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불안을 빼놓을 수는 없는 걸까

by 오지

나는 매사에 불안하다. 숨을쉬며 살아가는 순간순간에 불안이 붙는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나에게 무슨 상황이 벌어지는 건 아닌지,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 건지. 여러 가지 강박이 따라다닌다. 그리고 난 이 불안에 많이 지쳐있다. ‘불안해하지 마.’, ‘마음을 평온하게 해봐.’ 이런 충고는 불안에 자주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못된다. 왜냐하면 갖가지 방법을 다 써봐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불안을 떨쳐버리고 싶은 건 나다.

나는 자아 성찰을 습관적으로 한다. 자아 성찰이 아니라 자기검열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까. 잘되고 싶어서, 성장하고 싶어서 한 일이었지만 결국 나를 더 망가트린게 아닌가 다시 걱정을 한다. 자기 성찰이 나를 갉아먹는 행동일 줄을 누가 알았으랴. 불안을 없애려 한 행동이 결국은 불안을 더 크게 불러왔다.

나 또는 남이 하는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했다. 누군가에게 감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것도 항상 함께있는 자신으로부터. 중독에 빠지는 건 쉽지만, 그걸 다시 되돌리는 건 어렵더라. 이미 가버릴 대로 가버린 내 마음이 다시 평화로운 마음을 되찾기 위해서는 너무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인터넷에서는 자기 계발로 성공, 명예, 심리에 대한 내용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콘텐츠에 제일 취약한 게 바로 나같은 사람이다. 불안한 마음이 가득한 사람은 인터넷이라는 정보 과다인 바다에서 아주 좋은 먹잇감이다. 끊임없이 먹잇감을 줘도 거부하지 않고 잘 받아먹는데다가, 살을 부풀린 다음 잡아먹기 위한 아주 좋은 먹잇감.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수많은 책을 읽고, 동영상을 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잠깐 좋아지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니 더 악화됐을지도. 이제는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포기하면 쉽다는데 포기하는 방법도 잃어버린 것만 같다. 그런 마비 상태가 나에게 온 것이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불안과 우울은 신이 준 축복이라고도 말한다. 불안이 있어 남들보다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다채로운 삶도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르다. 거기다가 이렇게 '불안'을 소스로 글을 쓰고 있지도 않은가. 좋은 점이 많기도 하지만 어쨌든 고통스러운 건 사실이다.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그 고통에 잠겨버리는 것이라 했지만, 불안에 잠겨버리는 게 죽는 것만큼 무섭다. 불안 안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릴까 봐, 아무것도 못 하게 될까 봐, 사회생활도 제대로 못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될까 봐 두렵다. 불안은 그 정도로 나에게 큰 골칫거리다.


내가 불안성 우울증을 앓게 된 건 2019년 이후부터다. 그동안 수많은 일이 있었다. 호주 워킹 홀리데이도 다녀오고, 배우고 싶었던 분야 공부도 해보고,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 안에서 만족할 수 없었다. 예전만큼 열정도 나지 않았고, 재미도 없었다. 열정을 내려고 해도 마음이 따라 주지 않았다. 정말 환하게 웃을 때도 있었고, 슬플 때도 있었고, 화가 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 안의 불안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그런 시간을 거쳐 지금까지 왔다. 정말 힘들었겠다고 물어본다면 겸손 없이 단연코 '네.'라고 답할 수 있다.


그래도 그동안의 시간이 있어서 감정을 다루는 스킬은 조금씩 늘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더 나를 안심시켜 줄 수 있을까, 이 불안의 원인은 무엇인가, 나는 이 불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어떻게 불안을 밀어내지 않고 수용할 수 있을까. 이런 많은 시행착오로 인해 조금씩 성장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겪지 않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나에게서 불안은 떨쳐낼 수 없는 것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떨쳐내고픈 마음 역시 인정한다. 아마 내 인생은 이런 파도의 오르락, 내리락이 반복 될 것 같다. 그만 좀 따라와라 하다가도, 포기하고, 또 다시 도망가고, 포기하고를 반복하는. 이쯤이면 그냥 실체가 되어 '안녕'하고 나타날 것만 같다.


숭 (5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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