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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꽃 피면 멸치회 생각

by 무량화


수십 년도 더 전의 어느 해 봄날.

엄마가 기차를 타고 부산에 오셨다.

며칠 지내시다 곧 서울 올라갈 날짜가 가까워졌다.

공직에 있는 언니 대신 살림살이 윤나게 거두셨기에 오래 집을 비울 수 없었던 엄마.

우리 집에 오셔도 그저 냄비 광나도록 닦아놓거나 고추장 같은 거 담느라 시종 바삐 종종걸음쳤다.



손자 대입 합격 소식을 듣고 추운 겨울, 가족 모두가 석굴암 올랐을 때 그리도 흐뭇해하셨던 엄마.

초등학생인 손녀와 손 맞잡고 토함산을 내려오며 환히 웃던 그때가 어언 삼십여 년 전.......

구경 좋아하는 양반인데 부산에 머무는 동안 태종대로 어디로 좀 모시고 다녔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비교적 건강체이셨으나 팔순이 가까워지며 척추협착증으로 걷기 힘들어는 하셨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만 있는 성정도 아니라서 손녀 데리고 뒷산 언저리 곧잘 오르곤 했다.

부산 인근 범어사도 가볼 만하고 양산 통도사도 하루 일정으로 충분히 다녀올만한 곳인데 왜 안 갔을꼬.

우리 애들이 미션 구경 가자거나 경주 나들이 가자 할 적마다 슬그머니 고개 쳐드는 회한에 나도 모르게 그만 수수로워지던 마음.



그 봄 화창한 일요일, 올라가시기 전에 동해 바람도 쐬고 멸치회 드시자며 웬일로 무뚝뚝한 경상도 사위가 앞장을 섰다.

기실 마뜩치는 않았던 것이 엄마나 나나 회 종류를 못 먹는 식성, 바다낚시로 잡아온 볼락회도 여태 입에 넣어본 적 없던 터.

회 대신 오징어나 소라를 데쳐 숙회로 먹어도 되니 일단은 시원한 바다도 볼 겸 우리는 차에 올라 달맞이고개 넘어 내처 달렸다.

기장 대변항에 이르니 비린내 풍겨대는 해변가는 젓갈 사려는 이들로 북적거렸고 식당마다 손님들로 성시를 이뤘다.

한창 제철 대목인데 우리는 용케도 등꽃 시렁이 얹힌 명당자리 차지하고 난생처음 멸치회라는 걸 접하게 되었다.

생각 같아선 비리기만 하고 살도 무른 멸치로 무슨 회? 싶은 게 보나 마나 식감 물컹하고 비릿하리라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맛깔스레 미나리 들깻잎 부추 넣어 벌겋게 무쳐내온 푸짐한 접시를 보자 슬그머니 식욕이 동했다.

한번 드셔 보이소, 내키지 않으면 오징어 데쳐달라카지요, 엄마에게 상추에 싼 회를 권하자 받아 자시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여 너도 먹어봐~ 고갯짓과 눈빛으로 보낸 맛이 괜찮다는 신호였다.

괜히 깨작거릴 바엔 아예 손도 대지 말고 나무젓가락도 꺼내지 말자, 했는데 어느새 깻잎에 올려진 회가 넝큼 입에 들어갔다.

안 먹는다던 내가 그날 아마도 제일 많이 멸치회를 먹었지 싶은데 물론 엄마도 아주 맛있게 잡쉈다는 말씀 두고두고 하셨다.

등꽃이 피면 해마다 그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한국에 가서 철이 닿으면 다시 멸치회를 먹어봐야지 별렀다.

역시 특별히 여기는 음식 맛은 추억 속 기억에 새겨진 맛이고 향수 어린 맛을 최고로 치는 거 아닐까.

올해도 멸치회 철이 되자 바닷가 멸치회 전문 식당을 찾게 됐다.

내심 벼르던 대로 대변항에 들러 예전 등꽃 시렁이 있던 식당을 찾아보기로 했다.

어림짐작으로 골목길 이리저리 두리번거려도 보고 물어도 봤으나 그 집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발품만 실컷 팔다가 하는 수없이 초등학교 옆에 있는 한 횟집에서 멸치회를 맛봤다.

우선 바다가 내다보이는 식당 깔끔한 데다 음식도 밑반찬까지 두루 맛깔스럽고 정갈했다.

그 무엇보다 오래전 엄마와 처음 먹었던 그 멸치회의 맛, 기억회로에 새겨진 그리운 맛을 재현해 준 것이 기껍고 고마웠다.

앞으로 멸치물회가 먹고자프면 서슴없이 다시 그 집을 찾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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