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사는 게 큰 벽처럼 다가오는 때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도 상쾌하지가 않고, 인생이 어디로 질질 끌려가는 것만 같은. 처음엔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기도 했지만, 갈수록 나만 엄살부리는 것 같아 주저하게 되고,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누가 진심으로 이해할 수는 있을까', '당신의 인생도 힘든데 이걸 들어줄 여력이 있을까'하며 혼자 꾸역꾸역 삼켰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식도를 통해 내려가는 고통의 신물은 더욱 더 따갑기만 하다.
어둠 속에서 넘어지더라도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난다. 그렇게 서른 발자국을 걷고 다시 엎어진다. 다시 힘을 내서 일어나 보지만 이내 열 발자국. 그리고 이내 한 발자국도 내딛을 힘이 없을 때 더 이상 희망 찾기를 포기해 버린다. 나는 여기서 끝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절망스럽고, 계속 가봤자 아무것도 없을 거라며 절망감이 온 마음을 휩쌓는다.
어쩔 때는 막연하게 인생이 갑자기 끝나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 기분에 휩쌓이면 나는 어쩔 줄을 몰라 어둡고 서늘한 공기가 맴도는 동굴로 숨어버린다. 가능성이 나타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인간은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완전히 탈진해 버린다. 나는 그런 인생이 나에게 올지 짐작조차 못했다. 언제나 자신감에 차있었던 청춘이었고, 심지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 나와는 아예 다른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했었으니깐. 계속된 실패로 인해 나의 그리고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직 완전히 주저앉지 않은 이유는 이런 나라도 앞으로 반짝이는 시기가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다.
“이 어둠도 끝나면 빛이 보이겠지”
좀 길어서 지치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환해지는 터널이 느낌 탓만은 아닌 것 같아 희망을 가져본다.
나처럼 혹은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 가능성이란 내가 나에게 손길을 내어줌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동굴이란 깜깜하고 답답한 환경에 지쳐 쓰러진 자신 옆에서, 정신 차리라고 뺨도 좀 때려보고, 입에 물도 가져다 먹이고, 아니면 그냥 같이 누워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좋다. 조금만 쉬었다 가자며 말을 건네어보는 것도 좋다. 뭐가 제일 힘들었냐고 물어봐주고, 고생했다며 다독여도 주고 말이다.
처음엔 쉽게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나를 무시한 건 네가 아니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귀찮다고 그만 좀 질척대라고 밀어낼 수도 있고, 서로 싸우기도 할지 모른다. ‘네 말만 맞는 거 아니다. 귀를 좀 열어라.‘, ’ 난 힘들다. 할 거면 너 혼자 해라.’ 마치 내가 나를 보면서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생소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일평생을 같이 살아왔지만 처음 보는 듯한 이 낯섦.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라는 존재가 계속 밀어내더라도 계속 찾아가자. ‘나’는 하나가 아니다. 굉장히 많은 자아들이고, 자아를 인식하는 ‘나’ 또한 하나의 자아다. 많은 자아들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정체성에 혼란이 올 수도 있다. ‘이게 나라고?’싶은 부분을 잘 캐치하고 탐색해야 한다. 항상 강한 자아만 인정하려고 했으나, 결국은 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쓴 맛을 미리 맛본 건 행운지도 모른다. 앞으로 더 큰 파도가 불어닥치면 그래도 조금은 파도를 탈 줄은 알 테니까. 파도 안에서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파도가 지나간 뒤에 잔잔한 바다를 볼 기대감에 부풀 수도 있을 테니까.
한 번은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 내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섬에서 집으로 가는 배에 탔는데, 도착할 때 즈음, 집에 가까워진 줄만 알았던 배가 사실은 해적이 우리를 인질로 잡아 이상한 곳에 정박한 것이다. 해적은 우리에게 몬스터에게서 살아남으면 집에 갈 수 있다는 게임을 제안했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몬스터를 피하느라 순식간에 혼미백산이 됐다. 나는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나는 거야. 싫어. 너무 싫어. 벗어나고 싶어. 이 상황이 너무 싫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나의 몸이 포털을 탄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배로 돌아왔다. 몬스터가 나오는 상황은 정말 말 그대로 환상 속이였다. 하지만 돌아온 사람은 나와 어떤 남자뿐이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 방석 위에는 눈 한쪽이 둥둥 떠있었다. 나는 그 눈이 제3의 눈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은 마음으로부터 창조된다는 사실을 인식한 사람만이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으며,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느낀 사람은 환영을 벗어나 진짜 현실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해석했다. 나는 게임 안에서 도망치고 싶은 기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 힘든 기분을 충분히 인정해 주었고, 그래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외부적인 상황에 빠져들기보다, 나의 마음에 몰입하고, 감정을 인정하고, 무의식의 소리를 그대로 느껴준다면 현실이라는 환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교훈 같았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들이 날 괴롭힐 때, 그럴 때마다 외부의 요인에 집중하기보다, 힘들고 지친 나를 응원해 주고, 외치는 소리에 귀 기울여 주는 든든한 내가 있다면 우리는 그런 상황에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세계일주에서 돌아오고 깊은 우울함에 빠진 것은 어쩌면 여행을 통해 더 성장한 내가 되었기에 그리고 앞으로 더 큰 내가 되기 위해 겪어야 했던 성장통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인생을 조금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경험을 듣거나 책으로 읽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직접 우산 없이 비도 맞아보고, 벌레에게 물려도 보고, 진흙밭에서 굴러봐야 발견할 수 있는 게 보물 궤짝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은 내 것이 될 수 없다. 오직 내 것 만이 있을 뿐. 백명의 사람이 있다면 백개의 인생이 있다. 어떻게 해서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그대로 산다는 건 불가능하며, 스스로의 경험 없이는 완전히 얻을 수 없다는 게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는 오직 내가 인생에서 느끼는 느낌들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자기계발서나 유튜브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참고는 될 수는 있겠지만, 자신이 직접 경험하며 얻는 것보다 값진 건 없다.
지금까지 내가 배운 인생은 이러하다. 앞으로도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배우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봄여름가을겨울 시기마다 다른 나를 접하게 될 것이다. 그럼 또 당황하고, 마주하고, 싸우고, 지치고, 화해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