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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유치원 학생입니다.

주간보호센터에 다닌다.

by 여행하는나무 Jul 19. 2024


우리 엄마는 유치원 학생입니다.

“엄마, 오늘도 잘 다녀오셨어요?”

“응, 잘 다녀왔어.”

“오늘은 뭐 재미있는 것 했어요?”

“요가도 하고, 노래도 배우고 그랬지.”

엄마가 주간보호센터에 다닌 지 한 달이 되어간다. 일명 ‘노치원’ 학생이 되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9시에 노란 버스를 타고 갔다가 5시 정도에 집으로 돌아온다.


5월 20일에 장기요양등급 심사를 받았다.

요즘 들어 심사가 까다로워졌다는 지인의 말을 들었다. 결과가 잘 나오기를 노심초사 고대했다.

6월 4일에 등급이 나왔다. 4등급이다.

재가급여나 주간보호센터를 이용할 수 있다. 가족 모두 감사했다.


엄마랑 매일 저녁에 통화를 하는데, 대화가 조금씩 길어진다.

전에는 단조로운 일상이 반복되고, 종알거리는 모녀가 아닌지라, 할 말이 별로 없었다.

센터에 다니면서 엄마의 이야깃거리가 많아졌다..

“들어가면 하얀 신발이 있는데, 내 이름이 쓰여 있어.”

“주00 어르신 하면서 화장실도 데리고 가고, 밥 먹고 나서 칫솔도 갖다 준다니까!”

“다정하게 이름 불러주고, 어찌나 살뜰하게 챙겨주는지 몰라.”

“사람들이 내가 이쁘다고 해, 이쁜 구석도 없는데...

그래도 그 소리 들으니 기분이 좋드라.”


몸이 약해져서 농사일을 못하게 된 이후로는 대부분 시간을 혼자서 하릴없이 보냈다.

그런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고 안타까웠다.

시골집에 혼자 있으면 하루 종일 말할 사람도 없다.

귀가 어두워서 잘 들리지도 않는 TV만 바라보고 있는 게 힘들다.

동네에 가깝게 지내는 친구도 없고 경로당에 가 봐도 농번기에는 사람 구경하기 어렵다.

막내딸이 챙겨 다 준 반찬을 꺼내 혼자 먹는 밥은 맛이 없다.

“하루가 어찌나 긴 지 진력이 날 지경이여.”


엄마는 주간보호센터를 다니면서 시간이 하루가 매우 금방 간다고 좋아하신다.

새벽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준비를 마친다.

몸가짐도 가지런히 하고 옷도 깔끔하게 챙겨 입는다.

보청기를 끼고, 허리 벨트 차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집 안까지 데리러 온 보호사의 손을 잡고 주간보호센터를 등원한다.

“주00 어르신!”

평생 조그마한 땅 일구며 농사일하면서 살아온 엄마는 ‘00댁’ 혹은 ‘00 엄마’로만 불려 왔다.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 없었는데, 센터에 다니면서 이름을 다시 찾았다.

뒤늦게 찾아온 엄마의 전성시대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생활에 변화가 생겨서 그런지 엄마는 전보다 더 건강하고 활기 있게 바뀐 것 같다.

“엄마, 오늘은 어떠셨어요?”

“응, 재미있었지.”

목소리도 밝고 명랑하게 들려서 매우 기쁘다.

“오늘 뭐 하셨어요?”

“트로트도 배우고, 글씨 쓰기도 하고 요가도 했어.”


어느 날은 머리도 아주 짧게 잘라주기도 하고, 염색도 해주었다고 자랑하신다.

거기서 만난 친구들 이야기도 하고 점심이랑 간식도 챙겨줘서 좋다고.

꼭 유치원에서 돌아온 자식이 하루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얘기하는 것 같다.

나는 울 엄마의 엄마인양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를 친다.

“우리 엄마, 이제 학생이 됐네요!”


학교를 다니지 못한 엄마는 유치원부터 아니 노치원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주간보호센터를 다닐 수 있어서 자식 입장에서는 얼마나 마음이 편하고 좋은지 모른다.

혼자 시골에서 지내는 무료함과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줄었다.

센터에서는 그날그날 어떤 활동을 하는지 자녀들이 볼 수 있도록 밴드에 사진을 올려준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의 활동사진을 하이클래스에 올려주는 것처럼.

노년층이 늘어가면서 유치원은 줄어들고 여기저기에 주간보호센터가 생겨나 서로 간에 경쟁이 치열하다.

뭐든 잘하고자 하는 우리 엄마는 잘 들리지 않아도 열심히 따라서 하고 있다.

친구분들과 함께 찍은 엄마의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좀 묘하다.

대견한 마음, 안쓰러운 마음, 뭔지 죄송한 마음이 든다.


“엄마, 이제 학생들처럼 학교 가는 거야.

걱정하지 말고 친구분들이랑 재미있는 시간 보내세요!”

브런치 글 이미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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