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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 Jul 09. 2024

상처는 그저 응원해주기

간지러운 귀를 두고 귀후비개 찾지 않기, 트라우마에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

 귀가 가렵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병원에 가면 원장님은 약처방을 해주신다. 그러고 나서 항상 하는 말은 '건드리지 않기'


 이번 봄부터 심해진 비염으로 코에 왕건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온다. 없애면 다음날 다시 찾아오고 다시 찾아오고. 심지어는 숨 쉬기가 불편해질 정도로 콧구멍을 막기도 한다. 병원에 가니 원장님은 약처방을 해주신다. 이번에도 하는 말은 역시나 '건드리지 않기'


 그 역치를 넘기기만 하면 된다. 무의식적으로 향하는 손가락과의 힘겨루기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이건 내가 하는 게 아니고 내 몸이 하는 것이오... 라며 뇌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자의 하찮은 핑계다.


 오늘도 나는 가려운 귀를 저버리지 못하고, 홀린 듯이 귀후비개를 찾아들었다. 시원하게 파고 나면 가려움은 가신다. 하지만 현타가 몰려온다. 나는 오늘도 또 졌구나... 이 정도면 내 뇌에 연가시가 들어와 나를 조종하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가 해주어야 할 것은 언제나 '건드리지 않기'


 약을 먹는 건 일시적인 방책이다. 고통스러운 임계점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임계점을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상처를 치유하려면 꽤나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야 하는데, 그 안에서 상처가 주는 고통이 아닌, 참아내며 무사히 통증을 넘어가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다.


 이렇게 신체에 난 상처도 그러한데, 마음속 상처는 어떠하랴.


 잘못된 방법으로 내 안 트라우마를 다룬 경험이 있다.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는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바라보고 또 바라보고, 별로 괴롭지 않아도 또 바라보았다. 결국 그 행위가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우울증을 불러왔다. 아직까지도 그 습관이 남아있다. 이건 간지러운 귀에 반응하여 서랍 속 귀후비개를 꺼내는 행동과 똑같다. 상처에 에너지를 주지 않으면 된다. 바라보지 않기. 신경끄기. 그냥 그 상처가 잘 아물 수 있도록 응원만 가볍게 하고 넘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바라보고, 낫기를 원하고, 그것도 빨리 아물기를 원하며, 언제나 상처를 지켜보고 있었던 게 큰 화근이었다.


 우리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최선의 일만 하면 된다. 그 상처를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 약을 발라주고, 상처가 너무 심하면 이비인후과를 가듯 정신과를 가고 상담선생님을 만나고. 밤에 조용히 상처에 귀를 기울여주고. 그 정도만 하면 되었다. 과도하게 상처에 에너지를 주는 일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와도 같다.


 즉각적인 불편함을 없애고자 하는 행동은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초래한다. 우리가 상처를 대하는 방법은 그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해주고, 괜찮아지기를 응원하고, 자리를 뜨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분명히 사라지기 마련이다.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해서 지켜본다면 낫지 않는 상처에 답답함이 올라와 약을 바르면서 상처는 더 자극받게 된다.


할 일은 하되,

신경을 끄고,

조용히 응원해주기.

그게 우리가 상처를 대하는

최우선의 방법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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