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보단 모르는 사람이 위로가 될 때.
한동안 잠잠했다 싶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부터 엄마의 모난 말들이 나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바로 이불 정리하고 나오라 그랬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 말을 들으며 출근했고 퇴근 후 듣는 말은,
"어휴 저 엉덩이 봐라. 젊은 아가씨가 저래서 어디 남자가 좋아하겠어?"
"네 방은 왜 이렇게 더러워? 치운다고 치워도 더러워서 네 방에는 못 있겠다."
"그래서 어디 밥벌이나 하고 살겠냐? 너 하는 거 보면 답답하다 답답해!"
"나 같으면 밤을 새워서라도 뭐라고 하고 새벽같이 일찍 일어나서 미친 듯이 운동하고 출근하겠다. 넌 뭐 하나라도 악착스러운 게 없어?"
이런 말들을 들어도 예이~하며 마음게 크게 두지 않았다. 나는 내 페이스가 있고 엄마 기준에 맞춰 나를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자. 결심이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 보자, 하며 마음을 다잡으며 무시하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며칠간을 마주칠 때마다 듣는 말이라곤 이런 말뿐이고, 나도 적자로 마감을 찍고 퇴근하자마자 그런 소리를 들으니 서러웠던 마음이 한순간 욱하니 올라와버렸다. 어이없는 엄마의 논리에 대한 반박과 지금까지 마음속에 있던 서러움이 합쳐져 엄마 말에 나도 감정적으로 끝까지 대답했다. 그 결과는?
"입 닥쳐! 여기서 한마디만 더 해봐! 싸가지 없는년이 한마디를 안 지지. 그냥 그렇다고 하면 '네, 엄마 죄송해요' 하면 될 것이지 어디 따박따박 말대꾸야!"
그냥 욕받이가 되어야 하는 운명인 걸까. 항상 결과는 똑같다. 엄마의 잔소리는 내가 한 그 행동이 정말 다 못마땅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남들처럼 잘 나가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의 우회적 표출이고, 단점 하나하나를 물고 늘어지는 시비 걸기 같은 거다. 어렸을 때부터 난 한 번도 내가 하고 있는 것과 하고 싶은 일에 인정받지 못했다. 내가 악착같이 버티고 이뤄낸 일들은 부모님에게는 너무나 사소했고 자랑으로 삼기엔 초라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있잖아요 엄마, 지금 이 고비를 버텨내는 나한테 엄마까지 이러는 건 정말 너무 가혹해.
방안에 찌그러져 핸드폰을 켜 sns를 기웃거린다. 막 퇴사하고 나와 시작한 백수생활을 어떤 이의 글을 읽는다. 공감도 되고 웃프기도 하고 피식 웃음도 나오는 글도 있다. 우울한 어떤 이가 그린 공감툰도 본다. 자존감을 기르는 방법도 찾아본다. 그런 것만 찾아보니 맨탈을 강하게 하는 법도 추천 피드로 뜬다. 화면 속 누군가의 글과 그림은, 우울한 사람에게 넌 왜 별거 아닌 걸로 우울하냐고 타박하지 않으며, 작은 것에도 행복해한다. 지치고 방향을 모르겠는 사람에게 너 따위가 꿀 꿈은 없으니 정신 차리라는 야박한 질책보단 말보단 포기하지 말라고, 너 자신을 믿으라 한다.
그게 그저 입에 발린, 달콤하기만 한 글이라 할지라도 몇천 개의 하트가 달린다. 하트의 주인들 중 누군가는 공감을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위로를 받았을 것이고, 누군가는 살아가는 힘을 얻었을 것이다.
수많은 하트를 보며 아침 출근 지하철 풍경을 떠올린다. 일하러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리 지어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고 빠르게 이동하는 물결을. 옆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 꽉 찬 지하철 안에서 서로의 살을 불쾌하게 스치며 무표정한 표정으로 피곤한 삶을 다시 시작하는 지하철 안. 그 안은 너무나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다. 운 좋게 자리를 차지해 앉아 핸드폰을 하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면,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각자의 핸드폰을 본다.(안 하는 사람은 자는 사람 정도..)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하거나 웹서핑을 하거나 화면 너머 누군가와 대화를 하겠지. 어쩔 땐 가까운 사람보다 화면 속 세상이, 화면 속 사람이 의지가 되는 순간이 있다.
영상을 보면서 먹어야 밥이 맛있고
웃긴 짤과 이야기를 봐야 겨우 피식 웃음이 세어 나오고
화면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소통으로 마음의 상처를 다독이는 요즘.
지금 내 삶의 위로는 어디서 받고 있는 걸까?
현실에서 같이 생활하고 자주 보는 주변 사람들보다 화면의 콘텐츠 또는 화면 너머 사람들이 오히려 편하고 감정적으로 의지가 되는 순간이 올 때마다, 내 감정은 지금 무엇에 의지해 견뎌내고 있는가에 의문이 들었다. 솔직히 요즘 친구나 가족들과 나눈 감정의 교류 보단 넥플릭스 영화를 보고 울고 웃고, 유튜브 일상 유튜버 영상에 공감한 적이 더 많았잖아? 현실적인 자문자답에 조금은 씁쓸해졌다. 주변 사람들과 원만하게 어울리며 사이좋은 모녀 사이에 살가운 딸로, 많은 친구들과 잡은 약속이 즐비한 인싸로 살고 싶었는데. 이게 현실이구나, 싶어서.
화면 속 세상은 내 하루를 버티게 해 주고 심심하게 해주지 않게 해주는 고맙고 편리한 존재가 되었다. 내 주변을 시끄럽게 채워줬던 주변 모든 화면의 불빛과 소리가 꺼진 적막한 늦은 저녁, 오늘 난 정말 외롭지 않았은데, 이상하게 오늘의 나를 떠올리면 '나는 외로웠나?' 싶어 진다. 그리곤 괜스레 마음 한구석 빈 공간이 생기는 것 같아 부랴부랴 서둘러 잠에 든다.
이제와 대단히 화목하고 따뜻한 관계를 꿈꾸진 않는다. 내가 바라는 건 단지 몰캉하진 않아도 차갑지 않은 그런 보통의 대화.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긁히며 지나가지 않은 그런 수수한 말 한마디, 그뿐이다.
종종 살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 그런 어느 날이 있어요.
그런 날들의 소소한 단편을 올립니다.
브런치에서 연제한 《살 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이 정식 출간되었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책의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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