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의 깊은 밤

안나푸르나 트레킹 10편

by 바람

저녁을 먹는데 한국에서 온 여학생을 만났다. 혼자서 포터나 가이드도 없이 그냥 혼자 올라왔단다. 오! 존경스럽다. 자그마한 체구에 아주 평범해 보이는데 정말 강한 사람이다. 진심 존경스럽다. 둘이 이것저것 여행 다닌 이야기를 나누는데 마안이 심각한 얼굴로 나의 컨디션이 괜찮은지 묻는다. 그러고 보니 롯지 안이 좀 어수선하다.




사진 688.jpg 안나푸르나의 사진을 찍는 사람

아까 혼자 올라온 한국 남자 한 사람이 굉장히 큰 카메라 들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고 다녔는데 지금 그 사람이 갑자기 고산 증세가 왔단다. 상황이 심각하여 여기 롯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부축하여 내려가려고 한단다. 해가 완전히 져서 완전히 깜깜한데... 여기서 MBC까지 내려가보아 고산 증세가 좀 나아지면 거기서 재우고 만약 그래도 안 좋으면 또 더 내려가야 한단다. 가끔 있는 일이라서 여기 사람들은 익숙하게 대처하는 것 같다. 정말 고산 증세는 체력이나 성별, 나이를 가리지 않는 것 같다.

마안은 나에게 절대로 머리를 감지 말라고 한다. 내가 결코 그럴 생각이 없으며 심지어 세수할 생각도 없다고 웃으면서 말하자 마안은 다행이라면서 몇 년 전에 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일본에서 온 여자 트레커들 몇 명이 여기 ABC까지 와서 자면서 머리를 감고 잠들었는데 그대로 밤사이 죽었다는 것이다. 소리 소문 없이 저체온증과 고산증세가 온 것이다. 그래서 그 후로 트레커들의 건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가이드들은 더욱 주의를 기울인다고 한다. 참고로 트레킹의 가이드들은 자신이 맡은 트레커들의 건강과 무사귀환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한다.

입맛이 없어도 무얼 좀 먹어야 한다. 고산 증세는 없고 다이어트는 해야 하고 마침 입맛도 없어서 대충 넘기려 했는데 안 되겠다. 그래서 그 용감하고 멋진 한국 여학생과 함께 뜨거운 수프와 빵 등을 같이 시켜서 나누어 먹었다. 아까 내려간 그 한국 남자의 건강한 귀국을 바라본다.




사진 700.jpg 너무 어두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그 어느 때보다 더 따뜻하게 자려고 뜨거운 물을 등산용 물병에 받아 담고 핫팩을 심장과 배, 등에 마구 붙였다. 그리고 아쉬운 마음에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지만 카메라의 한계가 있어서인지, 실력이 없어서인지 잘 나오지 않았다.

여기서는 밤에 화장실에 가는 것이 참 고역이다. 모처럼 따뜻하게 침낭을 데워놓았는데 다시 춥디 추운 밖으로 나가는 것이 싫다. 그런데 왜 꼭 누워있으면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는걸까? 하지만 어쩌랴 화장실에 갔다 와서 푹 자야지. 단단히 마음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사진 701.jpg 안나푸르나의 깊은 밤

아... 나오길 잘했다. 밤하늘 가득히, 별이 너무나 가까이, 너무나 많이 떠 있고 안나푸르나의 봉우리가 푸근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왜 '푸근하게'라고 느낀 것인지 잘 모르겠다. 밤이 깊어서 사방이 어두운데 달빛에 은은하게 비친 안나푸르나의 봉우리가 희미하게나마 달빛을 반사해 비추어 주는 것 같아서 그런가? 별들은 또 얼마나 총총 떠있는지... 오랜만에 보는 은하수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담을 수가 없다. 아...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그 느낌, 그 경이로움은 무어라 표현하기 어렵다. 사방에서 파고드는 추위만 아니라면 더더 오래 서 있고 싶다. 그래도 너무 추워서 얼른 화장실에 갔다 오면서 한번 더 안나푸르나를 바라보고 방으로 들어간다. 너무 춥지만 너무 아름다운 밤이다.




사진 719.jpg 안나푸르나의 아침 풍경

다음날 아침,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안나푸르나의 봉우리들이 아침이 밝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아침밥을 먹고 나오니 벌써 10시가 넘었다. 그런데 지금의 풍경은 마치 일출처럼 보인다. 워낙 해발이 높은 곳에 있어서 저 멀리 높은 봉우리를 넘어서 햇살이 처음 비추니까 이러한 장엄한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사진 734.jpg 일출에 물들어가는 안나푸르나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안나푸르나. 어찌 보면 일몰 때와도 비슷한 색감이다. 정말 아름답다. 보통 일출을 보면 황금빛에서 서서히 환한 빛으로 밝아진다. 대신 일몰을 보면 밝은 빛이 서서히 붉은빛, 그리고 황금빛, 이어서 창백한 빛으로 물들어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금 바라보는 안나푸르나의 일출은 창백한 빛에서 황금빛으로 물들어갔다가 다시 환한 빛으로 바뀐다. 신기하다. 정말 신기하다.




사진 736.jpg 환하게 밝아진 안나푸르나

달빛에 창백하리만치 하얗게 비친 모습에서부터 해가 뜰 때의 황금빛으로 물드는 안나푸르나. 나에게 안나푸르나는 이 두 가지 색깔로 기억될 것 같다. 이제는 해가 완전히 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제 안나푸르나와 작별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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