴때는 어쩔 수 없이 쉬어야 했다. 그렇게 쉬는 날들이 많아지고, 조금씩 여유로운 여행을 하면서 나는 여유로움에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는 조금 달랐다. 여기는 여행지가 아니라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한국이었고, 밥벌이를 해야 하는 곳이다. 한국에서의 루루는 항상 움직였고, 자격증을 땄고, 공부하고, 인맥을 쌓았다. 한국에 도착하니 한국인 루루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하지만 나는 여행으로 바뀔대로 바뀌어있었다.
장기여행은 엄청난 체력전이다. 매일 다른 도시로 이동하고, 짐을 푸르고 싸는 반복적인 과정에 지칠 수 밖에 없었다. 항상 다음 행선지를 정해야했고, 그곳으로 가는 교통편, 숙소, 그리고 길을 잃거나, 금품을 도둑맞는 비상상황에 긴장해야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으로 왔을때, 모든 긴장이 풀려버려서 였을까.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 졌다. 하지만 그 모습이 한국인 루루는 탐탁치 않았다. 왜냐하면 한국인 루루는 게으름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인 루루와 여행자 루루가 대적했다. 그 충돌 과정에서 멘탈이 부셔졌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않았던 자아들의 충동에 머리가 어질거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조그만 스마트폰 세상으로 도망치는 것 뿐이었다.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시대에 있다. 누워있는 나의 손에는 항상 스마트폰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에는 이쁘고 멋진 사람들이 많다. 항상 생글생글 웃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무기력해져 시들시들해진 내 몸을 보며 실망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보며 죄책감에 시달렸다. 세계여행을 끝내면 정말 멋진 내가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실상은 정반대이니 더욱 더 처참했다.
여행중엔 내 사진 올리기에는 급급할지 몰라도 SNS 속 친구들이 뭐하고 사는지는 관심가질 여유가 없었다. 여행하기가 바빴으니깐. 성격 급한 한국인은 인스타 사진 하나 뜨는데 1초나 걸리는 저렴한 호스텔 와이파이와 맞지 않다. 영상이 뜨길 기다리다가 핸드폰 쥐고 잠든 적도 많았다. SNS보다는 당장 내일 가야할 도시 정보, 교통편, 지도를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
반대로, 초고속 인터넷을 탑재한 한국형 sns는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만든다. 시간 많고, 할 거 없는 백수가 sns에 중독되는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에 휩쌓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화려했던 지난날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에 12시간씩 인스타그램을 했다. 인친들 피드가 끝나면 어떤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스토리가 있다. 스토리를 다 보면 어떤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올린 근황이 있다. 무한한 1분짜리 클립동영상이 있고, 유머글들이 있다.
넓은 땅을 휘젓고 다녔는데, 이제는 손바닥만한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나라니. 갈수록 눈이 침침해지고 거울을 보면 눈동자가 반쯤가려질 정도로 눈꺼풀이 쳐져있고, 눈 밑 다크써클이 얼굴빛을 더 흐렸다. 무엇보다 정신이 흐려져 갔다. 무기력에서 헤어나오기가 힘들었다. 몸을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여지지 않고, 잠에서 깨고 싶어도 끊임없이 잠이 왔다. 심하게는 자살과 자해 생각이 머리에서 둥둥 떠다녔다.
스스로도 너무 어이가 없었다. 앞날이 빛날 것만 같던 예상과는 다르게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 것이다.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말을 하고, 인생은 살만하고, 세상은 참 아름답다고 말하고 다녀놓고, 지금 와서는 고작 죽고싶다니. 실컷 재미보다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실패자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 같았다.
무기력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기 시작한건 한국 오자마자 등록해놨던 수영강습이었다. 여행하는동안 바다에서 스노쿨링과 스쿠버다이빙을 배웠다. 물이 주는 안정감에 빠진 나는 한국에 가자마자 수영 등록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렇게 등록해놨던 강습에도 몸은 따라주지 않았다.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3주가 지나서야 용기를 내서 첫 수업에 갔다. 너무 뒤늦게 온 날보고 선생님이 '왜 이제야 왔어요?'라고 했다. '그러게, 왜 이제야 왔을까' 생각하면서 '이제라도 오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푸어푸하면서 물 몇번 먹고 나니, 정신이 좀 차려졌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라는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왜 무기력에 휩싸였는가를 계속 생각해보니 SNS가 주된 문제점이였다. 물론 그것만이 요인이 되진 않았겠지만, 당장으로써는 보지 않아도 특별히 문제 없는 SNS를 끊는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인스타그램 1주일만 끊어보자고 다짐했다. 생각보다 내 생활에 아무 지장이 없었고, 오히려 족쇄에서 풀려난것처럼 기분이 꽤 괜찮았다. 소중하게 생각했던 인스타 팔로우들이었는데, 결국은 나를 찾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인스타그램을 끊은 1주일이 1개월이 되고, 3개월이 되고, 6개월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