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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베이에서 석양을
by
무량화
Dec 24. 2024
마악 장엄 낙조가 내리는 중이다.
태양의 다비식인가.
석양에 바다가 불붙고 있다.
유전지대에 번지는 불길처럼 맹렬하다.
겹겹의 물이랑에 난사되는 황금빛 혹은 각혈 같은 핏빛.
몰아의 한순간 전신만신 속속들이 불태우고 혼절해 버리는 격정이듯 겁나 두려운 빛무리.
진군하는 일단의 홍위군, 광기 같은 붉은 깃발에 속절없이 무장해제된 채 바다 산 하늘 모두 점령당하고 만다.
천지가 온통 화염에 휩싸였다.
하늘뿐이랴, 그러면서 만상은 시시각각 변한다.
하기사 어제는, 아까는, 이미 흘러갔으므로 굳이 부여잡지도 말 것이며
또한 매달릴 까닭도 없는 지나간 과거되어 묻혀 간다.
지혜로운 자는 하여 그에 집착하지 않는다는데.....
회색빛 수묵화였던 서녘 하늘 구름이 점점 수채화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듬뿍 물 칠해서 큼직한 붓으로 창공에 좌악 붓질하자 흘러내릴 듯 기명색 물기가 번진다.
그러고는 매 순간 변화무쌍한 묘기를 부리는 서녘 노을.
주황빛 혹은 홍시 빛으로 뭉뚱그려 이름 짓기 어려운 찬연하도록 황혼 매혹적이다.
삼원색 블루가 그러하듯 레드와 옐로 역시 오묘한 색의 조화로 숨 막히는 비경을 연출해 낸다.
괄게 타오르는 장작불이다가, 마그마 폭포처럼 흘러내리다가, 거칠게 쏘아대는 화염방사기이다가, 한 깊은 여인이 울컥 토해내는 절규이다가. 영광의 순간이듯 찬연하다가, 분노의 눈빛처럼 활활 타다가, 황녀 드레스인 양 화려하다가, 마지막 몰아쉬는 숨처럼 처연스럽기 그지없는 낙조.
모로락, 갈매기, 해달, 고깃배, 유람선,
서서히 쇠잔해 가는 빛의 자취, 곧 어둠의 베일이 이 모든 걸 부드러이 감싸 안으리라.
건너편 모로베이 윤곽과 항구 주변 상가의 불빛 점점 선명히 깨어난다.
여러 곳을 구경하긴 했지만 겨울 해는 너무 짧다.
일몰 후 금방 덮친 어둠.
모로베이에 접한 해변 식당 패티오에 앉았더니 해풍 더불어 밤공기 서늘했다.
주문한 크램차우더로 요기만 하고 굴과 곁들임 샐러드를 사가지고 어둠 속을 달렸다.
귀가하니 여덟 시, 그릴에서 굴 바비큐를 해 먹으려 했으나 피곤해서 약식으로 찜솥에다 쪄냈다.
간단히 상을 차려서 와인 곁들여 만찬 느긋하게 즐겼다.
오늘은 예정에 없던 허스트 캐슬까지 둘러봤으니 하룻만에 꽤나 강행군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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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지나니 만사 여유작작, 편안해서 좋다. 걷고 또 걸어다니며 바람 스치고 풀꽃 만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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