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여행기 프롤로그
나는 2023년 6월부터 11월까지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어학연수를 했다. 어학연수가 끝나고 나서 두 곳을 여행했는데 첫번째 여행지는 쿠바이고 두번째는 캐나다 옐로나이프(오로라)이다. 생각해보면 미친 계획이었다. 장기간 해외 생활과 공부로 심신이 지쳤는데 연이은 여행을 떠난 것도 미친 짓이었고, 하필이면 더운 나라 쿠바에 갔다가 곧바로 아주 추운 캐나다의 옐로나이프에 가는 것은 더더욱 미칫 짓이었다. 세상에는 이런 무모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내가 바로 그렇다. 하하하.
나는 2023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15일간 쿠바 여행을 했다. 나의 여행 계획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왜 하필 쿠바에 가냐는 질문을 했다. 외국 친구들도, 한국 친구들도 많이 질문했더랬다. 왜 하필 쿠바냐고... 나의 대답은 이랬다. '첫째, 미국이라는 힘쎈 나라에 반기를 들고 저항하는 국가라서 멋지다. 둘째, 체 게바라의 혁명 자취를 따라가보고 싶기 때문이다. 셋째, 아름다운 카리브 해를 보고 싶다.' 나는 미국의 패권주의가 싫다. 아직도 이 세계는 사라져야할 제국주의의 힘에 의해 지배받고 있다. 나는 미국이 그 정점에 서 있다고 본다. 각설하고, 어쨌든 나는 쿠바라는 나라가 여러모로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쿠바 여행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인터넷이 안되서 와이파이 카드를 사야 한다, 대중교통 시스템이 거의 없다, 미국의 봉쇄정책이 오래되면서 생필품이 부족하고 사회가 불안정하다.. 등등. 인도나 중국 여행과는 다른 종류의 어려움들이 있을 듯했다. 언어소통도 잘 안되는 곳에, 인터넷마저 안되면 어쩌나 싶어서 최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여기서 준비해갈 수 있는 것은 모두 준비해가기로 마음 먹었다.
일단 비행기표를 샀다.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출발하고 다시 밴쿠버로 돌아와야 한다. 여러 루트의 비행기 중에서 그 당시로는 가장 저렴하게 나온 멕시코시티를 경유하는 멕시코항공 표를 샀다. 가격도 저렴했지만 나의 멕시코 친구 R이 어쩌면 나의 여행에 합류할 수도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안타깝게도 R은 합류하지 못했다.
쿠바여행 정보가 많지 않아서 있는 대로 정보를 찾아 많은 검색을 했다. 한국 여행기는 물론 구글에서 영어로도 검색하여 정보를 최대한 찾아냈다. 여기에 몇 가지 정보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혹시 쿠바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므로...
1. 쿠바 관광 비자(여행자 카드)
쿠바에 가려면 여행자 카드라고 불리는 관광비자를 받아야 한다. 이 비자를 받으면 30일동안 쿠바에 머물 수 있다. 관광 비자라고는 하지만 그냥 입국카드 쓰듯이 내 정보를 몇 가지 기록하는 것이 전부다. 쿠바 정부 기관의 도장이나 확인은 없다. 이런 걸 비자라고 할 수 있나? 그래서 아마 여행자 카드라고 부르나보다.
어쨌든 이 관광비자는 여행사나 항공사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가격이 무료부터 100달러까지 천차만별이다. 예약한 비행기가 있다면 항공사에서 기내에서 관광비자 양식을 무료로 나눠주기고 하므로 확인해보면 된다. (내가 알기로는 캐나다 항공이 무료로 나눠 주는 걸로 알고 있다. 다만 캐나다 항공은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로 들어가는게 아니라 휴양지인 바라데로로 들어간다.) 또는 여행사나 항공사에서 30~50달러(100달러인 경우도 있음) 정도에 구입할 수도 있다.
작은 종이에 입국카드 쓰듯이 내용을 몇 가지 작성하기만 하면 된다. 내용은 별거 없으므로 작성하는 것은 쉽다. 다만 생년월일 쓰는 것이 평소 쓰던 방식과 다르므로 주의하자.
그리고 쿠바 관광비자는 쿠바에 입국할 때도 보여주지만 나중에 출국할 때도 보여주어야 하므로 잘 보관해야 한다.
아, 그리고 대부분 아는 사실이겠지만 쿠바에 방문하면 이후에는 미국에 갈 때 이스타 비자를 받을 수 없다. 나중에 미국에 갈 계획이 있다면 쿠바 여행은 보류하는게 좋다. 물론 미국에 아예 갈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 대사관에 가서 이스타 비자가 아닌 정식 비자를 받으면 된다. (이스타 비자는 일종의 전자 비자로 종류가 좀 다르단다.)
