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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담 Jul 16. 2024

불안이가 너를 잠식할 때.

풀이과정이 뭔지! 

[메인이미지는 아이의 취미생활인 만화의 한컷.]




느껴진다. 너의 인사이드가. 

들린다. 구시렁대는 소리가. 

짜증의 기운이 몰려온다. 


바야흐로 전쟁의 서막이다. 


수학과의 전쟁. 우리 집에 깔리는 전운에 눈을 질끈 감는다. 컴 다운! 

잘하다가 일주일에 두어 번? 수학에 결투를 신청하며 덤빌 때가 있다. 

꾸역꾸역 넘기다가 탈이 난 것이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제 딴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안 풀리거나 풀이과정이 복잡한 문제를 만나면 아이의 낯빛이 변한다. 

기어이 짜증을 내는 아이를  복기해 보자면 결코 짜증이 먼저는 아니었다. 


열심히 해내보자는 굳은 의지로 풀기 시작하였으나 베베 꼬아놓은 문제와 길고 긴 풀이과정을 쓰다 보니 

감정이 들썩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을 다잡고 이성을 관철시키지만 오랜 시간을 공들인 문제가 틀리게 되면 적잖이 허탈해했다. 믿었던 문제의 배신에 당황하고, 허탈해하다가, 이내 다른 문제를 풀며 배신의 불안이 찾아왔다.


 불안을 짜증을 몰고 짜증은 모든 사고의 작동을 멈춰버리기에 문제가 풀리기엔 만무하다. 

어쩌면 인생도 그런것인지언데, 지금 아이를 힘들게 하는 수학이 어른이 되어서 만나는 인생과도 닮았구나. 그렇다면 경험해 봐야지. 부딪혀보고 깨뜨려보고 또다시 빚어보고 여물어져야 한다. 마르는 과정이다. 

그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잘해보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던 시간의 필요를 받아들여야 한다. 


도대체 수학이 뭔지. 서술형 문제풀이는 불안이와 함께 등장한다. 

수학시간이 되면  선생님이 그날의 날짜에 따라 칠판 앞에 나와 문제풀이와 설명을 시키는 데, 그때마다 칭찬을 받는다고 했다.  설명을 아주 쉽고 자세히 정리해서 잘한다는 게 칭찬의 이유였지만 사실 아이는 제 번호날짜 하루전날이면 수학책의 범위문제를 모두 풀고 혼자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일타강사 놀이 겸 연습을 했다. 그러니까 수십 번의 연습 끝에 도달한 결과이자 칭찬이었다. 


낙천성과 베짱이 두둑하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고 칭찬이든 질책이든 가뿐히 넘길 텐데.  

하긴 고작 중1에게 그런 마음을 바라는 건 나의 욕심이다. 나 또한 아이를 키우며 수없이  흔들리고 가라앉는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이가 자라면서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던 허상을 무너뜨리고 부모먼저  다시 지금 이 자리에 홀로 서야 한다. 뿌옇게 흐려지던 순간도 이내 가라앉고 맑아지는 순간이 분명히 오는 것을 알기에 조바심 내지 않고 싶다. 


도무지 생각을 거듭해도 안 풀리는 문제를 조우하면 아이는 나에게 온다. 세상 모든 고난을 짊어진 흐린 표정으로 터덕터덕 걸어서 문제지를 탁 하고 놓는다. 

나는 문제를 살펴보고 약간의 힌트와 함께 아이를 돌려보낸다. 다시 천천히 생각해 보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처진 어깨를 토닥인다. 아이는 힘을 내어 방으로 들어...... 가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흔히 일어나지 않는다. 


"풀이과정을 써야 하고 이 문제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있어야 진짜 네 것이  되는 거야."


누가 모르냐고! 알지만 하기가 싫은 것을. 


하기 싫지만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그 모든 감정을 끌어안고 지지고 볶으면서도 지지 않는 아이의 내면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 

그렇다면 나는 그저 지켜보고 평온을 주어야겠다고. 


하나하나 지적하고 말을 보태는 대신에 숨쉴틈과 온기를 만들어 주기로 한다.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마음의 평화, 예컨대 조마조마함이 없고 아이가 집에 있을 때 평온이 스미도록, 그리하여 아이의 인사이드가 소란스럽지 않게 대화할 수 있도록. 


모든 감정은 소중하니 너의 불안이도 환영해 줘. 함께  보았던 인사이드아웃을 떠올리며, 지금의 기분을 스스로 헤아리며 정돈해야 한다는 것만 잊지 말길 바란다. 


그리고... 그놈의 풀이과정은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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