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을 하고 싶었다.
"하하하. 진짜 순진하나?"
"순진이가 발표해봐라!"
어쩌라고! 내 이름은 순진이다. 드라마에도 나왔었던 그 이름 "순진"
정말이지 새 학기가 되면 툭툭 매시간 불렸다. 새 학기 첫 시간의 어색함은 이름이 특이한 아이들을 안주삼아 풀어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름이 이름이지 뭐! 내가 지은 것도 아닌데 멍 때릴 틈도 없이 매시간 소환되는 게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날짜를 보고 번호를 불러 발표를 시 키커나, 아예 수업에 큰 열정 없이 미지근하게 시간을 때우는 나이 많은 꼰대 선생님이 백 배 천 배 나았다. 재미있는 수업을 하려는 열정 많은 선생님들은 자꾸 내 이름을 불러젖혔다. 그들의 재미있는 수업을 위해 흩뿌려지는 내 이름이 싫고도 가여웠다. 아 그래! 까짓 발표는 하고 만다. 근데 살면서 백만번은 받았던 질문! 순진하냐고? 그건 왜 묻냐고!! 내가 지었냐고!!!
세상 선미는 다 선하고 예쁘더냐? 지혜는 다 지혜롭더냐?
되묻고 싶었지만 언제나 희미한(미련한) 웃음으로 넘기기 일쑤였다. 왜냐면 내 이름은 순진이니까. 내 이름이 세라나 서린이 같은 아주 도회적이고 도도했다면 한 번쯤 누군가의 농에 받아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이름으로 인해 가지게 되는 선입견은 첫인상만큼이나 강렬하니까.
[김춘수의 꽃]처럼 이름은 누군가가 불러주었을 때 그 의미가 깊어진다지만, 어떤 느낌으로 어떤 시공간에서 불러지느냐에 따라 파장도 변한다. 그 파장으로 인해 삶의 결도 조금은 변할 수 있지 않을까.
너는 그런 사람이어야 해. 너는 그런 사람이잖아. 너는 순진이 야. 너는 순진하잖아. 왜? 아니야?
굳이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것.
이름이 주는 스트레스가 극심했고 나는 반드시 개명을 하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새로운 이름을 상상해보는 일은 언제나 설렜다. 상상만 해도 웃음이 실실 났다. 그 언젠가가 언제 일진 모르나 상상은 언제든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당당하게 내 이름을 또박또박 적으며 사인을 해야지!
성인이 되면 개명을 해야지 했던 다짐이 유야무야 되어버린 건, 순전히 남자 친구 때문이었다. 그 이름이 너무 좋다고 했던 남자 친구 때문에 또 그 이름은 내 것이 되고야 말았다. 미친 듯이 사랑을 했고 몸서리치듯 헤어졌던 이별을 하고서 다시 그 이름을 벗어내고 싶었건만 세상사 쉬운 게 없는 거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미뤄지고.
결혼을 하고도 개명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는데. 나한테 다들 왜 이래!! 남편이 반대했다. 또 그 이름이, 징글징글한 이름이 좋다고. 이제는 초등 2학년인 우리 딸이 반대한다. 엄마 이름이 좋다고. 엄마가 이름을 바꾸면 우리 엄마가 아닌 것 같으니까 절대 안 된다고.
아아아 아아아아아 너네들 시집 장가보내면 할망구 되서라도 할 거야!!!
사랑을 한다. 사랑이 이유였다. 내가 싫었던 나의 무엇이 퍼덕퍼덕 살아 숨 쉬는 이유가. 부끄럽고 감추고 싶고 때론 수치심도 주었던 애증의 이름을 불러주고 사랑해주는 이들이 있어서, 쉬이 놓을 수가 없었던 거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온기에 울퉁불퉁 못생긴 이름이 닿으면 동그래지는 거였다. 마치 원래부터 동그랬던 것처럼.
자꾸만 서랍 속에 집어넣고만 싶었던 이름이었는데, 아이를 낳고 절로 서랍 속에 들어가 버린 내 이름.
밀어내기만 했던 가여운 내 이름이 문득 어색하다. 소낙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어느 날, 빗소리에 기대어 가만히 불러주고 싶다. 그간 미안했다고. 이제와 고백하지만, 고마웠던 순간도 있었다고.
그리고 세상에 빛을 보던 어느 날, 그 이름을 조심스럽게 처음 불러주었을 엄마 아빠를 생각해본다.
우리는 한여름의 새벽처럼 푸른시기를 통과해 온기가 남아있는 잿더미처럼 부드러운 상태에 이르렀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백수린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당해서는 안 되겠기에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베르톨트 브레히트 -
[참! 브런치 필명인 예담은 우리 딸 이름입니다. 딸은 예담, 아들은 시온입니다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