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백서향 향훈 온데 스민 도립 곶자왈

by 무량화 Feb 26. 2025
아래로


제주에서 가장 많은 곶자왈이 분포돼 있는 서귀포시 한경・안덕지역에 속한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은 규모 면에서도 대단합니다.

태곳적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원시의 숲 곶자왈은 제주의 허파로 불리는데요.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면서 독특한 생태계를 이룬 곶자왈은 용암이 불규칙하게 굳으며 형성된 척박한 암괴 지대이지요.

온통 울퉁불퉁한 돌 밭이라 경작지로도 쓸모없어 원래는 외면당하던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생태환경 보존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며 그 가치가 재평가돼 각광받기 시작했답니다.

전혀 손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숲에 북방한계식물과 남방한계식물이 공존하는 특이지대였던 거지요.

상록수 낙엽수 활엽수 덩굴식물 양치식물 희귀 난 뒤엉킨, 원시림이자 처녀림이기도 합니다.

그처럼 돌이 많고 나무와 가시덩굴이 엉켜있는 숲을 제주사람들은 곶자왈이라 부르더군요.




탐방로는 포장된 길이 아니므로 걷기 편한 신발을 신는 게 좋고, 구두나 샌들 착용은 삼가야 합니다.

일부 구간은 매트를 깔거나 데크길도 있지만 길 대부분이 험한 돌이나 나무뿌리가 솟아있어 조심스레 걸어야 한답니다.

대표적인 용암빌레 지역인 이곳 숲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동굴 천장이 무너지며 암석 틈새에 생긴 숨골(풍혈)도 있고요.

용암이 식어가며 현무암 표면이 육각형으로 갈라진 '거북등 절리'도 만나봤네요.

수풀 우거진 용암 협곡 바라보다가 숯가마터 설핏 지나치게 되었고 허물어져 가는 잣성도 더러 스쳐갔지요.

심지어 4・3 흔적인 주민들의 생활터와 유격대들이 석축을 쌓아 올린 참호 시설도 두터운 이끼에 덮여 있더군요.

나무들이 워낙 울울창창 조밀하게 뒤엉켜있는 밀림 같은 숲이라 맑은 날에도 햇살이 별로 들어오지 않아 분위기 좀 괴괴한 편인데요.

마구 뒤꼬여있는 나무 형태 기이했으며 조금치라도 햇빛 더 받을 요량으로 하늘로만 치솟아 나목들은 키만 껑충하데요.

그렇듯 곶자왈엔 우람한 나무와 으름덩굴・칡덩굴과 양치식물이 서로 의지하며 얼크러 설크러졌고요.

습도가 높아 민달팽이류와 뱀, 진드기 같은 벌레, 직박구리며 섬휘파람새들을 만날 수 있어 마치 원시의 숲에 든 느낌이 든답니다.

해서 아마존 정글이나 아프리카 오지 탐험대가 된 착각까지 일으킬 정도라니까요.

숲 그늘 짙어 어둑신한 데다 공기 습습해 종달새처럼 명랑한 기분파에게 보다 사색과 명상하기 적합한 장소일듯합니다.

물론 각자 느낌은 다르고 취향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아무튼요.



간밤 내내 거칠게 비바람 몰아쳤더랍니다.

아침나절 날씨는 들었으나 한라산에 운무 자욱이 끼었고 강풍 세차게 불었습니다.

이런 일기에는 바다보다 안온한 숲을 찾는 게 제격이지요.

안개 혼령처럼 떠다닐 비자림에 갈까 하던 중이었는데요.

때마침 옆집에 사는 도반이 백서향 한창이라며 곶자왈에 가는 게 어떨까 묻더군요.

바람 어수선히 부는 데다 습습한 기상 상태로 보아 딱 안성맞춤인 장소라 오케이~했답니다.

사실 곶자왈은 상쾌하다기보다 사방에서 눅눅하고 칙칙한 기운 감돌아 음산하기조차 하더라고요.

특히 선흘 곶자왈에서는 어이 그리 괴이쩍고 스산스런 느낌이었던지요.