2. 쿠바 입국신고서
어느 나라나 해외에 가면 그 나라의 입국 신고서를 작성해서 입국시 제출하거나 보여주어야 한다. 쿠바도 입국신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미리 온라인으로 작성해서 QR 코드를 출력해 가야 한단다. 최소한 비행기 출발 48시간 전에 입력해야 도착할 때 QR 코드를 받을 수 있단다. 쿠바의 입국신고서 작성에 관해 자세히 설명된 다음의 링크를 참고하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https://airtravelinfo.kr/air_tip/1528350
3. 여행자보험증서 영문
아마도 한동안 쿠바에서는 여행자보험을 들지 않고 입국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자기네 비싼 여행자보험을 들도록 강제했었나 보다. 요즘은 간혹 무작위로 여행자보험 가입 여부를 검사하는 것 같다. 나는 미리 여행자보험을 가입하고 영문증서를 가지고 갔는데 검사하지 않았다.
4. 쿠바 시외 버스
나는 쿠바에서 각 도시간 이동을 비아술이라고 부르는 시외버스로 했다. 쿠바에는 외국인용 비아술과 내국인용 옴니버스라는 두 가지 버스가 있다. 당연히 비아술이 옴니버스보다 더 비싸다.
나의 여행은 주로 혼자 하는 자유여행이라 대중교통이 아주 중요하다. 비아술 버스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홈페이지를 찾아서 들어가는데까지 많은 검색과 노력이 필요했다. 어떤 경로로는 홈페이지 연결이 방화벽에 막혀서 들어가지 못하기도 했다. 아래에 내가 들어간 홈페이지 주소를 링크했다. 혹시 연결이 안된다면 구글에서 영어로 viazul을 검색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냥 내 추측인데 미국과 관계가 좋지 않은 쿠바의 정보들이 종종 막히는 것 같다. 그래서 쿠바에서 인터넷 주소를 종종 바꾸는게 아닐까? 그냥 내 추측이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비아술 홈페이지를 찾아서 회원가입하고 내가 원하는 버스를 미리 예약해서 예약한 내용을 출력해갔다. 홈페이지는 구글 번역기를 기본 설정으로 해서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었다. 첫 화면에 영어와 스페인어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사실 간단한 영어이기 때문에 번역기 없이도 이용할 수 있다.
일정을 짤 때 어느 어느 도시를 갈 것인지, 어떤 경로로 이동할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버스 노선과 버스 시간이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시간이나 경로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경로는 버스가 하루에 한대만 있는 경우도 있고 내가 원하는 도시로 한번에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버스 홈페이지를 꼼꼼하게 뒤져서 이런저런 버스 노선과 시간을 채크해서 경로를 정했다.
만약 여행에 노트북을 가지고 다닌다면 쿠바에서 그때그때 예약하면서 여행일정을 조절할 수도 있다. 다만 이번에 가보니까 노트북의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해서 원하는 때에 접속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리고 출력물이 필요한데 출력 서비스를 해줄 수 있는, 비싼 호텔을 이용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곤란할 수도 있다.
다만 최근 쿠바에서도 관광객들을 더 많이 오도록 하기 위해 온라인 이용의 편의성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휴대폰용 어플이나 휴대폰 정보로 예약증을 대신하도록 바꾸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내가 갔을 때 2023년 11~12월에는 대부분 종이로 된 예약증을 보여주어야 했다.
이용방법은 출발 1시간 전에 해당 버스 터미널에 가서 예약한 종이와 여권을 보여주면 버스표를 준다. 일종의 채크인이다. 이용하려는 노선이 인기 있는 것이거나 성수기라면 좀더 일찍 가서 채크인을 하는 것이 좋다. 나는 그런 경험이 없는데 어떤 블로그에서는 예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버스가 다 차서 그 다음 버스를 타야하는 경우도 있단다. 내 생각에 이들이 오버 부킹으로 예약을 받는 듯하다. 그리고 시내에서 먼 버스 터미널의 경우에는 채크인하고 나서 달리 갈 곳도 없어 대합실에서 기다려야 한다. 심심할 때 놀거리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5. 쿠바 유심과 인터넷
예전에는 쿠바의 인터넷 이용은 와이파이 카드를 사서 와이파이가 되는 공원 같은 곳에서 이용해야 한다고 들었다. 다행히 이제는 쿠바에도 유심(ETECSA, 에텍사)이 있다. 심지어 해외에서 미리 예약해서 쿠바 공항에서 받을 수도 있다. 물론 쿠바에 들어가서 유심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행 중에 유심판매처 찾아가서 사는 것이 귀찮을 것 같아서 미리 예약했다. 인터넷 분리 불안이 있는 나에게는 예약이 필수다. 후후. 다음의 링크를 참고하면 쉽게 유심을 예약할 수 있다.
