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와 그 분(지름신)

소비와 (프리랜서)자존감 상관관계

by Claire Kim

1. 오지 마시오(제발), 지름신아.


새벽 1시, ‘띠링' 신용카드 결제 알람 메시지가 뜬다.


미뤄뒀던 번역을 끝냈다거나, 블로그 업데이트를 했다거나 하는 날, 일은 끝냈지만 뭔가 보상 받고 싶은 심리가 꿈틀대는 날엔 휴대폰을 들고 밤 12시까지 가십거리를 읽다 결국 늘 마지막은 쇼핑몰로…

오밤중 뜬금없는 온라인 쇼핑을, 사고 싶었던 브랜드의 70%할인 ‘득템'이라며 합리화 해보지만 그 달 카드 사용 명세서를 보면, 유독 새벽 1시, 1시 반 즈음 결제한 것들이 많아서 깜짝 놀랄때가 있었다.

그리고 유독 온라인 ‘밤도깨비'쇼핑을 많이 한 달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심리적으로 침체기였던 것 같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게 물건 사는 것이다.


프리랜서가 된 이후 ‘소비'는 직장인으로 살던 때와 전혀 다른 질감을 가진 의미가 되었다. 프리랜서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월급 명세서, 연봉의 숫자로 딱딱 떨어지지 않는 나의 가치를 ‘나에게' 증명해보이고자 소비를 한다고 해야할까... 단 일주일 뒤도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어떻게 일을 ‘따내야'할지 알 수 없는, 불안하기 그지 없는 시절이라 자꾸만 허공에 흩어지는 듯한 나의 가치를 빳빳한 쇼핑백에 담아두려고 했었던 것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프리랜서 3년차까지 한때 아시아에서 가장 큰 쇼핑몰로 불리던 삼성동 코엑스몰 근처에 살았던 지라 마음이 헛헛할때마다 코엑스몰을 얼마나 돌았는지 모른다. 얇은 지갑사정으로 바라던 만큼 많은 ‘빳빳한 쇼핑백'을 거느리진 못했지만 충동적으로 사게 된 물건이라도 잠시나마 그걸 ‘새' 종이백에 넣고 돌아다니는 동안은 내 안의 무언가가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는 듯한 만족감이 들곤했다.


거의 매일, 머릿속이 복잡해질때마다 코엑스 몰과 연결된 현대백화점까지 한 바퀴씩 돌면서 ‘쇼핑'을 하는 사람들을 그 때만큼 유심히 관찰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10년 전 낮시간엔 당연히 회사에서 보내는게 몸에 익은 시절이라 오후 2시, 3시 대낮 시간, 백화점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있다는게 꽤나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주로 4~50대 주부로 보이는 여성들이 많긴 했지만, ‘경제적'활동을 하지 않아도 그 비싼 백화점 ‘신상'들을 오로지 ‘소비'하기 위해 모여든 무리가 그렇게 많을 수 있다는게 그 당시엔 신세계였던 셈이다.

물건을 사지않고 ‘윈도우 쇼핑’ 하는 사람들만 쳐다보고 있어도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그리고 매일 매일 바뀌는 풍경처럼 ‘소비의 풍경'을 머릿속에 저장해놓곤 했다.


예측가능한 수입이 없어진 이후, 나에게는 충동 구매이든, 눈으로만 즐기는 신상이든, ‘소비'를 하는 심리 저변에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효용적인 측면보다 소비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는 측면이 컸다.

물건을 소비한다는 것 자체가, 그만한 금액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력을 뜻하는 것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 프리랜서의 수입이 불안해질 때마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가치로 보상받으려는 심리였던 셈이다.

그래서인지, 과시적인 명품 소비가 아니더라도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게 된 날은 마치 세트처럼 죄책감과 후회가 딸려오는데 문제는 그 다음 ‘충동구매'까지 ‘죄책감+후회'가 버티지 못하고 방전된다는데 있다.


2. 지랄비용의 순기능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소비'는 스트레스 해소법이고, 일탈이고, 자기애의 표현이고, 존재감 확립의 방식일 수도 있다. SNS의 발달이 ‘남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게 부추겨 소비하는' (라캉) 행태를 더 심화시켰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버릴 수 있는 현대인이 과연 몇 명이나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를 비롯해서 말이다.


