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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담 Jan 16. 2024

사춘기 아이의 MBTI

그녀의 이중생활


몇 달 전, 아이가 뜬금없이 댄스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성격상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첫째의 말은 허투루 흘려듣지 않는다. 생각하고 고민을 끝낸 뒤에 꺼낸 말일테다. 

INFP의 정적인 성향을 지닌 아이는 소설 쓰기와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많은 반면,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하는 활동은 내켜하지 않았다. 관광지에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털썩 소파에 앉아 어김없이 외쳤다. 


"아! 기 빨려."


그러면 또 쉬느냐. 아무리 쉬라고 해도 꾸역꾸역 눈을 비비며 책상에 앉았다.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미친 듯이 몰입했다. 그 시간이 채워지면 그제야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고속 충전이 되는 듯했다. 스스로를 치유하고 채우는 방법을 적확히 안다는 것은 행운이구나 싶었다. 어떤 수단도 필요 없이 펜과 노트, 혹은 패드 하나만 있으면 창작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널뛰었다. INFP는 고독을 즐기며 채워가는 내면이 존재한다고 했던가!  


대체로 맞지만 그것으로 전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INFP이지만 댄스학원을 가고, 전교회장선거에 나가 아침마다 피켓을 들고 소리를 드높이다 결국은 부회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만족하는 것을 목도한다. 

아이가 가진 여러 면모가 궁금해진 어느 날, 아이에게 물었다. 


"구름아, 너는 혼자 소설을 쓰는 시간이 꼭 필요하잖아."

"응. 없으면 안 되는 시간이지. 중학교 가면 시간이 부족할까? 어떡하지"

"아니야. 너는 평일에 영어학원만 가니까 자유시간이 충분할 거야."


댄스학원에서 춤을 추는 것이나 전교회장 같은 직책은 나서서 해야 하는 일인데 부담스럽진 않은지 묻자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아니. 즐겁고 뿌듯하고 짜릿해!" 


하루에도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벗느라 바쁜 사춘기 아이는 MBTI 부자다. 여러 모습을 발산하며 싹을 틔우고 있다. 그중 더 잘 키운 모습이 있겠지. 계속 물을 주고 햇빛을 비추니 윤슬처럼 흘러가며 반짝인다. 왜 이랬다 저랬다 하냐 타박하지 말고 예쁘다 해줘야지. 나는 너를 잘 키워야 하니까. 



이전 08화 겨울방학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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