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언어는? (영어 아님)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언어는?
이 질문에 한국 사람들은 아마 ‘영어'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2011년에 발간된 *비교 언어학 논문 실험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언어는 (의아스럽게도) 일본어였다. 2위는 스페인어, 3위는 프랑스어, 영어는 4위인 이태리어에 이어 ‘자그마치' 5번째로 빠른, 사실상 7개의 비교군에서 제일 느린 중국어(만다린), 그 다음 독일어에 이어 느린 언어에 속해있었다.
한국어는 안타깝게도 언어 사용 화자수가 적은 언어인지라 비교 대조군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일본어와 비슷한 언어 성질을 생각하면 일본어보다 더 빠르면 빠르지 느리진 않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유난히 ‘빠른', 알아 듣기 힘든 언어로 인식하는데는 합당한 이유들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교착어인 한국어는 우랄알타이제어에 들어가고 고립어인 영어는 인도유럽어군에 속하는데 언어적 형질을 비교하자면, 한국어와 영어는 언어 스펙트럼의 가장 끝과 끝에 속해 있는 것이다.
대조 언어학적인 관점에서 한국어와 영어는 친해질래야 친해질 수 없는 성질을 가진 언어이고 같은 시간을 들여 외국어를 학습한다면, 한자를 공유한 중국어와 일본어, (게다가 일본어는 어순도 같다), 또는 같은 어군에 속하는 터키어, 핀란드어가 영어보다 훨씬 ‘가성비' 좋은 외국어인 셈이다. 이는 한국에 살고 있는 터키인, 핀란드인 중에 한국의 어려운 숙어, 속담, 은어등을 짧은 시간에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신기한' 사례들이 많은 것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래서, 전 국민이 영어를 잘 해야 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다른 선택지가 주어진다면,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난 영어말고 다른 언어에 투자하라고 솔직히 권한다. 대한민국에서 영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라 배우는 것보단 ‘못하면 경쟁에서 도태되기 때문에' 강박적으로 무조건 잘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려서 ‘벼랑 끝에 선 기분’으로 학습하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당연히 영어를 배우는 스트레스도 더 많고 효율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으로 사는 동안 영어를 잘 해야 하는 이유는 또 차고 넘친다. 국내에서 공부하고 연습해서 ‘국내파' 영어MC, 통역사, 성우로 먹고 사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도 늘 그것이다. “어떻게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나요?” 나도 사실은 늘 유학을 가고 싶었고, 어학 연수를 가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이 되지 않아 더 독하게, 더 끈질기게 매달릴 수 밖에 없었지만, 사실 영어를 가장 빨리, 잘 할 수 있는 비결을 찾는다면 나 빼고 단 한명도 한국어를 쓰지 않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화자들이 득시글한 곳에 가서 영어에 매몰 돼서 6개월~1년이상을 살아 남는 것이다.
내 주변에는 영어로 밥 먹고 산다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나처럼 국내에서만 영어를 학습한 사람, 초등학교만 영미권에서 다닌 사람, 중, 고등학교 까지만 다닌 사람, 대학교, 대학원만 영미권에서 졸업한 사람, 교포 3.5세대, 교포 4세대, 그리고 심지어 영어 모어화자 외국인까지(10년이상 국내 거주자). 그런데 이 ‘영어를 잘 하는’ 그룹내에서도 내 기준에서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으나), 쓰기, 말하기, 듣기, 제일 어렵다는 작문까지 다 포함해서 제일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국내파' 영어(중독이라고 까지 할 수 있는) 악바리였다.
내가 감탄해 마지 않았던 이 ‘국내파' 악바리는 지금 종로 모 영어학원에서 실력있는 영어 선생님으로 인정받으며 자신의 학습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열심히 전파하고 계신다. 7살 때, 미국 디즈니랜드 일주일 다녀온 이후 영어에 ‘각인'이 된 이 특별한 ‘악바리'는 그 뒤로 스스로 영어를 찾아서 공부하고 익히고 연습했고, 실력이 답보상태에 이르렀다고 느꼈을 때는 대학교를 1년 반 휴학하고 집에서 틀어박혀 인위적으로 영어에 매몰된, ‘노출 극대화'의 상황을 만들어 돌파구를 만들었다. 샤워할 시간도 아까워 방수 스피커로 미드를 틀어놓고 외웠다는 전설적인 후문을 내게 들려주었다.
