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크기

삶의 길목에서 만난 노래 - 김광석 '먼지가 되어'

by 작은노래

김광석의 노래를 듣다가 문득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느낌을 갖는다.

'작은 가슴 모두 모두어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노래는 내 가슴에서 불을 당기는 성냥이 된 것처럼 다가왔다.

그래 그 누군들 삶의 어느 순간 이런 그리움을 갖지 못했으랴. 이런 큰 그리움을...


---------


그 여자는 친구 몇과 어울려 여행을 떠난다. 누군가의 남자 친구와 그 친구 몇도 동행했다. 얼굴은 익히 알던 사람들이다. 일곱 명이라는 숫자가 어색해지기 쉬운 여행 분위기를 그런대로 가라앉힌다.

밤 열차를 타고 목포까지 가는 길. 여자는 창밖을 바라본다. 그 창에는 기차 안이 비친다. 여자는 창밖 아닌 기차 안에 있는 한 남자를 유리창을 통해 바라본다.

새벽의 목포역. 아직 어둑어둑한 시간, 그들은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으로 들어간다.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는 한참을 기다려야 하므로.

밤새 기차 여행에 피곤하여 털썩 주저앉은 여자 옆에 한 남자도 털썩 주저앉는다. 어색한 웃음...

남자는 100원을 넣으면 돌돌 말린 '오늘의 운세'가 나오는 재털이 겸용의 운세판(?)에 100원을 넣는다. 순전히 어색해서였을까.

'--낯선 타향에서, 그리던 인연을 만나게 됩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들릴 만큼 나직한 목소리로 읽고는 여자를 쳐다보며 웃는다. 가슴 밑바닥에서 쿵 하는 소리.. 여자도 마주보며 웃는다. 그들의 웃음은 웃음 이상이다.


산길을 걷고, 내를 건너고, 털털거리는 버스도 타고, 논두렁을 밟아보면서 그들은 걷는다.

어디선가 징--하는 소리가 들린다.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라 했다.

"그렇군요. 세상 모든 것들은 이별할 때 울음소리를 내는군요."

여자의 말에 남자는 눈길을 돌린다. 따뜻한 눈길...


한창 젊은 나이의 남녀가 어우러져 다니는 여행길은 즐거웠음에 틀림없다. 여행 일정은 하루, 이틀쯤 길어지고...

내일이면 서울로 올라가는 날..내장산 자락 어느 민박집. 여행의 마지막 밤이니까 밤새도록 이야기하자며 큰 방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웃음이 터지고, 흥겨움이 무르익고, 한 두명 편한 자세로 눕기도 하고, 벽에 기대기도 하며 밤이 깊었다. 어느 틈엔가 다들 잠이 들어버렸다.


마지막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여자는 코고는 소리까지 내며 잠든 일행을 위해 불을 끈다. 얼핏 잠이 들었다 깼다 몇 번을 반복하다가 누군가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잠이 달아나고 말았다. 재채기를 한 사람은 일어나 뭔가를 부시럭 부시럭 찾고 있었다. 휴지를 찾는 것 같았다. 밖에서 새들어오는 불빛으로 어렴풋이 그 누구인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남자였다.


음식이며 휴지 같은 물건은 아마도 그 여자가 누운 곳 근처에 있을 터였다. 가는 불빛을 의지해 물건을 찾던 남자는 자기가 찾는 물건 가까이 왔다. 휴지 쪽으로 손을 뻗치던 남자의 손길이 팔베개를 하고 있던 여자의 손가락에 닿았다. 움찔... 그러나 더 이상 움찔하지 않았다. 누구의 손인지 안 것이다. ET 영화 한 장면처럼 두 손가락은 조금 겹쳐져 닿은 채 한참을 있었다. 점점 그 남자의 손가락이 뜨거워진다고 생각했다. 아니 여자의 손가락이 뜨거워졌는지도 모른다.


시간이란 주관적인 것.. 길다고 여겼으나 찰나인지도, 순간이라 여겼으나 긴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작은 한숨을 조심스레 내쉰 남자는 가만히 여자의 손가락을 잡았다 놓았다.

그는 분명 그 여자가 잠들어 있지 않음을 알았으리라.


다음 날 아침, 설거지 당번이던 남자는 여자가 근처에 갔는데도 쳐다보지 못한다. 뭐라 말을 걸자 씨익 웃었지만 역시 쳐다보지 못한다.


그렇게 겨울 여행은 끝이 났다. 그리움은 시작이었다.


------


김광석의 노래는 한 편의 시다.

작은 가슴 모두 모두어 시를 써 봐도 모자란 당신? 그건 바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의 크기!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그대 곁으로? 이것 역시 그리움의 크기. 먼지처럼 미세한 존재가 되어야 그대 곁으로 날아갈 수 있지 않을까? 바람이 쉽사리 그대에게 데려다 줄 수 있도록, 행여 내 존재를 그대가 버거워하지 않도록...

나는 오랜만에 내 절대적 감성을 흔드는 선율에 젖어보았다. 김광석은 바하의 선율에 젖은 날이었다 노래하지만...


김광석 '먼지가 되어'

https://www.youtube.com/watch?v=f3G0_ZQsDZo

keyword
이전 06화누군가의 마음을 조심스레 두드리던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