피톤치드 대신 음습한 공기가 떠돌며 내게 깃든 양의 밝은 에너지를 빼앗아 갈 거 같아 몸이 움츠러들었는데요.

이후 곶자왈 탐방은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도립 곶자왈은 백서향 꽃 향훈과 맑은 새소리가 있어서인지 아주 쾌적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아니나 다를까, 한수기길에서 실제 한 여성이 공황장애를 일으키는 걸 목격했네요.

폐소공포증처럼 사방에서 조여 오는 듯 숨 갑갑하다며 얼굴 하얗게 질리면서 손을 바르르 떨더라고요.

평소에도 지하철을 타지 못한다는 그녀, 순간 피가 사르르 잦아드는 느낌이 들며 혼절해 구급차를 타기도 했다더군요.

우린 백서향 보러 일부러 왔다면서 그녀를 안정시키고자 향기를 맡아보라 하니 그때부터 차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답니다.

지름길인 빌레길로 해서 빠르게 출구까지 바래다주고 우리는 다시 오찬이길을 걸으려고 숲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처음엔 오른쪽으로 돌았기에 이번엔 왼편 길을 따라 숲에 들어섰답니다.

한 십여 분 후 높직이 서있는 전망대에 닿았지요.

강풍이 휘몰아쳐 난간을 붙잡고 전망대 꼭대기에 오르자 드넓게 펼쳐진 수해와 주변 오름 등을 조망할 수 있었는데요.

숲에 빼곡히 들어찬 나무들을 보자, 전에 양탄자처럼 펼쳐진 펜실베니아 푸른 평원을 기내에서 내려다보던 생각이 문득 나더군요.

낙하산을 펼치고 폴짝 뛰어내려도 긁힌 자국 하나 없이 사뿐 숲에 안길 것 같았거든요.  

저 아래로 한라산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울멍줄멍 모습 드러냈습니다.

남으로 산방산 단산 송악산, 서쪽으로는 금악오름 저지오름, 동에는 고군산 월라봉까지 한눈에 들었습니다.

이미 올랐던 산이나 오름은 실루엣만 봐도 그 이름 담박 떠올라 반갑더군요.

기상 쾌청하면 푸른 서귀포 앞바다 섬까지도 보일 것 같지만 우중충한 날씨라 죄다 흔적 사라졌고요.

그제서야 도립 곶자왈 주소지가 대정읍, 영어마을을 지나서 왔음이 비로소 수긍되더군요.

세찬 바람 때문에 오래 머물 수 없어 계단 내려오다 보니 저 아래, 용도가 말먹이 물이라는 정방형 연못이 나무 그림자 띄우고 있었습니다.


 
침침한 골짜기 마다하지 않고 청신하면서도 고아한 향기 풀어내는 유백색 꽃 백서향(白瑞香).

이름 자체가 상서로운 향기를 품은 하얀 꽃, 예로부터 향기가 천리 간다는 백서향입니다.

숫제 3월 곶자왈은 온 데가 백서향의 정원이었습니다.

아니 정원 이상의, 향그러운 천국을 골골에 펼쳐두고 있었답니다.

숲길 어디서나 후각을 매혹시키는 향으로 숲의 정령이 된 제주 백서향 나무.

꽃 향이 아니라면 멋대로 얼크러진 숲 덤불에 파묻혀 존재조차 미미할 백서향나무였습니다.

거목들 서로 키재기 하며 솟구쳐 오른 발치에 상록의 푸른 잎새 외엔 도드라진 특징 없는 자그마한 백서향.

온 하루를 곶자왈 탐방코스 빙 돌며 그 향에 취해 천상의 은총 누려보았으니 오늘도 축복 충만한 봄날 하루!

꽃말이 꿈속의 사랑이라던가요, 상기도 코 끝에 감도는 그 향 꿈길에도 이어지지 싶네요.

만화방창 온갖 꽃 다투어 피는 봄날, 백서향으로 하여 도립 곶자왈은 향기로운 장소로 내 안에 각인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요, 제주의 삼월은 백서향 향으로 기억되지 싶습니다.
 


주소: 63644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에듀시티로 178 제주곶자왈도립공원  

Tel: 064-792-6047
 

작가의 이전글 봄비 속에서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