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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담 Dec 08. 2024

중학생, 첫 중간고사를 치르는 마음.

렛잇비!

중학교 첫 시험, 그 지난했던 과정을 복기해 본다. 


1학기는 자유학기제로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2학기부터 본격적으로 중간고사라는 것을 접하게 된 중학교 1학년은 뭔가 들떠 보이고 분주했다. 익히 들었던 터라 마음의 준비는 이미 끝났고 실전만 남았지만 그 마음이 그 마음이 아니었다. 그렇지. 주인이 되어 보면 또 마음이 다르니까. 


아이의 감정과 행동은 수시로 널뛰었다. 아! 아이의 시험기간에 대해 쓰기 전에 성향을 먼저 언급하자면! 

학교에선 지극한 모범생이고 칭찬받는 아이이지만, 집에 오면 보통의 중학생처럼 짜증도 부리고 물건도 왕왕 잃어버리며 책상과 화장대는 엉망인 칠칠맞은 구석이 있다. 섬세하고 생각이 깊으며 사람과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 좋아서 글쓰기를 잘하는 반면에 예민함으로 인해 사소한 것을 쉬이- 넘어가지 못하고 곱씹는 경향이 있다. 그냥 꿀떡 넘겨도 되는 것을 오래 머금고 있으면 본질은 사라지고 깊어진 생각의 미로에서 헤매게 된다. 꿀떡 넘기고 시원한 물 한잔이면  환기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뭐든 완전히 소화가 되어야 하는 쉽지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속에서 찾아낸 재능과 앞으로 발아될 자아의 유의미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시험 두 달 전! 


아이는 들떠 있었다. 마치 여행 가기 전 모습 같았달까!  처음 치르는 중학교시험이 걱정되기는커녕 충만한 자신감으로 모두 백점을 맞을 수 있다고 자부했다. 아직 시험범위도 안 나왔다 요 녀석아. 

사실 학원을 다니지 않았고, 창작영재시험을 제외하곤 큰 시험을 치른 경험이 전무한 아이에게는 시험범위라는 개념도 모호하게 느껴졌으리라. 컴퓨터 사인펜으로 마킹하는 것도 처음일 것이고 시간을 제한해 긴장감을 극도로 만드는 실전의 밀도가 주는 촘촘한 압박감도 생경하겠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중간고사 세계에 발을 딛으려는 아이의 움직임이 경쾌하다. 백점을 맞을 수 있을 거라는 (스스로 통제가 가능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시험 한 달 전! 


포스트잇과 노트, 색색의 펜들을 준비하고 카톡과 인스타에 디데이를 해놓았다. 비장하게 전쟁을 준비하는 장군의 마음처럼 기개가 느껴진다. 시작이 반이라고 반은 했다. 나머지 반을 기대하는 부모는 하수임을 안다. 그저 웃으며  렛잇비 할 수 있는 부모는 고수다. 


호기롭게 시험공부에 돌입한 아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단단했다. 홀로 새벽에 일어나 아침공부를 하고, 학교에 다녀와서 인강을 듣고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이어갔다. 주말엔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다. 처음엔 첫 시험이니 공부방법이나 범위를 한번 봐줄까 생각도 했었는데 마음을 고쳐먹었다. 혼자 부딪쳐봐야 책임감이 생기고 감이 늘어갈 것이라고. 메타인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결핍을 얻었을 때 피어나는 성공의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첫 시험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정에서 비롯된 결의와 책임감, 넘치는 것은 줄이고 모자람은 앞으로 채워가면 된다. 


그나저나 이론은 그렇고 실전은 아이의 조급함 속에 짜증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처음 계획했던 것처럼 되지 않아 당황하며 허둥대는 모습이 보였다. 한 과목에 몰입하지 못하고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과목을 바꾼다면 조급한 것이다. 가방에 돌덩이가 들었는지, 김장김치가 들었는지 들어 올리기도 힘들 정도로 온갖 책들로 가득 차 있다면 오늘 해야 할 공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처음 치르는 중간고사인데. 



시험 2주 전!  


슬슬 갈피가 잡히기 시작한 모양이다. 몰입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동시에 모르는 것이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모르는 것이 없을 때가 모르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되면 넘어가지 못하는 아이는 인강을 듣고 또 듣고, 막히면 나에게 왔다. 뚱한 표정으로 설명을 들으며 짝다리를 하고 대답도 잘하지 않지만 지금 태도를 지적하면 한껏 예민해진 아이는 감정을 풍선처럼 부풀려 터트릴지도 모른다. 힘들고 답답한 마음에 잔뜩 골이 난 마음을 이해해 주쟈. (이해가 안되면 가만히라도 있자.)


