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렇게 아둥바둥 다른 사람이 되려 했을까

by 오지

어릴 적엔 내 모습이 싫었다. 모두가 겪는 사춘기였는지는 몰라도,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과 나라는 사람 모두가 싫었다. 20살이 되고 화장이라는 걸 시작하면서 찌질했던 모습에서 점차 이뻐지는 내 모습에 자신감 풀충전 되던 때도 있었다.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고 나를 표현할수록 기분이 좋았다. 어리니깐 언니오빠들이 잘 챙겨주니깐 그것도 좋았다. 하지만 겉으로는 자신감에 차보여도 속으로는 남들과 비교하면서 관계에서 나의 위치를 끊임없이 쟸다. 그렇게 나의 유능함을 느끼고 싶었다. 나는 자신을 그대로 사랑하지 못했다.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고, 다른 존재가 되고 싶었다.


나는 나로 태어난 사실이 싫었다. 이런 엄마 아래에서, 이런 집안 아래에서, 이런 동네에서, 이런 한국에서 태어낸 나를 끊임없이 부정했다. 인플루언서, 연예인들의 sns를 기웃거리며 인기 있고 남들이 보기에도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중학생 때 이야기다. 나는 반에서 그저 소심하고 조용한 학생이었지만, 속으로는 항상 인기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서 그런 친구들을 관찰하고 따라 했다. 어떤 친구는 목소리가 크기도 했고, 어떤 친구는 말에 욕을 달고 다니기도 했고, 어떤 친구는 스킨십을 서스럼치않게 했다. 나도 저렇게 하면 내 주변에 친구들이 많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친구들의 이상한 눈초리였다. 마치 얘 갑자기 왜 이러냐는 둥. 내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단번에 껴입으려니 이상해 보이는 건 당연지사다. 다시 낙담했다. 나는 누구처럼, 또 누구처럼, 어떻게 해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그 어린 나이에 스스로를 그렇게 판단했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나다워야 가장 빛나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사람이 빛날 때는 가장 자신다울 때이다. 그 사람이 제일 잘하고, 몸에 배어있으며, 좋아하는 것을 할 때 잘하지 못할진 몰라도 뿜기는 에너지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환경이 아니다. 본인이 본인의 모습을 인정해 줄 때. 바뀌지 않아도 모습 그대로 수용해 줄 때, 가장 자신의 역량을 뽐낼 수 있으며 가장 아름답게 발휘할 수 있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뽑자면 단연코 중남미 여행이다. 중남미 여행 당시 갖가지 알록달록한 문양이 들어간 현지 복장을 입고 다녔다. 내 몸을 이루는 색깔은 보라색, 분홍색, 빨간색, 노란색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핑크색을 좋아하는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몸에 내가 좋아하는 색깔이 하나라도 있어야 기분이 좋았다. 나는 내 성격이 여성이라는 단어와 멀다고 생각했는데, 세상 여성스럽고 꼬마 숙녀 같은 모습으로 중남미를 여행했다. 나를 이루는 색깔들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인생 처음으로 탈색도 해보고, 핑크색과 초록색으로 셀프 염색도 했다. 초반에는 튀는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다니기도 했지만,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은 ‘your style is very nice’라며 따봉을 건네주고 갔다. 내가 좋아하는걸 그대로 인정받는 느낌은 난생처음이었다. 자신감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피부는 타면 타는 대로 멋있어 보였고, 코도 뚫고, 귀도 뚫었다. 하고 싶은걸 마음껏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았고, 그게 자연스럽게 내 이미지가 됐다.

여행지는 그저 발 닫고 마음 가는 대로 다녔고, 동행도 만나서 편한 사람과 다니면 그만이었다. 남들과 같아지기 위해 유행에 쫒는 옷을 입거나, 남들 사이에서 최대한 튀지 않는 색의 옷을 입거나,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억지로 웃는다거나, 피부와 머릿결도 관리하지 않았다. 그냥 정말 마음 가는 대로, 남보다는 내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나 그대로를 발산했고, 나를 어떻게 드러내야 더 나다울 수 있을까 생각도 많이 했다.

