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만난 노래 -안치환 '어머님 전상서'
2002년 일기
당신은 언젠가 지팡이를 짚게 되실 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지팡이를 짚게 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꼿꼿하고 당당하던 허리와 어깨는 구부정하게 내려앉을 지도 모릅니다.
아,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해지셨군요. 환갑 나이가 되도록 검고 짙어 염색했느냐는 이야기를 듣곤 했던 당신의 머리가.
아, 어느새 키 작은 저보다도 작아지신 걸까요. 저는 늘 당신을 올려다보곤 했었는데...
삶의 힘겨운 고비를 숱하게 겪으면서도 힘들다는 내색조차 안하시던 당신이 이제 딸의 전화를 기다리시고, 딸의 방문을 기다리시는군요. 어느 틈에 당신은 '내가 이제 무용지물이 아닌가 생각도 했다'는 그런 약한 말씀도 하시는군요. 어머니.
오래 전이에요. 제가 대학생일 때였나봐요. 바깥에는 찬바람이 씽씽 부는 겨울 새벽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잠을 못자며 책을 읽고 있었나 봐요. 그 시절.. 많은 젊은이들이 삶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에 대해 고민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행복하거나 편안한 것이 죄스럽던 시절이었죠. 제가 읽던 책 제목이 기억나진 않지만 자본주의 모순, 한국근대사… 이런 류의 책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숨을 죽이며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연탄불을 가는 소리였습니다. 추운 겨울날 새벽, 어머니는 깨시자마자 딸 방의 불이 어찌 됐나 걱정스러워 나오신 거였어요. 제가 자고 있다고 생각하셨을까? 소리로 전해진 어머니의 동작은 조심스러웠습니다. 저는 울컥 슬픔이 느껴져 먹먹해지는 가슴으로 소리의 끝을 안타깝게 쫓고 있었습니다.
내 삶의 아궁이에 어머니가 불을 지피신다.
뜨거운 온돌방에 앉아 설익은 삶의 고민을 하는 자식을 어머니는 그대로 지켜주신다.
또 한참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저는 교사가 되어 전교조 조합원이 되었죠. 전교조에 참여하면 해직당해야 하는 시절, 어머니는 제 결정에 대해 아무 말씀도 안하셨습니다. 해직되고 외출할 때면 어머니는 "차비 주랴?"고 물으셨지요.
그리고 또 한참 세월이 흘러 학교에 다시 나가게 됐을 때 어머니는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때, 교장이며 대학총장, 이사장을 만났었다. 만나자고 해서. 너를 말리라고 하더라."
아, 지독한(?) 어머니! 어머니는 그런 이야기를 딸에게 전혀 하지 않으셨던 겁니다. 딸이 행여 마음 흔들릴까봐. 어머니에게 딸의 선택을 말리라고 한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이른바 여성 명사들이었지요.
딸의 선택을 존중하고 믿어주신 어머니.
어머니는 늘 줄곧 언제까지나… 내 삶의 아궁이에 불을 지피시는 분입니다. 어머니.
2022년 일기
“오늘은 무슨 요일이냐?”
엄마가 물으신다.
“목요일이요.”
“어휴, 아직 목요일이야. 센터 가야되지? 지하로 가면 차가 오고 그거 타고 가는 거지?”
똑같은 이야기가 매일 반복된다.
“H는 어디 사냐? J는 미국 갔니?”
손자들의 근황을 아침저녁으로 물으신다. 아니 뭔가 생각이 지피실 때마다 물으신다.
어머니의 꼿꼿하던 허리는 구부정하다. 화장실에 가실 때 늘 부축해드려야 한다.
3년 전까지 홍천에 있는 아들 집을 지하철 타고, 시외버스 타고 가셨던 어머니였는데.
나는 아침에 어머니를 배웅하고, 저녁에 맞이한다.
점차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일들은 줄어든다. 남은 관심사는 TV 보는 것, 맛있는 거 먹는 것, 자식들이 찾아오는 것….
난 가끔씩 내가 아흔 노인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꾸 먼 여행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내 힘든 시절 희망을 주시던 어머니, 내 아픈 시절 말없이 기도하시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이제 나와 내 형제들이 엄마의 희망이고 버팀목이어야 한다.
내 삶의 아궁이에 불을 때주시던 어머니, 이제 어머니 남은 삶의 아궁이에 자식들이 불을 지펴드려야 한다.
안치환 '어머님 전상서' https://www.youtube.com/watch?v=l7Dbx_88AW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