나에게도 비슷한 ‘각인'의 순간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동네 영어 공부방에서 처음 접하게 된 미국판 EBS 청소년 드라마였는데 그게 어찌나 재밌었는지 3권의 스크립트 +해설 책과 6개의 비디오가 다 너덜너덜해질때까지 보고 또 보고, 나중엔 머릿속에 그 비디오가 자동 재생될 정도로 줄줄줄 외워버렸다. 그 때까지 나는 알파벳만 겨우 뗄 정도였는데 공부방에서 만난 동갑 남자애가 자기보다 단어를 모른다고 무시한 순간, 승부욕이 기폭제가 되긴 했지만 처음으로 30대 미국 여성의 유려한 북미표준발음 (North American Standard Accent- 미국내에서도 경제, 정치, 교육 분야등에서 쓰는, ‘교육 받은’ 표준발음으로 권장함)으로 그 비디오 해설집을 들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어찌나 매끄럽고 유려하게 구현이 됐던지, 한국어의 조음방식으론 도저히 ‘조음'(articulation)할 수 없는 영어 발음들이 머릿속에서 너무나 경쾌하게 춤을 추었다. 그리고 이 음악같은 이국적인 언어를 꼭 나도 ‘똑같이' 구현해 보고 싶은 순간이 12살인 나에게 ‘각인'되었다.
(나중에 대조언어학을 공부하면서 알게 됐지만, 제 2언어, 외국어 발음이 굳어져서 돌이킬 수 없는 임계기가 언어학적으로는 12살까지였다. 즉, 모국어의 간섭으로 외국어 발음이 자연스럽게 ‘습득’이 안되고 인위적인 ‘학습'만 가능한 시기)
그 뒤로, 영어는 나에게 무조건 잘하고 싶은 너무나 매력적인 대상이었기 때문에 나에겐 딱히 동기부여랄게 없었다. 영어는 못하면 안된다기보다, 하면 할 수록 나에게 성취감과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었기 때문에 성인이 돼서 이직을 할 때도 계속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을 찾는게 우선 순위였다.
그런데, 나처럼 이렇게 영어가 ‘각인'이 돼서 소위 ‘영어홀릭'이 되기란 쉽지 않다. 나는 수학과 과학은 젬병이었고, 뇌에서 언어적 부분만 특별히 발달한 경우였기때문에 나는 그런 선택을 하기가 다른 이들보다 쉬웠을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외국어는 특히 앞에서 말했듯이 영어는 익숙해지는데 한도 끝도 없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른 외국어에 노출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영어는 소득도 쥐꼬리 만하다. 영어라는 언어의 발음 자체도 한국어와 정반대의 성질을 가진데다 한국어에는 없는 시제, 관계대명사 같은 문법적 요소, 그리고 단어는 왜그리 안외워지는지… 이 모든 악조건을 이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계속 영어를 쓰는 환경에 노출시키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금씩 ‘영어의 가랑비'에 젖는 경험을 하려면 아주 아주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아래 그림에 보면, Tipping Point가 나오는데, 커다란 양동이를 천장에 매달고 물을 한방울씩 떨어뜨렸을 때(영어노출), 그 한방울들이 모이고 모여서 차고 넘쳐서 양동이가 뒤집어 지는 순간(실력상승, 고급사용자)을 말한다.
어떤 언어이든 초급에서 중급에 이르는 건 (상대적으로)쉽다.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안에 실력이 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포기하는 이들이 적다. 그런데, 중급에서 고급으로 올라 갈 때가 문제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포자’가 되는 것도 바로 이 tipping point에서이다. 개인마다 얼마큼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실력이 올라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무한대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고 보면, 그 중에서도 영어는 객관적으로 한국인들이 ‘포기해도 괜찮은', ‘합당한' 이유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꼭 잘해야 한다면, 지치거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영어의 가랑비'에 노출 될 수 있게 영어를 잘해야 하는 목표를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잡아야한다. 토익시험이나 토플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동기부여란 필요없다. 몇 달 뒤, 당장 다음 달에 비싼 응시료를 내고 시험을 봐야하기 때문에 영어공부를 하는 것이다. 나같은 경우도 회사를 다닐 때 프로젝트 계약의 조항을 바꾸는 등의 골치아픈 영문 이메일은 무조건 퇴근 30분전에 쓰는 식으로 동기부여를 했다.
