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첫번째 방법은 일기다. 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나의 첫 일기장 이야기를 하고 싶다. 초등학교 때 의무적으로 쓰던 그림일기 이후, 자발적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한 시기는 중학교 사춘기 시절이었다. 세상이 밉고, 엄마가 밉고, 내가 싫을 때, 그때마다 연필을 들었다. 거리에서 나눠주던 학원 광고용 공책을 반으로 잘라서 사용했다. 이쁜 공책이 아닌데도 첫 일기장이라 그런지 그 오렌지색 공책이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에 내가 신뢰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는 제일 큰 적이었고, 가족, 친구, 이웃 모두 신뢰할 수 없었다. 일기장만이 유일하게 내 마음을 받아주는 듯 했다. 내 주변을 둘러쌓고 있는 부정적인 것들을 모두 쏟았다. 엄마와의 반복되는 싸움에 몸과 마음이 지쳐갔고, 엄마가 싫고,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을 모조리 적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공책을 엄마한테 들켰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공책 대부분의 내용이 엄마 욕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엄마는 나에게 큰 실망을 했다. 나도 죄책감이 너무 큰 나머지 울면서 공책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때의 나로서는 내가 정말 미웠다. 세상에서 제일 큰 불효자같았다. 후회스럽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지금와서 그때를 돌아보자면 나는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당당했어도 됐다. 어리고 순수한 루루는 아무리 자신의 의견을 엄마에게 말해도 엄마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어른의 힘을 못이겨 결국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쪽으로 결정했다. 그나마 도움이 되었던게 일기장이었지만 그마저도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그만두었다. 힘든 마음을 일기장으로밖에 털어놓지 못했던 상황을 겪었다고 생각하니 지금의 어른으로서 미안한데, 오히려 그 때 엄마가 조금 더 나를 이해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아쉽다. 물론 엄마 입장에서도 마음이 무너졌겠지만 힘이 없는 어린 나와 좀 더 좋은 타협점을 봤다면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까 싶기도 하다. 나도 엄마로 인해 큰 상처를 받았고, 요즘 너무 힘들다고 호소해야 했다. 지금 사춘기 과정을 겪고 있으니, 좀 더 나를 조심히 대해 달라고 말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그마저도 일기에 썼어야 했다. 만약 내가 계속 일기를 써왔고, 나에게 좀 더 솔직하고 당당했다면 조금은 덜 힘들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글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회사에 다니거나 여행을 하면서 떠오르는 영감을 핸드폰 메모장에 끄적이기는 했으나, 속마음을 그대로 들어내는 일기는 쓰지 않았다. 우울증에 걸리고 명상과 함께 시작한게 감사일기다. 하루에 감사한 것 5가지를 찾아 썼다. 하지만 크게 효과는 없었다. 억지로 감사하는건 오히려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을 더 키우는 꼴 밖에 안됐다. 그 뒤로 감정일기, 관찰일기 등등 여러가지 시도 하다가 요즘에는 모닝페이지를 쓴다. 가장 무의식이 깨어있는 시간이 아침에 일어났을때이기 때문에 자신의 무의식을 잘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들었다. 사실 무슨 효과가 있을까 하면서 반신반의로 시작하기는 했으나, 그렇게 쓴 것 치고 처음 모닝페이지를 쓴 날부터 확실히 효과를 느꼈다. 그 전보다 한결 하루가 가볍게 느껴졌다. 그 이후부터 3개월은 써보자 하고 시작한 모닝페이지가 이제는 아침에 일어나면 일기장부터 찾는다. 그래서 따로 두는 곳 없이 배게 아래에 두고 잔다. 그냥 아무 규칙성도 없고, 분량도 정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한다는 방식없이 떠오르는 생각을 사정없이 써내려가면 된다. 내용의 반은 시덮잖은 것들도 많다. ‘피곤하다.’, ‘회사가기 싫다.’, ‘월급일 얼마나 남았지.’ 등등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해서 쓰기도 한다. 아침부터 모닝페이지에 쓰여지는 것들은 오랫동안 해온 걱정과 고민도 있고, 당장에 어제부터 힘들었던 일도 있다. 아침부터 걱정이 술술술 나오는거 보면, 그동안에 얼마나 힘들었으면 잠자리까지 걱정과 불안을 안고 잠들었을까 싶어 안쓰럽기도 하다. 그렇게 1년을 썼다. 그동안에 바뀐 공책만 세권이다. 모닝페이지는 이제는 빠질 수 없는 루틴이 되었다.
