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쓸쓸함을 몰랐었다

삶의 길목에서 만난 노래 -양희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by 작은노래

나는 그때 병아리 선생님이었다. 교사가 된지 3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어느 일요일 우리 반 올망졸망한 꼬마들과 만났다. 몇 아이들 집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열정이 넘쳐 지나치던 시절, 나는 쉬는 날에도 아이들과 만날 궁리를 하고 있었다. 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으면 만나고, 이야기하고, 필요하다 싶으면 가정방문도 불사했다.


그날 내가 찾아가는 아이들 중에는 결석이 많았던 아이도 있었고, 생활 습관이 나태한 아이도 있었고, 애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도 있었다. 지금 같으면 일요일에 아이들 집을 방문하는 실례(?)는 저지르지 않을 텐데. 그때의 나는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이것저것 헤아릴 줄도 잘 모르고, 그저 내 나름의 열정에 불타 있었다. 좀 미숙했다.


한 아이의 집에 가니 엄마는 안 계시고 아빠만 계시다고 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아이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단칸방에서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음료수 한 잔을 마시며 아이의 학교생활 이야기도 하고, 몇 가지 당부도 하고 일어섰다. 아이가 엄마하고 단둘이 살고 있는 걸로 알았는데 아빠가 계셨다는 것도 조금 의아했고, 중학교 1학년의 아버지라기엔 너무 젊어서 또 의아했지만 그냥 그런가보다, 새아빠가 생겼나보다, 좀 젊어 보이는 얼굴인가보다 생각하고 말았다.


다음 날 아이는 밝은 모습으로 나에게 오더니, 묻지도 않은 말을 하고 즐거워하는 거였다.

“아빠가요. 엄마한테 선생님 오셨다는 이야기 하면서요. 선생님이 ‘병아리’래요. 삥아리….”

나는 약간 부끄러웠다. 내 앞에서 깍듯하게 최상의 존경을 보이며 이야기를 나눴던 그애 아빠는 나중에 엄마랑 이야기하며 “아직 어린애야. 병아리야.” 그렇게 말했는가보다.

아무튼 그 아빠는 아이 엄마가 어쩌다 만나 동거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그 엄마보다 한참 나이가 어렸다.


몇 달쯤 지났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들어오니 그 애의 엄마가 와 있었다. 등록금 때문에 왔노라고 했다. 형편이 어려워 조금 늦게 낸다는 이야기를 하러 왔다는 거였다. 학교에 온다고 차려입은 듯한 아이 엄마의 분홍 코트는 사실 후줄근하게 낡아있었고, 입에서는 술 냄새가 풍겼다. 얼굴은 초췌했다.


나는 아이 엄마에 대해 묘한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학년 초에 써오는 가정환경조사서를 보며 (당시엔 그런 것도 했다.) 그 필체에 감탄했었고, 뭔가 엄마가 써 보낸 글이 있었는데 그 수려한 문장력에 또 놀란 적이 있었다. 아이 엄마가 상당히 교육을 많이 받고 지적인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얼핏 들은 듯하다.

그렇게 지성을 풍기는 사람이 어떤 남자와 만나 그냥 산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네. (그때 나는 그런 만남을 이해할 만큼 인생사에 대한 너그럽지 못했을 것이다. 젊음의 미숙함과 결벽증 투성이였다. )


그날 나는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에서 비비안 리가 맡았던 블랑쉬를 떠올렸다. 한때 아름다웠으나 몰락해 버린, 한 때 부유했으나 떠돌이 신세인, 사랑을 추구하지만 어둠 속에 가려진 채 허상만을 쫓는 블랑쉬!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진실은 후줄그레한 코트와 술냄새와 지친 듯한 얼굴의 주름살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야기기 끝에 술에 취해 혀가 조금 말린 채 아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보냈어요. 가야할 데로 가라고……. 사랑이란 것도 다 쓸쓸한 거야.”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야릇한 연민과 공감에 나는 그 엄마를 다독여 보냈다. 비틀거리며 가는 아이엄마의 뒷모습은 위태하고 안쓰러웠다.


겨울방학 때 우리 동네 교회에 다니던 중학생들이 불우이웃을 돕는다고 쌀을 모았다. 그리고는 막상 어디에 줘야할지 몰라 쩔쩔매고 있길래 우리 반에 어려운 아이가 있는데 몰래 갖다 주자고 했다. 약간의 돈을 보태 넣고는 학생들에게 들려 그 애 집으로 보냈다.


알아채지 못한 줄 알았는데 얼마 뒤 그애한테서 편지가 왔다.


“…처음에 엄마는 아빠가 갖다 주셨는 줄 아셨어요. 그러다가 선생님이 갖다 놓으신 걸 아시곤 고맙다고 우셨어요….”


그 순간 나는 아이의 새아빠라는 사람이 영영 떠나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에 까닭 모를 쓸쓸함을 느꼈다. 아이 엄마가 쌀과 돈을 보는 그 순간 느꼈을 반짝 하는 희망과 이어지는 허탈감을 미루어 생각하며…….


아련한 기억이다.

세월은 흘렀다.

인생의 쓸쓸함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다.

전에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인생의 그늘을 받아들이고 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엄마의 낡은 분홍 코트와 술냄새와 지치고 주름진 얼굴이 내 가슴 한구석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음을 알았다.


그때 나는 참으로 어렸다. 그래, ‘삥아리’였다. 인생과 사랑의 쓸쓸함을 몰랐다.

저물어가는 한 여자의 쓸쓸한 사랑을 잘 이해하지 못했었다.


양희은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https://www.youtube.com/watch?v=4JVFIWKq7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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