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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월에는 카페만이 아니라 소금빌레도 있어요

by 무량화

오래전 '차마고도' 다큐에서 티베트 산간의 염정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었지요.

안데스산맥에 있는 소금계곡 마라스에서도 탄복을 했더랬지요.

주어진 환경이 열악할지라도 사람들은 그 속에서 나름 생활의 슬기를 발휘하더라고요.

천일염은 갯벌을 논처럼 반반하게 다듬어, 거기에 해수를 가둬두고 햇빛과 바람으로 바닷물을 증발시켜 얻는데요.

애월 구엄리에는 진기하게도 돌염전이 다 있더라고요.

소금을 캐내는 소금광산은 들어봤어도 판판한 자연암반 위에 만든 염전이라니요.

놀랍게도 선조들은 자연을 이처럼 지혜롭게 이용하였어요.




위치상 해안도로 바로 옆이 돌염전 자리라 발길 저절로 닿게 되었는데요.

돌염전 터로 내려가 주변 지형을 찬찬히 살펴보았어요.

너른 암반만으로 구성된 게 아니라 바위 중간에 푹 패인 천연 물 저장고까지 있더라고요.

우물처럼 바닷물이 갇혀 있으니 그 물을 길어다 손쉽게 염전을 채워주면 되겠더군요.

소금빌레라 불렸던 이 돌염전은 제주어 빌레(너럭바위)라는 널펀펀한 현무암 위에다 찰흙으로 경계 둑을 쌓아서 만들었는데요.

조선 명종 때 부임한 '강려'란 목사가 구엄리 주민들에게 지형지물을 활용해 소금 얻는 방법을 가르쳤다네요.

부모가 자식을 위하듯 고을 백성을 진심으로 위하는 목민지관(牧民之官)을 만나 구엄리 주민들은 생업의 기반 탄탄해졌겠지요.


바닷물이 결코 상하지 않음은 3%의 염분 덕이라 하며 우리가 생존하는데도 꼭 필요한 물질이 소금이잖아요.

성서에서 정결한 소금 같은 존재가 돼라 가르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금처럼 귀해서 하얀((素) 금이란 이름을 다 붙였을 정도로 소중한 소금.

그 소금밭을 구엄리 지나다 뜻밖에 만났던 겁니다.

기대치도 않았던 횡재에 앗싸~이게 웬 떡이냐! 싶었지요.

무심히 풀밭 걷다가 행운의 네 잎 클로버를 찾은 양 아이처럼 흥분이 되더라고요.

거북 등딱지 무늬 지듯 한 돌염전을 비롯해 인근 해안 풍경을 마구마구 찍어뒀네요.

강박적으로 과도하게 사진 찍기, 이거 완전 중독 수준이지~ 스스로 어이없어 끌끌 혀를 차면서도 여전 ing.



정오 가까워 도반으로부터 전화가 왔더랬어요.

며칠 걷지 않았더니 심신이 찌뿌드드하다며 만나서 어디든 걸으러 가자고 하더군요.

이심전심, 그렇게 올레 16코스가 든 애월을 가기로 즉석 결정을 했네요.

따지고 보면 중독 증세에 해당되기는 걷기 역시 마찬가지 같아요.

근하신년이라 했는데 삼갈 근(謹) 뜻 그대로, 정초라도 근신하며 지내보려 했지만요.

이틀 정도 두문불출 가만히 머문 것만으로도 그새 좀이 쑤시니 말이에요.

서귀포에서 애월까지는 이동 시간이 제법 걸리는지라 카페에서 차 한잔 마시고 소금빌레 구경 잠시 하는 동안 어느새 노을빛.


애월해안로를 타고 고내리 지날 무렵 거리엔 조명 밝혀지고 방파제에서는 새해맞이 불꽃 펑펑 터지더군요.

그때부터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지만 도중에 택시까지 타고 애월 카페촌에 들러 야경 보고 돌아오느라 꽤 늦고 말았습니다.

삼가는커녕....... ㅎ

그러나 애월엔 유명 카페만이 아니라 소금빌레도 있더라는 걸 걷다가 봤으니 소득이 영 없는 건 아니더라고요.

들뜬 감각을 자극하는 판타지에의 도취 그에 반해 실제적으로 부패를 막아주는 불변의 가치를 지닌 소금이잖아요

감미로움과 짠맛, 서로 확연히 대비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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