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러의 서울살이 생존일지
서울 곳곳에는 덫이 도사리고 있다. 지하철 1호선만 봐도 그렇다. 지방러인 나는 급행열차의 존재를 알리 없었고, 왜 지하철이 멈추지 않고 가버리는지도 알 수 없었다. 지하철 노선도에는 있지만 탈 수도, 내릴 수도 없는 정거장의 비밀을 알기까지 일단 당해야 했다. 방탈출처럼 여러 단서들을 조합하여 일반열차와 급행열차를 깨우치고 나니, 이번에는 인천행과 수원행이라는 또 다른 덫이 기다리고 있었다. 퇴근길에 사람들을 비집고 겨우 탄 열차가 수원행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너무 힘들면 빙그레 웃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첫 직장을 다닐 때, 월급의 1/3을 원룸 집주인에게 바쳤다. 집주인을 위해 일하러 간다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원룸보다 싼 곳은 고시원뿐이었다. 직장 스트레스에 고시원 스트레스(공동 화장실, 공동 세탁기, 공동 주방 등)까지 더해진다면 낙향할 것임을 직감했고, 월급의 1/3을 상납하는 과감한 계약을 체결했다.
요즘은 서울에서 태어난 것만으로 스펙이 된다. 기반을 가진 자가 없는 자보다 생존에 유리한 것은 당연한 얘기다. 나처럼 맨몸으로 상경하면 월세, 공과금, 생필품 등 기본 100만원은 숨만 쉬어도 나간다. 월급을 받아도 손에 쥐는 돈은 몇 푼 되지 않으니 열심히 모아도 티끌모아 티끌이다. 물가 상승율을 못따라가는 나의 월급은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작고 귀여우며,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손끝에 닿을 기미도 안 보인다. 그러니 주거 불안은 계속 현재진행형이다. 높은 주거비용과 체류비를 감당하면서 서울에서 버티고자 했던 나의 선택은 과연 옳았을까?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무시무시한 서울에서 발이 닿지 않는 깊은 물속을 허우적거리는 불안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휘황찬란한 대도시가 주는 도파민에 취하기도 하며, 출구를 알 수 없는 복잡한 미로속을 헤매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서울은 끊임없이 자극적이다.
지금부터 지난 10년 간의 서울살이를 돌아보고자 한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이라는 난리를 겪은 유성룡 선생이 후대를 위해 징비록을 남겼다면, 필자는 수많은 서울의 덫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와 향후 10년을 왜 서울에서 더 살겠다고 생각하는지를 기록하여 많은 이들과 공유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