매년 새로운 해가 되면 다들 새해 목표로 ‘영어 공부하기'를 ‘운동하기, 살빼기' 다음에 적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왜 영어를 잘하고 싶은지, 얼마큼 잘하고 싶은지, 영어 공부 3개월 후 어떤 상황에서 영어를 쓰고 싶은지에 대한 얘기는 없다. ‘그저 잘해야 할 뿐'. 지속적으로 절박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외국어 학습은 그냥 지지부진한 ‘해야 할 일'의 하나일 뿐 결코 나아질 수 없다. 오히려 쓰지 않은 만큼 도태되기만 할 것이다.
요즘 4~50대 중년 여성들이 영어를 배우는 이유 1순위는 ‘해외 여행'가서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폼나게 먹고 싶은 것 주문해서 먹고, 가고 싶은곳에 가서 멋진 경험을 하기 위해'라고 한다. 이런 경우는 2달 뒤 출발할 비행기 티케팅을 완료한 순간, 가이드 해주기로 한 자녀가 여행을 같이 못가게 된 순간, 확실한 동기부여와 구체적인 목표가 주어진다.
회사를 다니면서 영어를 잘 하고 싶다면 지금 내가 영어를 주로 쓰는 환경에 있는지 확인해야한다. 즉 영어로 매일 이메일을 주고 받고 컨퍼런스 콜을 하고, 해외 출장을 자주 가는 상황이라면 동기부여는 해결이 되었지만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는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1달 뒤, 팀 전체가 하는 컨퍼런스 콜에 들어가 혼자만 알아듣지 못해 동료에게 다시 물어봐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면 비즈니스 화상영어 같은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고, 1달 뒤 자신이 생각한 목표에 도달했다면 작게라도 스스로 보상을 해야 한다. 자신에게 작은 선물을 한다든지 등의 보상이 없다면, 지속적으로 영어를 학습하는 상황에 놓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존 맥워터라는 컬럼비아대학의 저명한 언어학 교수가 *“언어는 퍼레이드"라고 말했다. 롯데월드 같은 놀이 공원에서 ‘지나가는' 퍼레이드를 떠올려보라. 가만히 멈춰서 움직이지 않는 퍼레이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언어는 유기체와 같아서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하고 변신한다. 쓰지 않으면 도태되고 잊혀지는 것이 언어의 본질이다. 영어는 미국에 유학을 못가서, 미국 대학을 나오지 못해서 못하는게 아니라 ‘안쓰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다. 미국에 비싼 돈 들여 언어연수를 간다 한들, 한국인 친구들과 코리아 타운에서 한국어만 쓰다 나오면 돈 들여서 ‘한국어'연수하고 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같은 원리로 한국에서 15년쯤 지낸 미국인은 뉴욕 타임스퀘어 한가운데서 유행하는 농담을 100%다 이해할 수 있을까? 한국인이 태국에 이민 간지 2년쯤 돼서 네이버 뉴스를 보면 글자는 읽히는데 뭔가 확 이해되지 않는 배경지식의 부재, 행간의 의미와 같은 것이다.
그 언어에 얼마나 노출(Exposure)되느냐가 ‘못하냐', ‘잘하냐'를 결정짓는다. 지금 당장 영어를 잘해야하는 이유(동기부여)와 구체적인 보상, 단기간의 목표가 없다면 당신의 새해 결심 2번은 늘 같은 목표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 1초당 성절음(Syllabic Sound)의 갯수를 언어별로 비교한 실험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235971274_A_cross-Language_Perspective_on_Speech_Information_Rate
*John McWhorter, a professor of English and comparative literature at Columbia University and the author of the book "Words On The Move: Why English Won't - And Can't - Sit Still (Like, Literally)."
* 관련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