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능해변
<어린 왕자>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섬 비양도가 저만치 앉아있는 바닷가 마을 금능.
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모자같이 생긴 삽화부터 첫머리에 나와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어린 왕자>는 어른을 위한 동화다.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에게 소행성에서 온 어린 왕자는 양을 그려달라고 부탁한다.
비행사가 그려준 양을 보고 어떤 양은 병들었다, 어떤 양은 숫양이다, 또 어떤 양은 너무 늙었다며 번번 퇴짜를 놓는다.
그러다 대충 그린 네모난 상자를 내밀며 네가 원하는 양은 그 안에 들어있다고 말한다.
어린 왕자의 얼굴이 그제사 환해지며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거라며 반긴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던가.
비행사는 여섯 살 때 꿈이, 멋진 화가가 되는 거였다.
무한한 상상력에 따라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을 그렸다.
아이다운 감각으로 그린 그 그림을 어른들은 그저 모자라고 했다.
그건 모자를 그린 것이 절대 아니었다.
코끼리를 삼킨 무서운 보아 뱀을 그린 것인데 하나같이 그림을 본 어른들은 모자가 뭐 무서우냐고 했다.
아이는 하는 수없이 보아 뱀의 속이 보이도록 그림을 다시 그렸다.
어른들은 눈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면 상세한 설명이 따라야 이해된다는데 저으기 실망해 아이는 화가의 꿈을 접고 만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그 그림을 모자라고 하지 않고 단번에 본질을 읽어냈다.
원하던 양을 그려준 비행사와 오래전 꿈을 알아봐 준 어린 왕자, 둘은 사막에서 친구가 된다.
돌담 곳곳에 순수한 동심이 시화로 피어나 반겨줘서일까.
올레길 14코스인 금능 마을 고샅길을 하늘빛과는 달리 싱푸른 마음 되어 걸었다.
"금능 포구 가는 길에/ 강아지풀 만났다
강아지 꼬리처럼/ 나를 보고 살랑살랑
내 동생 가져다주려고/ 네 마리 데려왔다."
이진우 어린이가 쓴 <강아지풀>이란 제목의 시다.
오래간만에 모처럼 어린 왕자를 떠올리면서 잠시나마 순수했던 유년기로 회귀케 해 준 고마운 금능해변.
동시 편 편마다 읽어가며, 부락 유래 훑어가며, 단물깍과 금능 원담 뜻 새겨가며, 벽화 근사한 집과 그리스풍 집 구경하며 천천히.
월령마을 밭길 지나고부터 민트 블루 물빛 고운 바다 끼고 걷는 길, 금능해변 거쳐 곶자왈 같은 숲길도 잠시 스쳐 지났다.
서귀포 남원 부락쯤에서 슬그머니 사라진 환해장성 돌담이 불현듯 다시 이어지는 바닷가 풍경도 반가웠다.
멀리서 친구들이 서귀포 나의 정와(靜窩)를 찾아오면 꼭 보여주고 싶어 앞장서 찾아가는 장소가 몇 있다.
눈꽃 환상적인 천백고지와 애기동백 흥건하게 낙화진 위미리처럼 계절에 따라 선정지 달라지나 어느 철이라도 좋은 비자림이며 성산일출봉이며 금능해변이며....
이번에도 옛벗이랑 아끼는 최애장소들, 그야말로 '나의 보물창고대개방'을 하였음은 물론 맛있는 밥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도 들르곤 했다.
벗이 바다 건너 먼 곳에서 비행기 타고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라 했듯.
하므로 그중 아무리 빠듯한 일정일지라도 빠트릴 수 없는 장소가 바로 여기.
언제 와봐도 가슴 설레게 만드는, 그만큼 눈부신 금능바다다.
아까까지만 해도 곳곳에 드리워졌던 구름층 말짱 날아가 푸르게 펼쳐진 하늘.
저만치 야자수 도열해 선 협재해수욕장이 점차 가까워지자 물 흥건히 들어찬 만조 바닷가에 내려가 한참을 거닐었다.
바다 건너편 비양도는 헤엄쳐 갈 수 있을 듯 바로 옆에 따라와 있었다.
한림항에서 지척거리인 비양도 가는 배를 타고 건너가면 한 시간 안에 섬 전체를 다 밟아볼 수 있다.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능길 119-10
연락처 : (+82) 064-728-3983~4
금능 원담 : 밀물 때면 물살에 따라 고기들이 안쪽으로 들어왔다가 썰물이 되면 원담 안에 갇혀서 어민에게 잡히고 만다
단물깍:예전 상수도가 없던 시절 해변에서 솟아나는 용천수를 가둬서 우물처럼 사용하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