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롭게 웹서핑을 즐기다가 빛바랜 사진들을 만났소이다.
아주 오래 전의 기억들이 슬금슬금 무릎걸음으로 다가오더이다.
어이해 지나간 것들은 모두 다 그리움으로 추억되는지....
사진 속에서는 그 시절의 보리차 향까지 전해지더이다.
타다닥! 주판알 튕기는 소리와 난로 위 주전자 물 끓는 소리만 흐르던 교실.
뽀얀 안갯속을 헤엄쳐서 내게 다가온 추억의 편린들과 악수 나눈 토요일 오후라오.
학생들 시험지를 드륵드륵 밀어내던 등사기, 당시 소사 아저씨가 그 일을 대신해 주었다오.
70년 초 시골 중학교에 근무할 당시 친숙해진 먹지와 등사잉크.....
지금은 흑백사진으로만 남은 그 시절이 새삼 아름다움으로, 정겨움으로 다가오더이다.
삼십 리 길 멀다 않고 새벽부터 걸어 등교하던 아이들은 지각도 한 적이 없었다오.
찐 밤이며 탐스러운 감 가지를 슬그머니 교탁에 얹어놓던 순박한 아이들.
지금은 그들도 60대 장년이 되었더이다.
그들 모두가 그리워짐은 순전히 날씨 탓이리까.
눈바람에 손발이 꽁꽁, 귓불 시린 한겨울.
충청도엔 초겨울부터 삼동 내내 눈도 푸지게 왔다오.
당번이 일찌감치 등교해서 불쏘시개 연기에 눈물 빼며 달궈놓은 무쇠 난로.
그 가장자리에 빙 둘러 겹으로 둘러섰던 아이들.
시퍼러둥둥 얼었던 볼이 풀리며 발그레 익어갈 즈음이면 시작종이 땡~뗑 울려 퍼졌더이다.
두 시간째 수업쯤부터 난로 위로 겹겹 올려지던 알루미늄 도시락통들 생각나오이까?
고소히 눌어 가는 보리밥 혼식에 김치 냄새 콩자반 냄새 계란지단 덥혀지는 내음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나이다.
예전엔 그랬다오.
우등상, 정근상...... 상장을 타오면 바람벽에다 자랑스레 터억 붙여놨소이다.
당시야 액자가 어디 흔하더이까.
가문의 영광까지는 아닐지라도 공부 잘하는 자식이야말로 부모에게 있어 긍지이자 보람.
지금은 투자 대비 성공률을 따지고 빈부조차 대물림된다지만 당시야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이었다오.
사진 속의 학생들은 단기 4290년대에 학교를 다녔다면 대충 셈해봐도 지금 칠십 대.
졸업장 상장으로 미루어 응당, 잿더미 된 전쟁 후유증으로 피폐해진 후진국을 개발도상국 나아가 산업국가로 일으켰을 주역들.
한국의 크나큰 동량 되어 일하시다 은퇴 후 평안히 지내시리라 믿고 싶소이다.
초가삼간이 대부분이었던 시절, 온 가족이 모리모리 한 방에 모여 살던 때이더이다.
공부방, 내 방이 따로 있을 리 만무라 방 한구석에 놓인 앉은뱅이책상이며 나무 고리짝이 서로 이웃해 있었소이다.
투박하게 짠 책꽂이와 대나무 한마디를 잘라 만든 연필통에 말굽자석도 보이고...
너무도 친근한 금언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를 학생마다 머리맡에 써붙여 놓았더랬다오.
한마디로 책상 앞에 붙박이처럼 앉아 열심히 공부하면 탄탄대로 미래가 보장된다는 말쌈 아니더이까.
유일한 노리개였던 책상 위에 놓인 인형 셋을 아시는 분?
'못난이 삼 형제'라고 60년대 초부터 꽤나 유행을 탄 고무인형이었다오.
인형 머릴 빗기며 만지작거리느라 손에 배었던 고무 냄새조차 아련하니 지금은 그마저 그립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