한때 SNS에서 ‘지랄비용'이라는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을 때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지른 ‘ㅈㄹ'비용을 인증하는 사진 공유), 나 또한 그 ‘비용'을 지불 하며 사는 ‘족'이라는 걸 깨달은 날 왠지 모를 후련함까지 느꼈다. ‘지랄비용'은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법으로 오롯이 자신을 위해 말도 안되게 비싼 선물을 하는 것이다. 마음 속 고이 간직했다 지르는 명품 백이 아니라 어느날 너무 우울하거나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견딜 수 없을 때 하루만 입고 또는 아예 입어볼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비싼 속옷을 산다거나 평소에는 비싸서 전혀 거들떠 보지 않던 마사지를 받는다던가 하는 등 휘발돼서 사라질 일탈감이라 할지라도 우울하기 짝이 없는 일상에 신용카드 일갈을 한번 날리고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신용카드 결제일이 다가오면 일탈의 세 배쯤 절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생활에 문제가 생길 만큼 자주가 아니라면, 일명 ‘지랄비용'이라 불리는 일탈적인 소비가 가져다주는 순기능을 주목하고 싶다. 현대인들에게는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효용을 따지는 실용적인 목적에서만 이뤄지는게 아니라, 이미 정서적인 상태와 뗄수없는 관계가 돼버렸다. ‘소비'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명품 소비, 창조적 소비, 윤리적 소비, 개성표현 소비, 보상적 소비와 자기 선물주기 등등 끝도 없이 연관 검색어가 쏟아져나온다. 이런 검색어를 잘 들여다보면 모두 ‘정신적'인 가치와 연관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물건을 필요에 의해서 소비할 때가 아닌 나를 ‘헤아려'볼 여유와 자세가 필요한 듯 하다. 그것이 쉽게 얻어지는 여유가 아니라는게 함정이긴 하지만...

프리랜서가 된지 10년이 된 지금에서야 따박 따박 들어오는 월급의 부재를 맨몸으로 느끼던 시절, 큰 돈을 쓰는게 아닌 작은 물건들을 여러개 사면서 생긴 죄책감, 후회에 대해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10년전엔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의 ‘가치'를 소소하게 나마 소비를 통해 증명해야만 견딜 수 있던 시절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마음이 헛헛해질 때 어떤 ‘보상'심리가 발동 할때, 지금도 ‘지름신' 그분이 올때가 있다.(사실은 엄청 자주 오시는 건 안비밀) 하지만, 10년전과 지금 달라진게 있다면 집안 구석구석에 쌓인 물건들을 보면서 ‘그때 왜 이걸 샀을까'를 헤아려보는 것이다.


소비한 물건과 내 자신의 관계를 더듬어보는 것은 새벽 1시엔 불가능하다. 해가 번쩍 떠있고,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일하는' 생산적인 낮 시간에 나도 생산적인 고민을 해본다. 그리고 구매한 물건에 ‘다음엔 절대로 사지 말아야지'라고 도장을 꽝꽝 찍어놓는다기 보단 이 물건을 샀을 때 내 멘탈 상태에 대해 등급을 매겨본다. ‘너무나 우울했음', ‘그냥 충동 구매', ‘조금 우울함' 이런식으로, 생각을 했다가 비슷한 물건을 또 사려고 할 때 그때 기분을 떠올려본다.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이 될만한 방식은 아니겠지만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헛헛해서 소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오히려 그 ‘마음’을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할까…?


한 때 미니멀리즘, 자연주의, 비움의 미학등이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나도 최소한의 것으로만 살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있었다. 뇌 구조의 3%쯤은 ‘전원주택', ‘전원생활',’귀농' 이런 단어들을 박고 산지가 10년은 넘었으나, 3%는 그저 3%일뿐 도시에서 30년을 넘게 살았으니 시골에서 미니멀하게 자급자족하며 산다는 것은 10%의 현실적 고려대상도 되지 못했다.


자연에서 살면, 자연이 치유해주는 삶을 살 수 있겠지만 도시 생활의 편리함과 이기를 누릴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상은 미니멀한 자연을 지향하되, 현실은 때론 번잡스럽지만 때로는 신박한 편리함에 환호하는 ‘소비’를 누리는 삶을 선택했다. 앞으로도 늘 합리적이고 능동적인 소비를 한다고 장담할 수 는 없지만(결코)

물건을 소비하는 ‘나'를 잘 헤아리면서 소비에 압도당하지 않도록 잘 달래며 카드 명세서와 하는 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즐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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