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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Sep 29. 2024

낡았지만 매력적인 아바나

쿠바 여행기 2일

2023.11.27.월요일

멕시코시티의 공항에서 9시40분에 출발하는 쿠바행 비행기를 탔다. 어제 캡슐호텔에서 자는둥 마는둥해서 많이 피곤하지만 드디어 쿠바에 간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오후 1시30분이 조금 넘어서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공항에 도착했다. 시차를 감안하면 실제 비행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다.

발 아래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넓은 평야에 푸른 목초지가 펼쳐진 모습니다. 공항에 가까워지니까 건물들이 들어찬 도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다.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공항은 예상대로 작았다. 쿠바에서 제일 큰 국제공항이라는데 우리나라의 지방공항 정도 수준이다. 짐 찾는 곳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겨우 짐을 찾았다. 공항과 비행기 모두 작은데 왜 짐이 이리도 느리게 나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쨌든 짐을 찾고 나서 밖으로 나왔다. 입국심사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그냥 여권과 여행 비자만 확인하고 끝이다. 관광객들이 많이 와서 그런가보다. 요즘 쿠바는 관광 수입으로 먹고 산다는데 정말 그런가 보다.



입국장 밖으로 나와서 미리 예약한 유심 받는 곳을 찾아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없다. 혹시나 싶어서 미리 캡쳐해둔 안내 이메일을 다시 읽어보는데 설명이 좀 애매하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출입국 관리구역 앞이라는데 혹시 아까 입국장의 짐찾는 곳을 말하나? 허걱! 그러면 어쩌지? 입국장은 한 번 나오면 다시 못들어가쟎아? 순간, 머리 속이 하얘졌다. 일단 환전소가 보여서 소액만 환전하고 나서 1층을 샅샅이 뒤졌다. 1층에는 없다. 혹시나 해서 2층으로 가보았다. 여기는 출국하는 곳이라 유심 사무실이 있을리가 없다. 

이때 내가 이리저리 헤매니까 청소부인 듯한 쿠바 아주머니가 나를 데리고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다른 아주머니에게로 갔다. 그 아주머니는 입국장으로는 다시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고는, 거구의 몸을 일으켜서 공항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찻길을 건너가서 1층과 연결된 통로 건너편 건물을 가리키며 저 건물에 에텍사(쿠바 통신사) 사무실이 있으니까 거기 가면 너의 유심을 줄거라고 했다. 그리고 걱정어린 나의 표정을 보더니 걱정말라며 다 잘될거라고 말해주었다. 정말 친절한 사람들이다. 

두근거렸던 마음을 진정하고 아주머니가 말한 곳으로 이동했다. 시골 버스터미널 같은 분위기의 건물에 통신사(에텍사) 사무실이 있었다. 중간에 택시 기사들이 엄청 달라붙었지만 일단 유심을 찾는게 급해서 사무실로 직행했다. 사무실 간판이 작아서 지나쳤는데 어떤 택시기사가 여기라고 알려주어서 찾아갈 수 있었다. 다행히 거기서 무사히 유심을 받을 수 있었다. 원래 여기서 받는 것인지, 아니면 입국장에 받는 곳이 있는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어쨌든 친절한 직원은 여권을 확인하고는 유심을 가져와서 나의 휴대폰에 끼워주고 설정도 바꾸어 주었다. 그리고 내 번호를 적어주고는 비밀번호도 적어주었다. 내가 데이터 충전을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까 그 방법도 자세히 알려주었다. 휴우. 이제 안심이다. 


이제 유심이 해결되었으므로 시내로 들어갈 일이 남았다. 택시기사들과 흥정을 해야한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도 있다는데 배차 시간도 길고 빙글빙글 돌아서 시간이 많이 걸린단다. 게다가 내 숙소까지 한번에 가는게 아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택시를 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격은 대략 25달러라고 들었다. 아까 나에게 에텍사 사무실 위치를 알려준 기사가 기다리고 있다가 시내에 갈거냐고 묻는다. 얼마냐니까 30달러를 부른다. 내가 고개를 저으며 가려고 하니까 25달러로 낮춘다. 

그리고 약간의 에피소드. 택시 트렁크에 짐들을 싣고는 출발하려는데 문득 25가 달러인지, 쿠바페소인지가 헛갈렸다. 당연히 그동안 읽은 후기에서 25달러라고 여러번 확인했었다. 그런데 잠시 내가 유심 때문에 긴장해서 그런지 정신줄을 놓고는 그게 쿠바페소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25쿠바페소라면 길거리 간식 정도의 가격인데 왜 그게 순간적으로 헛갈렸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곧 진정하고 택시는 출발했다.

택시 기사는 영어를 못해서 구글 번역기를 돌려서 대화를 했다. 쿠바는 처음이냐고 묻고는 공항에서 환전하면 비싸다, 길거리 환전은 위험하다면서 환전을 할 거면 자기에게 하라고 한다. 숙소 주인도 이메일로 공항 환율은 나쁘므로 환전은 숙소에 와서 자신에게 하라고 했었다. 당연히 어느 나라나 공항의 환율(1달러:190페소)이 가장 나쁘다. 그래서 아까 물 사먹을 정도의 돈만 환전했다. 택시 기사가 제시한 금액(1달러:200페소)이 공항보다는 조금 좋은 조건이지만 아직 숙소나 길거리 환전과 비교해 보지 않았으므로 거절했다. 게다가 어차피 나는 많이 환전할 필요가 없다. 숙소와 교통편을 모두 예약해서 이제부터 돈 쓸 일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숙소에 도착해서 택시 기사에게 25달러를 주었다. 거스름돈 없다고 할까봐 소액 달러를 준비해왔다. 아니나 다를까 택시 기사가 자신에게 팁을 줄 생각이 없냐고 묻는다. 나는 웃으면서 없다고 답했다. 아마도 5달러짜리가 없어서 30달러를 주었다면 팁을 명목으로 거스름돈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 나라의 물가를 생각하면 25달러는 사실 비싼 가격이쟎아. 이 나라의 교통비는 외국인에게는 너무 비싸다.



