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긍정하는법
그런데 '남의 시선과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한 전형적인 한국 사람은 바로 '나'이기도 하다. 성우로 일할 때 외엔 국제 행사 진행자, 통역, 프리젠테이션 그리고 유튜버까지 다른 사람들 눈에 나의 외모는 어떻게 비칠까, 아니 '살은 언제 빼지' 가 제일 맞는 말일 것 같다. 약 9년전 프리랜서가 된 직후, 많은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호감형'외모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이미지는 아마도 지금까지 '아나운서'하면 떠올리게 되는 단정한 투피스가 잘 어울리는 단아한 이미지, 그리고 짧은 단발이든 업스타일 헤어이든 지적인 분위기를 배가 시킬 '날카로운 턱선'일 것이다. 즉, '다이어트'.
위 사진은, 내가 한/영MC로 진행했던 200여건의 행사들 중 가장 '하드코어'로 다이어트를 한 후 찍힌 사진이다(그래서 블로그 대문 사진으로 걸어놨음). 행사 자체가 '쥬얼리 쇼'였고, 초대 된 게스트가 지금도 몸매관리로 유명한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김사랑'씨였으니 그 옆에서 '오징어'가 되지 않겠다며 행사분위기에 맞는 보석이 달린 44사이즈의 무대 의상을 사놓고 그 옷에 나를 맞추기 위해 일주일은 하루에 1.5끼, 저녁엔 동네 조깅등을 병행했다. 그래서 평소보다 2.5킬로 가량을 더 빼고 무대에 서긴 했는데 애초에 '김사랑'을 의식한 것 자체가 무의미한 (김사랑씨 등장과 함께 행사장엔 시간이 멈춰 버렸다. 한국인 관객들이 MC인 내가 마이크로 하는 말을 못들을 정도로 그분에게만 초집중ㅎㅎㅎ)짓이었다. 그래도 행사를 빛내기 위해 한 다이어트라며 스스로 만족했는데 그 이후 이 사진이 나에게 '혹독한' 비교 대상이 될 줄이야...
그 이후, '오랫동안 쉬어서 그렇지 끊어본 적이 없는' 다이어트는 두 아이를 출산한 이후 더 납덩이처럼 무거운 존재가 되었다. 첫째 둘째 모두 제왕 절개를 하면서 유난히 회복이 더디고, 복부 주변엔 전혀 힘을 주지 못하더니 2년이 지나도 유독 배 주변에는 살도 너무나 쉽게 찌고 빠지지도 않았다. 지금은 필라테스를 1년 넘게 하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가장 큰 스트레스이자 극복하기 힘든 (가능할까? 뱃살극복)부분이다.
작년까지도, 여름이 되면 쥬얼리쇼를 진행하던 저 때의 사진을 핸드폰 바탕화면에 걸어놓고 유튜브의 홈트 영상, 우엉 다이어트, 현미밥 다이어트, 레몬 디톡스 등등 고액의 '제품'만 안 질렀다 뿐이지 한때 유행한다는 다이어트 종류는 나름 다 시도해본것 같다. 작년 여름에 특히, 둘째까지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고삐 풀린(점심에 유아식 대신 혼밥 외식 천국) 식단덕에 나도 모르는 사이 쪄버린 6킬로 가량을 급격하게 빼면서 '다이어트'란 단어에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시기였던 것 같다. 주변에선 아이 둘 키우면서 식단 조절 다이어트는 불가능하다했지만, 나로써는 거울을 볼때마다 무너져내리는 자존감이 더 괴로웠던터라 일단 '빼고보자'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8년전 만큼은 아니지만 둘째 낳고 차곡차곡 쌓인 군살까지 6킬로 가량을 뺐는데, 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그 뒤 발아현미밥,닭가슴살을 끊은 뒤로 2~3킬로가 찰떡같이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요즘 전세계에 불고 있는 보디 파지티브 (BODY POSITIVE) 열풍이 새로운 개념이 아니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나이와 함께 자연스레 깨달아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노력해서 억지로 되지 않은 것들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것.
