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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경계인 Nov 18. 2022

흑백 (black and white)

아내의 감정상태는 흑과 백 둘 중 하나였다.

아직도 많은 사진작가들이 흑백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다. 흑백으로 표현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흑백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흑백사진이 인기 있고, 주제에 따라 컬러사진보다 감성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경계성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과 인간관계를 이어가기 힘든 이유는 그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세상을 느끼기 때문이다. 7년 동안 겪어왔던 내 경험에 의하면 단순히 변덕스럽고, 감정 변화가 극단적 상태에 이르는 것을 넘어섰다.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퍼지는 극단적인 사건사고들을 아내는 마치 자신에게 벌어질 것 같은 일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켜야 했다.

경계성 성격장애의 감정 변화를 나타낸 그림


Gray scale

아내가 경계성 성격장애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때쯤 나를 놀라게 했던 그림이다. 회색 영역은 없고 흑과 백의 경계가 뚜렷하다. 그동안 나는 아내가 경계성 성격장애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지만, 결혼 초창기 극단적인 감정 변화를 보이는 아내를 보며 어렴풋이 머릿속에 떠올렸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어느날아내의 감정 상태를 마주하며 마치 아내의 마음이 흑(악마)과 백(천사)으로 구분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있었던 상황을 잠시 이야기하자면, 첫째 딸의 돌잔치 당일, 또 무슨 기분 상한 일이 있었는지 갑자기 나더러 돌잔치를 혼자 가라고 말했다. 엄마가 버젓이 있음에도 자식의 잔치상 앞에 아이와 아빠 혼자 서 있는 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아침부터 나는 눈물과 함께 아내를 달랬다. 우여곡절 끝에 돌잔치를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아내는 또 무슨 기분 좋은 일이 있었는지 언제그랫냐는듯 친구, 가족, 지인들 앞에서 웃고 나에게도 잘해주었다...



기분 좋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바닥을 기는듯한 감정상태를 보이는 것이 경계성 성격장애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 특징은 비단 성격뿐만 아니라 대인관계에서도 나타난다. 평소 필요 이상으로 연락을 자주 해왔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을 차단하거나 심지어 전화번호까지 바꿨지만, 어찌해서 다시 연락이 닿았다 해도 같은 상황이 다시 반복된 적 있다면 그 사람은 경계성 성격장애일 가능성이 높다.



논리와 설득은 경계인들의 마음을 뚫을 수 없다. 나는 적지 않은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거래처 사람들을 상대하고, 행여나 논쟁거리가 생기면 주장과 근거를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계인에게 주장, 근거, 논리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뚫을 수 없는 단단한 방어기제만 발동될 뿐이다. 경계인의 마음과 뇌를 보호하는 방패는 그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다. 창은 부러지고 힘이 한껏 들어간 손 목만 다칠 뿐이다. 결국 자신을 보호하는 선택만이 다치지 않는 가장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상황이 반복되지 않는 방법은 결국 환자 스스로가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고 치료에 대한 희망과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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