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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담 May 23. 2024

새벽을 여는 아이



중학생이 된 아이는 새벽에 홀로 일어난다. 5시 45분에 알람이 울리자마자 (왜 45분인가 하니 6시에 일어나면 여유시간이 모자라다고 한다. )  망설임 없이 벌떡 일어나 양치를 하며 정신을 깨운다.  이 점이 대단히 신선했다. 알람이 울려도 천천히 눈을 껌벅이다 몇 분쯤 뒤에야 몸을 일으키는  나 같은 사람에겐 아이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기상이 감탄 그 자체였다.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수험생이야? 잠을 푹 자야 피부도 더 예뻐져. " 


"아빠, 일찍 일어나야 얼굴에 붓기도 빠져. "


며칠 하다 말겠거니 두고 보았던 새벽기상은 세 달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하루도 소홀함 없이,  일초의 꾸물거림도 없는 단정한 루틴이다. 


"피곤하지 않아? 30분이라도 늦추고  조금만 더 자."


"엄마 근데 몸이 이제 적응을 해서 하나도 안 피곤해. 그 시간이 되면 어떤 날은 그냥 눈이 떠져. 일찍 일어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좋아."


오케이!  우리 부부는 아이를 응원해주기로 했다. 


벌떡 일어나 씻고 나온 아이는 교복을 입는다. 그리고 40분가량 공부를 했다. 인강을 듣거나 수학, 영어공부를 하기도 하고 영어원서나 소설책을 읽는 날도 많았다.  자신이 정해둔 새벽공부를  끝내고 나면 거울을 보기 시작한다. 선크림을 바르고 눈썹을 정리해서 그리고, 틴트글로스를 바르고 머리를 고데기로 곱게 단장한다. 볼터치도 톡톡.  (무릇 볼터치란 생기를 잃어가는 엄마한테나 필요하지. 꽃처럼 피어나는 너는 볼에 분홍빛 생기가 가득해 볼터치가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민들레 홀씨가 되어 날아가버릴  잔소리임을 안다. )


30분을 자아도취. 

7시 20분쯤 모든 의식이 끝나고  거실로 나와 어슬렁 거라며 소파에 펼쳐져 있는 어제 보던 책을 읽는다. 

우리 집의 암묵적인 철칙은 다른 사람의 책은 절대 건드리지 않기다. 정해둔 것은 아니지만 으레 그렇게 한다. 읽던 페이지가 덮여 있거나 보던 책이 사라져 버리면 아이들 말로 소위 킹 받기 때문이다. 책은 널브러져 있어도 된다. 책이 책꽂이에 각 잡힌 채 꽂혀 있으면 그 자체로 멋있지만 틈이 없어 보여 선뜻 다가가기 힘든 친구가 된다. 여기저기서 털털하게 출몰되는 책들은 친근하여 왠지 말 붙이기가 쉽다. 슬쩍 펼쳐보고 취향에 맞지 않아 덮어도 부담이 없다. 왜냐면 언제든 다시 볼 사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책에는 완벽을 갖다 붙이지 않는다. 완벽과 완독의 결계가 없어야 깊어질 수 있는 사이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비타민을 먹은 뒤 소파에 앉아 접어둔 책을 몇 페이지 읽고, 

셀카를 찍어 인스타 스토리나, 카톡 프로필 펑에 올린 뒤 8시가 되면  등교를 하는 중학교1학년.


매일매일 부지런하고 살뜰히 떠오르는 아이새벽은 스스로 선택한 하루의 시작이자, 고독의 실감이다.

일 년 새 많은 것이 달라지고 성장한 아이를 기록하려 했는데, 적다 보니 여전히 귀여운 존재이구나 싶다. 




너는 꿈이 뭐야? 


아이들이 말을 배우고 나면 어른들은 끊임없이 묻기 시작한다. 아니, 돌잔치부터 이미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가슴을 부풀린다. 뻥 하고 터져버릴 풍선이지만 알록달록 찬란하게 불어 본다. 바람이 좀 빠지면 어떤가.

또 불면 되지. 불어넣는 믿음에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관심 있고 특성 있는 분야가 드러나게 되고 부모는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잔뜩 불어놓았던 풍선이 머쓱해진다. 어느 부모는 기대감을 가지고 가까이서 더욱 북돋아주고, 또 어느 집은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를 멀리서 지켜보며 거리를 두기도 하고,  다른 집은 학업에 가열차게 채찍질을 하기도 한다. 무엇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지난한 과정을 견디며 마침내 찾아낸 종착은 또 다른 시작이 되기도 하고 정거장이 될 수도 있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의 기준은 하루에 몇 번 감탄하는가에 둘 수 있다는 글을 책에서 읽고 감명받았던 기억이 있다. 살아있음을 실감하고 감탄하며 살기 위해 꿈이 필요하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것만이 목표가 아닌, 내 삶에 영감을 주는 일이 무엇인지 편견 없이 찾아갔으면 한다. 그러한 과정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오로지 부모의 주관이 담긴 시선일 뿐이지.  하여 잊어버리지 말자고 나는 나에게 계속 당부하지만... 하루도 쉽지 않구나. 




친애하는 사춘기딸에게 수학 심화문제를  가르쳐주다가 급발진한 것을 반성하며 쓴 글임을 밝힌다. 


수학 앞에서 미간을 찌푸리지 않고, 다정한 명랑함을 지니고 싶다. 거울을 옆에 두고 가르쳐야겠다. 아이의 잘못된 점에 몰입하여 확대해석하지 말고 떨쳐야지. 순간순간 나의 표정을 확인하며. 

자고 일어나면 여봐란듯이 새로운 날이 시작되며 뭔가 말끔해지는 기분이 좋다. 사춘기 아이의 날들도 그렇게 흐르길 바란다. 이른 새벽이 주는 고요한 기대, 햇살로 채워지는 아침이 선사하는 시작의 기쁨을 음미할 수 있다면 널뛰는 호르몬 따위야 뭐 가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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