나를 신기하게는 봐도, 이상하게 보지는 않는 현지인들의 눈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 모습이 그대로 수용된다.’라는 느낌을 받은 것 같다. 유럽처럼 길만 걸어도 캣콜링이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인종차별을 당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특이한 옷차림을 한 키 작은 여자 아시아인을 신기해하고, 귀여워했다. 어쩌면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들에게 더 특별했을 수도 있다. 그때는 한창 BTS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나는 아이돌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K-POP이 빌보드 몇을 찍었고, 세계 사람들이 케이팝에 맞추어 단체로 춤을 추는 영상을 보고 해도 또 언론이 과대포장해서 하는 말이겠지라며 무시했다. 조금씩 피부로 와닿았던 건 런던 피카델리 광장에서 언어교환으로 가서 만난 친구들이 저 위에 걸려있는 게 BTS라고 알려주고, 멕시코 시골 공원에 갔더니 솜사탕 파는 매대에서 라디오로 한국 아이돌노래가 나오고, 잠깐 경유지로 거쳐가는 칠레 작은 동네 쇼핑몰 앞에서 아이들이 우루루 나와서 한국노래에 춤을 추고, 터키 셀축이라는 작은 마을에서는 6명의 여자 아이들이 다가와 한국어 공부 노트를 보여준 적도 있다. 나는 그 상황에 있었음에도 우연한거겠지라며 케이팝의 위상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는 아직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North?라고 되묻는 사람도 많았고, 일본인에서 왔냐, 중국에서 왔냐는 소리만 엄청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서야 왜 그렇게 코레아나를 내 뒤에서 수군댔는지 알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엄청 높았다. 이제는 한국 모르면 바보라고 말할 지경까지 왔으니, 그 성장의 시기에 세계여행을 했다는 게 꽤나 자랑스럽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귀엽고 톡톡 튀는 긍정적인 한국인의 이미지를 주었다면 좋겠다.


그들이 나에게 친절했던 것처럼, 나도 그런 중남미 사람들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걸쳐도 비난하지 않고 멋지다고 말해주어서 행복했다. 페루에서 알파카인형을 들고 다니면서 내 딸이라고 소개하면서 유치한 말을 하더라도 그들은 귀엽게 봐주었다. 내가 그렇게 유치하고, 귀여운 내면이 있는 줄도 몰랐다. 애교가 많은 줄도 몰랐고, 개구쟁이에 웃음이 많은 줄도 처음 알았다. 중남미여행은 정말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여행하면서 매번 바뀌는 프로필 사진을 보고 엄마는 ‘너 정말 행복해 보인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답했다.


나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고 한동안은 여행사진을 찾아보지 않았다. 심지어 거북스러울 정도로 보기가 싫었다. 구글포토에서 몇 년 전 사진이라며 뜨는 여행사진도 애써 외면했다. 문득‘왜 나는 나의 가장 멋진 시절의 모습을 피하게 됐을까?’ 생각해 보았다. 자랑을 일삼아도 모자랄 판에, 왜 이유 모를 거부감이 들었을까. 그 질문에 답을 찾기까지 꽤 오래 걸렸는데, 버스를 타고 멍을 때리다가 갑자기 이유를 찾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유레카!’를 외쳤다. 나는 그 시절의 행복한 나를 보기가 거북스러운 게 아니라, 그와 상반된 현실을 너무나도 마주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웃는 나를 보면 이유 모를 괘씸스러운 마음이 들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현재의 나는 조그마한 일에 극도록 예민하고, 눈물도 많이 흘리고, 시시때때로 불안함을 느끼며, 평범한 옷을 입고 다니며, 웃고 싶지 않아도 웃어야 하는 현 상황이 너무도 싫었다. 행복하게 웃는 사진을 보면 상반된 현재가 보여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불편함이 올라와서 보기가 힘들었다. 결국 그 사진들은 지금의 나를 보는 거울이었다. 값지게 얻은 추억의 주인공인, 활짝 웃고 있는 행복한 여행자였던 과거의 나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동안 ‘여행을 갔다 오는 게 아니었어.’라면서 후회하던 날들도 있었다. 여행을 안 다녀왔으면 커리어도 계속 늘어났을 것이고, 좀 더 안정적으로, 그리고 평범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라면서…


현재는 불안정한 지금도 많은 모습 중에 하나임을 인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의 불안한 모습을 내가 거부한다면, 그 누구도 나의 불안한 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제일 가까워야 하는 존재는 나다. 하지만 나는, 그러니까 루루는 보기 싫은 자신의 모습을 계속 외면할 게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두려움을 직면하고, 싸우고, 다퉜던 많은 날들이 무사히 거쳐왔고, 그 사실이 루루의 용감함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나는 불안한 루루가 다가와도 그와 함께 앞으로도 잘 해낼 것이다.


나는 항상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멋진 연예인들을 동경했고, 잘 나가는 인플루언서를 동경했다. 그리고 비교했다. 그런 사람들과 비슷해지면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줄 알았다. 실상은 그 반대이거나, 잠깐뿐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나로서 가장 빛나기 때문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나. 가장 나다운 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여줄 수 있을 때, 혹여나 보여주는 게 부끄러워 수치심이 들면 그것 또한 나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외면지 않겠다. 나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겠다.

언젠가 서핑보드로 파도를 자유자재로 타며 인생을 즐기는 나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넘어져도, 파도에 삼켜져도 나는 그저 웃고, 다시 일어선다. 그렇게 나는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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