일기를 많이 쓰다보니, 글쓰기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글을 쓴다는 게 너무나도 재밌다. 글쓰는 것은 내가 가장 오랫동안 해왔던 일이자, 내 마음을 정화시키는 활동이기도 하다. 글쓰기는 나의 일상이다. 내가 제일 오랫동안 해온 나의 취미이자 정서적 안정제이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글을 쓸 때는 바다를 헤엄치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세계여행을 하는 도중에 다합에서 스쿠버 다이빙을 배우면서 물과 친해지게 되었는데, 내 생각을 그대로 글씨로 녹아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거침없이 글이 써질때는 바다에서 헤엄지는 고래가 된 기분이다. 편안하고 고요한 느낌. 나만의 세계로 깊숙히 들어간 느낌. 글을 집중해서 쓸 때 그 쾌락은 꽤나 중독적이다. 하지 않으면 불안한 중독과는 다르게 확실한건 이건 꽤나 건강한 중독이다. 하면 할 수록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난달까. 가장 친한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 끊이질 않으며, 또 과거의 나와 현재, 미래의 나를 연결해주는 매개체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마찬가지이며, 내가 유일하게 내 속마음과 나의 욕구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이다.
물 안에서는 걱정이 사라진다. 골칫덩어리들이 둥실둥실 물로 씻겨져 내려간다. 마찬가지로, 나의 감정과 생각이 두리뭉실하게 흩어져있다가 글이라는 매개체로 좀 더 자세한 형태로 모습을 비추고 나면 걱정이 덜어지고, 아픔이 씻어진다. 이 흘러내려간 슬픔이 글이 되고 사람들에게 닿는다면, 또 그 사람의 슬픔까지 씻어주겠지.
지금까지 말한 이유로, 결국 나는 글을 쓰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분명 나랑 똑같은 상황을 겪은 사람이 있고, 내 글이 그 사람에게 공감과 위로 혹은 도움이 될 수 있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다. 얼마 전 <나탈리 카르푸센코 사진전 : 모든 아름다움의 발견> 전시회에서 인상깊은 문구를 봤다.
언젠가 Gregory Colbert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당신의 시선을 통해 세상에 보여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당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재능을 글쓰는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확신한다. 지금까지 재능은 신이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는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신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무엇을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은 모두를 사랑하니깐. 나는 선택받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니 재능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분명 모두에게 재능이 있다.
내가 느낀 재능이란, 어떠한 외부 조건과 상관없이 내가 몰입하여 즐길 수 있고, 어떠한 물질적인 보상이 없더라도 그 행위를 함으로써 성장하고 싶고, 세상에 내가 느끼는 즐거움을 함께 느끼고자 하는 열망이라고 정의내렸다. 이 글이 출판 될지는 모르겠다. 나를 받아줄 출판사가 없을 수도 있고, 이야기가 다 떨어져서 더 이상 쓸만한게 없을 수도 있고, 또 나의 인내심과 열정이 바닥날 수도 있는 노릇이니 말이다. 출판이 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볼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보여진다는 자체가 즐거움으로 다가오기에 어쩌면 반은 성공이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이 재능을 존중하기로 했다.
나를 위해서 쓰기 시작한 글이 이제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질 준비를 하고 있다. 어쩌면 나에게 온 우울증은 다른 아픈이들을 위해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세상이 의도한 것이라면 나는 단연코 달지만 쓴 이 눈물을 달갑게 받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