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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이 정도 재난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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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화
Jan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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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인데도 이번엔 요즘 유행하는 것에 냅다 덜미를 잡혔다.
눈 산으로 바다로 쏘다니다가, 거 보라는 듯 덜커덕!
심히 아픈 데는 없으나 목소리 맹맹해지는 목감기였다.
정초를 아깝게시리 병 같지도 않은 병으로 시난고난하면서 지냈다.
그 와중, 며칠 전에는 이틀에 걸친 환경 교육 연수회에 참여했다.
마무리는 영화 상영 시간이었다.
영화가 흥미 없다면 귀가해도 괜찮다고 했다.
긴 겨울밤, 거의 매일이다시피 영화 한 편씩은 때리고 잠드는 위인이 아닌가.
옳거니!
간만에 영화관처럼 넓은 강당 너른 화면으로 볼 테니 바짝 구미가 당겼다.
러닝타임 두 시간 10분짜리 한국영화였다.
안 그래도 뒤숭숭한 세상인데, 세기말을 다룬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를 그렇게 보게 됐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서 극소수의 주민만 살아남은 황궁아파트가 배경이다.
느닷없이 벌어진 초유의 위기 상황, 콘크리트 숲의 왕자였던 고층 드림팰리스 옆 단지의 황궁아파트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 안에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연속적으로 터지는 여러 극한상황들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처절한 인간 군상.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 다분히 반어적인 암울한 미래 세계를 들여다본 찜찜함은 있지만 연출은 나름 깔끔했다.
영화는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apocalypse) 장르의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인 SF 물이다.
일찍부터 손에 걸리는 대로 독서를 한 터수, 중학생일 때부터 괴도 뤼팽이나 셜록 홈스 같은 추리소설이며 SF 소설류를 즐겨 봤다.
이후 느 아르 물 영화부터 엄청난 자연재해로 문명과 인류가 종말을 맞는 참혹한 재난영화 샌 안드레아스, 볼케이노도 실눈 뜨고 다 봤다.
영화가 중반부에 들어서며 몰입도 높아질 즈음부터 객석이 하나 둘 비어가더니 점점 헐빈해갔다.
완벽하게 영화에 빠져 재미가 제대로 붙기 시작할 무렵인데 반짝! 실내조명이 밝혀졌다.
어느새 사람들은 죄다 가고 나만 오똑 앉아있었다.
렛플릭스가 없으니 유튜브에서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 검색해 봤지만 없었다.
앞으로 남은 상영시간은 삼십여 분, 마저 보고 가야겠다고 하자 얼른 조명을 꺼줬다.
이 사무실 퇴근시간은 아직 한 시간도 더 남아있으므로 느긋하게 영화를 봤다.
침 꼴깍 삼켜가며 혼자 보는 영화라 더 오롯이 집중이 되기도 했다.
폐허가 된 대규모 재난현장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럴싸하게 되살려낸 기술력이야 K 컬처 수준에 걸맞다 할 수 있겠고.
배우들의 연기력도 주연 조연 없이 자연스러워 극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들었다.
결국 현실 세계 어디에나 있는 디스토피아,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더라는.
한 국가에서 좀 더 규모를 확대해 이 현상을 지구에 대입시킨다면?
그러나 세기말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점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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