https://blog.naver.com/dearour20s/223321750254
나는 위의 글처럼 유심을 예약하고 나서 공항에서 찾았다. 다만 공항에서 내려서 입국장에서 밖으로 나오기 전에 유심 찾는 곳을 놓쳐서 그냥 밖으로 나왔다. 몹시 당황했는데 친절한 아주머니가 공항 앞 건물의 에텍사 사무실에서 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셨다. 에텍사 사무실에 가서 상황을 설명하니까 여권을 확인하고 나서 유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친절하게 거기 직원이 유심을 바꾸어 끼워 주고는 설정도 다 해주었다. 내가 혹시 데이터를 다쓰면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까 또 친절하게 에텍사 사이트에서 이리저리 하면 데이터를 늘릴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유심이 들어 있던 케이스에 내 유심의 비번을 적어주는데 그것을 잊지 않도록 사진을 찍어두자. 물론 그 케이스에 원래 유심을 보관해서 아주 잘 간직했다가 마지막 출국할 때 유심을 바꾸어 끼웠다. 아, 그리고 휴대폰을 껐다가 다시 켤 때 이 비번이 필요하다. 비번 적은 케이스를 정말 잘 보관해야 한다.
6. 기타
쿠바 화폐는 이제 외국인 내국인 구분 없이 모두 쿠바페소를 사용한다. 쿠바에서 돈 사용은 달러와 쿠바페소 두 가지가 주로 이용된다. 카드는 극히 사용처가 제한된다. 하지만 카드도 필요하다. 좀 어이없지만 헤밍웨이의 단골 술집으로 유명한 아바나의 '엘 플로리디타'에서는 오직 카드만 받는다. 아예 입구에서 "너 카드 있니? 없으면 들어갈 수 없어."라고 말한다. 이런 경우나 유명한 선물가게나 비싼 식당에서는 카드 사용이 가능하단다.
외국인은 달러를 사용할 일이 의외로 많다. 올드카 투어, 버스터미널에서 숙소까지 이동하는 택시, 인근 해변으로 가는 관광버스 같은 것은 대부분 달러로 받는다. 관광지의 식당에서도 주로 달러를 받는데 아예 메뉴판에 달러, 캐나다달러, 유로, 쿠바페소의 가격을 모두 제시하거나 환율 얼마로 계산하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쿠바페소는 작은 가게에서 물이나 맥주, 간식을 살 때, 길거리 음식을 사먹을 때, 시내버스를 이용할 때 필요하다. 나중에 쿠파페소가 남으면 다시 달러로 환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거나 형편없는 환율로 받는다. 따라서 환전은 여행 계획을 생각하면서 조금씩 하는 것이 좋다.
2023년 11월~12월 나는 여행하면서 환전은 장소마다 조금씩 달랐는데 1달러에 200~250쿠바페소 정도 했다. 만약 달러를 받는 곳에서 쿠바페소를 낸다면 300쿠바페소를 1달러로 계산하므로 달러 내는 곳에서는 가급적 쿠바페소가 아닌 달러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전압은 110볼트이므로 여행용 멀티플러그를 가지고 가야 한다. 전기 사정이 안좋다는데 내가 머무는 동안에는 숙소에서 충분히 충전할 수 있었다.
시내 교통은 버스, 택시, 코코(삼륜 오토바이), 비씨(삼륜 자전거) 등이 있다. 버스는 노선도나 구글맵 이용이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물어물어서 타야하는데 현지인들 중에는 영어의 원, 투, 쓰리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좀 어렵다. 나는 숙소를 시내 한복판으로 잡고 주로 걸어다녀서 버스를 이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 딱 한번 아바나의 모로요새에서 시내로 오는 버스를 탔다. 노선만 알 수 있다면 타고 다닐 만할 것 같다.
그밖에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까지 거리가 먼 경우에는 택시 혹은 코코를 이용했는데 정말 많이많이 비싸다. 아마도 내국인들 가격과 다를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 교통비와 식비가 예상보다 많이 들어서 막판에 고생을 좀 했다. 전체적으로 물가가 우리나라와 비슷하거나 우리나라의 관광지 물가 정도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안전 면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다. 주로 유명 관광지를 중심으로 다녔고 사람이 많은, 밝은 곳을 다녀서 그런지 밤 외출에서도 별 어려움은 없었다. 관광 수입이 중요하기 때문에 관광객 대상의 강력 범죄는 일어나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것 같다. 물론 소소하게 사기치고 바가지 씌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도 식당에서 눈탱이 맞기도 했다. 자세한 건 여행기에서...
일단 여기까지 대략적인(?) 정보를 정리해 보았다. 쿠바 여행을 준비 중이라면 신나고 즐겁게 다녀오시라고 말해주고 싶다. 파란 하늘, 형형색색의 건물, 푸른 바다, 초록의 숲, 뜨거운 햇살, 재밌는 사람들, 다양한 경험... 쿠바는 지금까지 내가 다녔던 인도, 중국, 페루, 네팔 등의 나라들과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뭔가 참 다르다. 불편도 다르고, 재미도 다르다. 그냥 경험해봐야 안다. 궁금하면 가보시라.
(참고로 여행을 떠나기 전 밴쿠버에서의 생활은 브런치 매거진 '55살 밴쿠버 어학연수 일기' https://brunch.co.kr/magazine/van55에 담겨있다. 쿠바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어떻게 생활했는지가 궁금하면 이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