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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기대하던 우아한 작가 생활?

사실주의 생존형 작가 생활을 소개합니다.

by 삼각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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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본 일러스트 작가님들의 일상은 참 낭만적이고 분 위기 있다. 깔끔하고 예쁜 공간에서 차를 마시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해 그림을 그리는 우아한 작가님이 많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도 작가인데, 나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게 우중충할까?


몇 번의 퇴사 끝에 백수 상태로 일러스트를 그렸고 그걸 인터 넷에 올리기 시작하며 이름을 알리는가 싶었다. 여기저기 갤러 리에서 전시도 몇 번, 포털사이트에 소개도 여러 번, 큰 회사랑 계약도 몇 번 했다. 그렇게 해서 번 돈은 별거 없었지만 그동안 모았던 돈도 약간 있었고, 당시에는 20대라 부모님의 품에서 꾸준히 활동하면 유명 작가가 되어 우아하고 안정적인 작가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를 하려니 돈이 들었다. 제안받은 전시는 작가가 전시 비용을 내야 했고, 페어나 행사도 참가비와 물건 제작비로 상당한 돈이 들었다. 들어오는 그림 문의는 내가 원하는 것보다 단가가 한참 낮았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문의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 뒤로 들어오는 그림 의뢰는 급하게, 싸게, 많이 그려야 하는 작업들이었다. 포털사이트에 아무리 소개가 되고 언급이 되어도 직접적인 큰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요즘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새로운 미술도구, 기계, 참가비, 굿즈 제작 비용, 수업료 등 구멍 뚫린 항아리에 물을 붓 듯 돈을 써야 했다.

평일 오후 여기저기 예쁜 장소에서 그림 그리는 사진을 찍고, 포털 메인에 소개된 그림을 알리며 잘 나가는 척 포장했다. 그래야 일이 들어올 것 같았다. 그래야 사람들이 내 그림을 멋지게, 내 삶을 근사하게 생각할 것 같았다.


지금은 이것저것 도전하고 시도하다가 작가 생활만으로는 온전한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생활비를 벌어야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할 테니 생존을 위한 수입활동이 필요했다. 책을 내는 와 중에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새로운 자영업을 계획했고, 책이 나 올 당시에도 과외까지 해서 주 7일을 일했다.


남들이 볼 땐 책을 냈다는 것을 대단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계약을 할 때 만 해도 심장이 터져나갈 만큼 벅찼고 책이 나올 땐‘내 책’에 희열을 느꼈지만 사실 출판 수익에 관한 내용은 기존 작가들의 이야기로 알고 있었던 터라 수익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림과 글을 앞으로 계속 쓰려면 더 자영업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 시간을 썼다. 코로나 19 여파와 여러 일정이 겹쳐 반년 동안 친구 한 번 만나지 않았고, 석 달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꿈에도 현실에도 최선을 다하는데도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고 힘이 들었다. 세상 속 나는 항상 짝사랑만 하는 어설픈 사춘기 소녀 같다.


늦은 밤 방구석에서 제일 싼 맥주를 마신다. 나는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작가이자 자영업자다. 내 모습은 해피엔딩보다는 낭만이라고는 없는 극사실주의이며, 극적인 사건 없이 흘러 엔딩인지 모르게 어느 순간 마무리되는 허무한 프랑스 영화이고, 희극처럼 보이고 싶은 비극 같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허무한 결말로 끝날 것 같은 이 비극을 어떤 의미를 가진 장편영화로 마무리짓느냐일 것이다. 이 막이 끝나면 나 자신과 사람들에게 작품성만큼은 인정받고 싶다. 허무할지라도 막이 끝나고 나면 주인공의 앞날을 떠올려보게 하는, 비극이어도 사람들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남는 그런 이야기로 기억되고 싶다.




종종 살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 그런 어느 날이 있어요.

그런 날들의 소소한 단편을 올립니다.



브런치에서 연제한 《살 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책의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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