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정신없는 애가 하나 있다.
뭔가 삘 받았다 싶을 때 확 정신없어진다. 그 땐 그냥 걸어도 될 것을 마구마구 뛰어다니는데 자기 스피드를 못이겨 슬라이딩하듯 가구에 이리저리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방금 전까지 거실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부엌으로 와서 뒤 돌아본 다음 순간, 발 밑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는 강아지와 눈이 마주치는 일이 하루에도 여러 번.
쥐처럼 빠르다.
간밤엔 파트너가 강아지 잠 재우는 당번이었다. 따로 애기 재우듯 재우는 것은 아니지만 케이지에서 잠드는 걸 보고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밤마다 번갈아 하고 있다. 그렇게 처음이 조용하길래 오늘 밤은 조용히 지나가려나 싶었다.
그러나 30분이 지나고부터 낑낑 거리는 소리 시작. 그리고 탈출을 시도하는 점프 소리가 들려왔다. 쿵 하는 착지 소리도 함께. 탈출한 건 알겠는데 몇 분 후에도 낑낑거림이 멈추지 않아 이상한 느낌이 들어 거실에 나갔다. 알고보니 점프해서 케이지를 탈출하기는 했는데 소파와 케이지 사이 좁은 공간에 착지한 바람에 오도가도 못하는 꼴이 되어 있던 것. 아이고 너를 어떡하면 좋니.. 하며 꺼내주고서 소원하는대로 케이지 문도 개방해 두었다. 알아서 왔다갔다 해라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저 밤새 물어뜯지 말아야 할 것을 물어 뜯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며 잠이 들었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는 길에 나가보니 비바는 침대를 벗어나 현관 근처에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비바의 아침을 챙겨 주고서 그 애가 밥을 먹는 사이 나는 재빨리 잠옷을 갈아 입었다. 비바는 실외배변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강아지가 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재빨리 목줄을 둘러주어야 한다. 아기 강아지의 장운동이란 놀라울정도로 신속 활발해서 밥 먹고 1, 2초를 잘못 허비하면 똥 나오는 거 정말 한 순간이다. 이제는 얌전하게 목을 대고 기다리는 너.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싫어하더니 이제 목줄이 밖에 나가는 걸 의미한다는 걸 인지하게 된 것 같다. 작은 성장이라도 두 눈으로 체감할 때마다 경이롭다.
밖에 나가 걷는 동안도 성장이 느껴졌다. 목줄에 당기는 느낌이 들 때마다 신경질내며 싫어하던 예전 모습을 강아지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응아도 하고 쉬도 두 번 한 후 집 쪽으로 돌아왔다. 자기가 흥분했을 때는 집 앞에서 갑자기 스피드를 내서 계단을 마구 올라가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계단 앞에 딱 엉덩이를 대고 앉는다. 그리고 나를 올려다본다.
“뭐해? 들어 올려줘야지” 하는 눈빛으로.
오늘 아침은 후자쪽이었다. 브리더가 견종 특성상 엉덩이가 안좋다면서 아직 어릴 때 계단 오르기를 너무 많이 시키지 말라고 여러차례 강조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우리는 되도록 안아서 올려주거나 내려주고 있다.
그렇게 집에 들어오자마자 발을 닦고 쉬하고 응아한 부분도 물로 닦아주는데 이 또한 익숙해진 얼굴. 일본에 있는 한 반려견 트레이너의 팟캐스트에서, "강아지가 하기 싫어하는 일일수록 예외를 두지 말고 매번 해야 한다. 하기 싫어서 성질을 낸다고 건너뛸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해주면 저항감을 없앨 수 있다" 라는 말을 들었다. 그 뒤로는 발이 많이 더럽지 않아도 물수건으로 대충 닦지 않고, 외출했다 돌아와서는 무조건 욕조에 들르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랬더니 이제는 다음 차례가 뭔지 알고 있다는 듯, 화장실에 데리고 가줄 때까지 현관에서 잠자코 기다린다. 한 때는 싫다며 으르렁거리기도 했었는데, 이 또한 성장이라 신기하고 기특했다.
그러나 기특함에 흐뭇한 미소를 짓는 여유는 여기까지만. 아직 힘이 남은 어린 강아지는 발 씻고 나오기가 무섭게 이거 물고 저거 물고 뛰어 다닌다. 그런 강아지를 좇아다니면서 막아서다가 장난감으로 한 바탕 놀아주었다. 한 번 힘을 빼고 나면 잠잠해지는 시간이 오는데 지금 그 틈을 타 지난밤부터 아침의 일을 이렇게 적고 있다.
요즘 파트너와 나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지금 너무 피곤해…”
“이제 좀 쉬고 싶어…”
어제는 부엌에 있었는데 파트너가 거실에서 비바를 쓰다듬어 주며 “나 너무 힘들다…”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강아지는 미치도록 사랑스럽지만 확실히 갓난아기를 대하는 것처럼 에너지 소비가 어마어마하다.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어제는 파트너와 둘이서 행복하고도 지친 얼굴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각오 되어 있지? 우리 앞으로 15년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 휴일도 없어 이건...!"
각오가 현실이 되었다. 외출도 여행도 소비도 집 안 인테리어도 자고 일어나는 생활패턴도 모두, 이 아이의 존재감을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