택시에서 짐을 내리고 있으려니까 숙소에서 한 사람이 나와서 짐을 받는다. 숙소에서 일하는 호세라는 사람이다. 그를 따라 건물로 들어가니까 안쪽에 작은 마당이 있고 방들이 나란히 있다. 짐을 내려 놓고 잠시 숨을 돌렸다. 호세는 숙소 주인에게 전화했으니까 곧 올 것이라면서 웰컴 드링크를 주겠다고 한다. 주스, 콜라, 맥주 중에서 고르란다. 당연히 나는 맥주! 웰컴 드링크로 맥주를 주다니 너무 좋다. 호세는 이 숙소에서 문지기 역할도 하고 잔심부름도 하는 사람이다. 열심히 일해서 자기도 이런 숙소를 운영하는게 꿈이란다. 영어를 능숙하게는 못해도 뭔가 열심히 배우려고 하는, 순수한 열정이 느껴져서 좋았다.

잠시 후 숙소 주인이 왔다. 쿠바에는 처음이냐고 묻고는 대략적인 쿠바의 물가, 주의할 점, 인근의 유명한 곳 등에 대해서 능숙하게 설명해주었다. 호세의 순박함에 비하면 약간은 능구렁이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사람은 좋아보인다. 환전은 택시기사가 부른 것보다 조금 더 좋은 조건(1달러:220페소)을 제시했다. 어차피 많이 할 것도 아니고 길거리 환전은 사기를 당할 위험도 있어서 그냥 숙소 주인에게 3일 정도 쓸 경비를 환전했다. 

드디어 안내된 방에 들어가니까 넓직해서 마음에 든다. 방과 화장실, 샤워실도 깨끗하고 작은 냉장고도 있다. 냉장고에는 물도 있는데 물은 매일 채워줄 테니까 굳이 사먹지 말란다. 땡큐다. 



짐을 풀고 잠시 쉬다가 밖으로 나왔다. 아직 해가 있으므로 인근을 돌아다니면서 길을 익혀야겠다. 여기서 2일간 머물면서 아바나 구경을 할 것이다. 이번 쿠바 여행은 시외 버스 노선을 고려해서 도시를 선택하고 각 도시마다 2박3일씩 머물 예정이다.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1박2일만 머물면 제대로 보지 못할 것 같아서 일정을 2박3일로 여유롭게 잡았다.

드디어 아바나 탐험 시작! 내 숙소는 말레꼰 해변에서 한블럭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숙소 밖으로 나오니까 비로소 쿠바다운 길거리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낡았지만 색감이 다채로운 건물들, 거리의 오래된 차들이 보인다. 그렇다. 여기는 쿠바다. 저항과 혁명의 나라, 올드카와 살사의 나라, 체 게바라의 꿈이 실현된 나라 쿠바다.



말레꼰 해변으로 나가 해변을 따라 올드타운 쪽으로 걸어가면서 내가 쿠바에 왔음을 실감했다. 우선 짙고 깊고 푸른 바다가 인상적이다.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가 말레꼰 산책로까지 덮친다. 중간에 몇 번 물벼락을 맞을 뻔했다. 와아.. 파도가 어마무시하다. 그놈 참 성질머리가 대단하구만. 참고로 이 바다는 카리브 해가 아니다. 카리브는 쿠바의 남쪽에 면해있는 바다이고 여기는 북쪽이다. 멕시코만쯤 되나? 

그리고 곳곳에 낡은 건물들이 즐비하다.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아 보이는 건물인데 의외로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반면에 번듯해보이는 현대식 고층 건물은 오랜 경제불황 때문에 더 이상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다. 참으로 묘하다. 무언가 오래되고 우중충해야 할 것 같은 거리가 의외로 활기가 넘치고, 최신식의 화려해보이는 건물은 텅 비어 있다. 이런 묘한 분위기가 쿠바의 매력인가 싶다. 

중간중간 가게들이 있는데 잡화점에는 어김없이 체 게바라의 사진이나 그림이 걸려있다. 그리고 강렬한 분위기의 그림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와, 쿠바노(쿠바사람)들은 색깔을 아주 잘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낡았지만 예쁘게 느껴지는 건물들에도 많은 색이 사용되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정말 색깔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것 같다.



해변을 중심으로 길을 걷다보니 벌써 해가 진다. 쿠바는 가로등이 별로 없어서 해가 지면 깜깜하다고 들었다. 오늘의 산책은 이만 접고 숙소로 향했다. 해지는 말레꼰! 말레꼰의 첫 일몰이다. 멀리 보이는 신시가지의 빌딩 사이로 해가 진다. 내가 기대했던, 바다 위로 지는 일몰은 아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일몰은 아름답게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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