결혼 초기, 시어머니의 첫 생신이 다가오자 백화점에 가서 옷을 고르고 있었다. 어머님이 마르신 체형이라 55사이즈를 찾고 있는데, 4~50대 여성 판매원이 55사이즈를 뒤지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어머님이 60대시라면서요, 60대는 55사이즈 안입어요."라고 덧붙이는게 아닌가. 그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나보다 더 마르셨는데 55사이즈를 안입으신다고?' 그런데, 그 이후 다른 옷을 사다 드려도 몸의 체형과 상관없이 '몸에 붙는'옷은 불편해서 66사이즈를 입으신다면서 '어휴, 얘, 우리 나이때 누가 55입니. 입으면 편해야하는데 붙어서 싫다' 하신 말씀이 이제서야 너무나 이해가 된다.
외형적으로도 짧고 붙는 옷은 60대와 잘 어울리지 않기도 하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몸이 힘들어 하는 일을 꺼리게 되는 것. 숫자로 찍히는 나이만큼 몸도 같이 늙어가고, 변화를 받아들임에 있어 '억지'를 부리지 않게 되는것. 백화점에 진열된 5~60대 여성복의 푸근하고 여유있는 옷선을 보다, 2~30대 브랜드를 보면 날이 서있다. 부러질 것 같은 팔과 다리에 비현실적으로 요동치는 곡선으로 이뤄진 마네킹, 거기에 입혀진 온갖 현란한 색의 옷들.
자꾸 비교해서 보다보니,
란 깨달음에 이르렀다. 그래서, 육아랑 일도 힘든데 다이어트까지 하려니 '못살겠다'를 선언하며 행사 D-day가 잡혔는데도 전날까지 야무지게 저녁밥에 후식까지 다 챙겨먹고는 한복에 어울리는 '후덕' 턱선 컨셉이라 합리화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200개가 넘는 행사를 해봤지만 한복을 입고 진행한 것은 처음이였는데 얼굴 빼고 다 가려주는 '지극히 후한 인심'의 한복 실루엣이 어찌나 고맙던지 앞으로 '한복입고 할 행사가 많아졌음 좋겠다'란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간절한 바람을 가지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 직업적인 특성상, 무엇보다 살이 찌면 지적인 이미지와 멀어지는 = 통역사, 국제행사 진행자의 이미지와 동떨어진=(결국)일을 못하게 되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에 한복입고 찍은 행사 때 보다 더 후덕해진 자신을 '용납'할 용기가 없다. 그래서 아마도 유행하는 다이어트 방법, 식단, '지금 당장 끊어야할 음식' 이런 류의 기사를 지나치지 못하면서 눈으로만 다이어트 하는 (홈트 영상을 보고만 있다. 보고만.) 답답 일상을 반복하다가 정말 입고 싶은 예쁜 옷이 생기거나, 몸에 붙는 의상을 입어야하는 행사가 잡히면 다이어트 전면 선언을 하게 될 것이다.
다만, 극단적인 다이어트와 스트레스 속에서 얻은 깨달음이 또 있다. 옷에 몸을 억지로 맞추려 하지 않는 것 말고도 채소+발아현미밥+닭가슴살만 먹는 동안 아이 낳고 생긴 피부 '건선'이 사라진 것이다. 양쪽 무릎과 복숭아뼈, 그리고 팔꿈치에 각질이 계속 벗겨지면서 겨울엔 피가 나는데 온갖 스테로이드 피부과 약을 먹고 발라도 낫지 않던 것이 발아현미밥을 먹으면서 거짓말같이 사라진 것이다. 현미에 어떤 성분이 내몸의 독소를 해소해주는지 모르겠지만, 작년 여름 이후 통증 없는 팔꿈치를 경험하고는 지금도 1루에 1끼는 현미밥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3일 이상 밀가루 음식을 먹었다간 몸에서 어찌나 정직하게 반응하는지 다시 되돌리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 알기에, 내 몸의 면역반응과 음식사이의 관계에서 나는 나를 더 잘 알아가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옷에 몸을 맞추지 않으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뭐든 극단적이고 과한것은 나를 상하게 한다. 일에 대한 열정이든,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이든 그 중간을 찾아 발전하고 유지하는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긴 하다만, 30대 후반의 Body Positive는 보기에도 좋고, 정신 건강에도 이로운 접점 그 어드메를 찾아 헤매는 다이어터를 장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