시험 1주 전!  


자신 있는 과목과 자신 없는 자신 없는 과목이 두 갈래 길로  나누어졌다. 어떤 길은 어깨를 피고 당당히 걸어가고 또 다른 길은 경계하며 종종걸음으로 긴장하는 폼이다.  두 달 전 호기롭게 정했던 목표 점수는 한껏 하향했다. 


-범위가 너무 많고 이번 시험문제가 어렵데. 

-누가 그래? 

-애들이.  다른 반에서 선생님이 그랬데. 


국룰이다. 학생들의 자기 방어기제.  나도 해보았으니 천만번 이해를 한다. 듣고 싶은 답을 줘야 아이의 마음이 한결 편할 것이다. 


-그러면 평균점수가 다 낮아지겠네. 난이도가 높으면 백점 맞기는 어렵겠다. 

-그렇지 그렇지!  아마 일등도 백점 못 맞을걸. 90점도 엄청 잘한 거야  엄마. 

-당연하지. 시험이 어려우면 다 풀어서 제출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응. 난 90점은 다 넘길 거야.  


아이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거였다. 나는 최선을 다할 테지만 엄마는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할 것이고 혹여나 실수를 해서 몇 개를 틀리더라도 잘했다고 해달라. 

이것이  아이의  속마음이었을 것이다. 


드디어 중간고사를 치렀다. 반신반의했던 수학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축 처진 어깨로 돌아와 주관식에 시간이 모자라서 답안지에 옮겨 적지 못했다고 말했다. 맞출 수 있었는데 틀려서 억울하다고 한다. (그것도 다 실력이라고 말할 뻔했지만.) 괜찮다고 충분히 잘했다고 말해 주었다. 지나간 것은 어쩔 수 없는 것들이니 흘려보내면 된다고. 다음에 더 잘하면 되고 또 그다음도 있다고. 수학을 푸는데 너무 떨려서 손이 차가워졌다는 말이 어찌나 귀엽고 짠하던지. 치열하게 그 시간을 견뎌내고 최선을 다한 모습에 아낌없이 칭찬을 해주었다. 모든 과목 최선을 다해 해내었고 수학은 아쉬운 점수를 받았지만 노프라브럼!  어디 첫술에 배부르랴. 


그리고 기말고사 시험을 치렀다. 한번 쳐보았으니 긴장도는 낮아지고 더욱 효율적으로 임할 거라는 기대는 시기상조다. 과목이 늘어나고 범위도 더욱 넓은  기말고사는 다시금 아이를 긴장시켰다. 한번 했던 실수는 하지 않으려는 듯 더욱 세세히 살핀다. 하지만 수학은 열심히 한다고 즉각 잘하게 되는 과목이 아니다. 끈기가 팔할인 공부이다. 끈기는 의지와 세트라서 중꺽마의 마음이 필요하고 잔소리는 의지를 꺾게 한다. 책상 위에 수학풀이 해놓은 걸 언뜻 보니 답답함이 밀려온다. (답을 찾아가야 하는 데 끼어 맞추고 있다. 그러니 주관식에 시간이 모자란 게 아니라 확신이 없어서 못 적어낸 것 일듯 하다.)


아아 렛잇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마음의 평화이다. 맛있는 집밥과 따뜻한 시선, 그리고 온기 가득한 집. 

시험기간에는 책상정리도 이따금 해주고 아무렇게나 던져둔 옷들도 눈감아준다. 엉망인 화장대와 삐죽 대는 표정들도 가지런히 매만져주자. 안온한 기운으로 너의 긴장이 데워지길 바라며, 꿀벌처럼 성실히 오늘의 안온을 나른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조금만 가라앉았다가 힘을 빼고 다시 떠오르기를 반복하다 보면, 자신만의 리듬을 찾게 된다. 리듬을 타면 지치지 않는다. 마치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실패하고 회복하며 어떤 실망감도 쓸어내리고 기꺼이 안아줄 수 있다. 그것은 비단 아이에게만 말해주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내 아이가 특출 난 재능이 있고 반에서 1등을 하길 원하지 않는다. 다만 지치지 않고 매일 성실하기를 바란다. 취미에 성실하고, 좋아하는 노래와 즐겨 읽는 책이 있고, 잘하는 것을 꾸준히 키워나가며 자신을 빚어가면 좋겠다.

그 과정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결과의 무게에 타격받지 않고 무엇이든 가벼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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