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그림과 글을 같이 작업한 지 6개월 만에 여러 군데에서 출간 제안이 들어왔다. 처음 출간 제안이 왔을 때도, 출판사 미팅을 할 때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책 표지 그림을 그려보는 게 소원이었던 내가 저자라니! 하지만 기쁜 만큼 무서웠다. 내 인생에 이렇게 좋은 날이 온 적이 없는데, 혹시 나에게 더 큰 불행을 주려고 행운을 먼저 던져 준 건 아닐까 의심됐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티를 내면 신이 눈치채고 모든 걸 뺏을 것 같았다. 실패가 익숙한 나는 다가온 행복이 좋으면서도 행복감을 느끼는 있는 모습이 어쩐지 어색하고 불안하다. 이 행복을 온전히 누려도 되나 싶다. 우중충한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나에게는 그럴 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상태가 오랜 시간 계속되다 보면 생각과 행동이 습관처럼 같은 자리를 맴돈다. 오랜만엔 쉬는 날 놀러 가려고 지하철을 타려다 습관처럼 회사 방향의 개찰구로 들어가서야 잘못 들어갔다는 걸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 제자리만 뱅뱅 돌고 있는 나를 누군가 확 밀어주거나 옳은 방향으로 계속 이끌어 주길 바란 적이 있다. 해결하고 싶어도 해결책이 없고,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고,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으니 다 놓아버리고 되는 대로 살아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정말 다 놔 버리면 어떻게든 되긴 된다. 엉망진창이 된다.
어느 히어로 영화처럼 내 몸에 숨어 있던 에너지나 재능이 저절로 절체절명의 순간에 폭발하듯 튀어나와 시나리오처럼 당연히 위기를 극복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 속 이야기다.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봐야 한다.
나는 내가 히어로가 아님을 인정하고 나만 아는 은밀하고도 미세한 궤도 변경을 시도했다. 관성처럼 걷던 길에서 아주 약간 조금씩 방향을 틀어보기 시작했다. '5분 일찍 일어나기', '밥 먹고 바로 설거지하기', '일어난 후와 자기 전에 스트레칭하기' 같은 생활적인 부분도 있고, 그림에 대한 부분도 있다. 한 달에 2~3회 마감 날짜를 정해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계속 그림을 올렸던 곳은 긴 글을 쓰지 못하는 구성이라 그림 한 장에 스토리를 가득 채우려고 시간을 더 들였다. 또 다른 사이트인 브런치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쓰고 가벼운 그림과 함께 올리기 시작했다.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나만 겨우 알 정도로 미세하게 궤도를 튼 것이다.
다른 사람이 모를 정도의 변화라서 바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부담이 적다. 거창하진 않아도 꾸준히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목표를 바꾸니 스트레스보다는 성취감이 생긴다. 궤도를 바꾸고 있는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중이다. 바뀐 궤도를 따라 주변의 온도와 풍경도 조금씩 달라진다. 달라지는 것들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과정의 달라짐이라면 두려워 말자.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내 궤도에 집중해 길을 잘 만들어 가면 된다. 내핵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목표점을 향해 끊임없이 방향을 틀어 보는 거다. 가끔 목표가 너무 멀어서 이렇게 가는 게 맞나 싶은 순간이 온다면 걷는 법을 의심하지 않고 첫걸음마를 뗐던 것처럼 그냥 발을 내디뎌 걸어 보자.
나는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목표 지점을 향해 궤도를 변경하며 나아가고 있다. 은밀하게 달라지고 있다.
위 내용은 브런치에서 연재하다 정식 출간한 책 <살 만한 것 같다가도 아닌 것 같은>의 내용 일부입니다.
요즘 다시 크게 궤도를 변경해야 할 타이밍이 된 것 같아 쓴 글을 읽으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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