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나지 않아

by 오지

20대가 되어 자유를 맞았다. 자유… 그래 그때는 그게 진정한 자유였다. 돈을 벌 수 있는 나이가 됐고, 심심하다 싶으면 언제든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밖으로 나갈 수 있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사서 먹을 수 있고, 입고 싶은 게 있으면 입을 수 있었다. 그냥 그런 사소한 것만으로 나는 새로운 세상을 살고 있었다.

주변에 친구들은 오히려 그 자유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부모님이 하라는대로만 하면 됐던 어릴때가 그립다고 했다. 그에 반해 나는 모든게 좋았다. 나의 전성기라고 하면 첫 번째는 단연코 20대 초반이였다. 날라다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하지만 현재의 나는 그렇지 않다. 스스로 노력하면 될 줄 알았던 우울증이 4년이 넘도록 사라지지 않고 찰떡같이 붙어있다. 그야말로 좌절이었다. 배신감이 들었다. 세상으로부터.

자우림 노래 ‘슬픔이여 이제 안녕’ 노래 가사 중에 ‘슬픔이여 이젠 안녕. 다신 나를 찾지 말아 줘. 어떤 추운 밤에도, 어떤 궂은 날에도.’ 라는 부분이 있다. 자우림을 좋아하는 나는 노래방에 가면 항상 자우림 노래를 부르는데, 드문드문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정말로, 정말로 마지막으로 부르리라는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다음에는 부를 일이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불렀다.


하지만 너는 떠나질 않는구나. 안녕을 몇 번이고 고해도 너는 떠나지 않는구나.


대체 뭐가 문제일까. 인생에서 부닥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만, 어떻게 해봐도 해결되지 않고, 방법도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은 무너진다. 아무리 정답을 생각해봐도 추측만 있을 뿐,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 감정이 해소되려면 대체 얼마의 시간이 필요 할까. 아무리 나아가려고 해도 자석에 끌려가는 것 마냥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대로 악마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릴 까봐,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할 까봐 두려웠다.


깊은 무기력을 처음 느끼기 시작한 때는 아리송하게도 세계일주를 끝낸 뒤였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겪은 이야기를 강연하는 모습이 아니라, 방안에서 이불을 덮고 그저 SNS 피드나 훑어보고 있는 내 모습이 스스로 너무 실망스러웠다. 무리(사회)에 적응해버린 동물과 1년동안 곳곳을 누리며 거친 인생을 산 동물의 온도가 다르니 친구들과 만나도 즐겁지가 않았다.


그 힘든 여행을 하고 얻은 결과가 고작 무기력이라니. 그 모습이 스스로 너무 절망적이었다. 빛나고만 있을 줄 알았던 날들이, 어둠과 안개가 짙게 깔린 숲 속으로 변해 있었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으스스한 소리, 방향감각도 잃어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는 당혹감.

그저 웃음을 머금고 뛰어놀던 20대 초반의 나는 사라지고 20대 후반의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아니면 오히려 내 몸은 힘을 내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얼마나 잘되려고 이런 절망을 겪고 있는 건지. 이 고통이 꽤 값진 고통이면 좋겠는데.


그래도 나는 믿는다. 내가 잘 해내리란 것을. 어쨌든 이렇게 살아있지 않은가. 어쩌면 지금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한 고비, 고비를 버텨 지금에 왔다. 또 얼마나 힘든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행여나 무너지더라도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 할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비록 빛나진 않을지라도 세상에서 가장 힘든 싸움을 하고 있을 것을 나는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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