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 맞기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만 예전부터 무서워 기피한 예방주사다.
어릴 때 학교에서 단체로 소아마비며 결핵 예방접종 등을 받아야 했다.
그 당시는 치과 검사도 교실에서 했는데 피 묻은 솜뭉치와 뽑힌 유치가 담긴 접시만 봐도 졸도할 거 같았다.
접종을 받아둬야 할 예방주사 종류도 여럿이었는데다 봄 가을로 담임 앞에서 필히 회약을 복용해야 했던 때다.
며칟날 예방접종을 할 거란 말이 떠돌면 그때부터 전전긍긍, 내심 온갖 묘수를 다 동원시켰다.
주사를 피하려고 아예 그날 결석을 하는 꾀병까지도 불사했던 터다.
그만큼 주삿바늘에 겁이 많았다.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여러 차례 겨울을 맞았다.
해마다 11월이 되면 연방 차원에서 플루 예방주사를 맞으라는 홍보를 연신 해댔다.
실제 너싱홈에 머무는 노인층, 특히 오래전부터 기저질환이 있던 분들은 감기에 매우 취약했다.
독감이 돌았다 하면 너싱홈에서는 폐렴 환자들이 집단 발생해 낙엽처럼 우수수 지곤 했다.
마리아씨 플루 맞았어? 올핸 한파가 심해 감기도 극성을 부린다니 미리미리 예방주사 맞아 둬.
꽝꽝 얼음이 어는 뉴저지라 주변에서들 염려하며 플루 주사 맞으라 독려해싸도 꿈쩍하지 않았다.
하물며 날씨 온화한 캘리포니아에 와서는 전혀 신경도 안 썼다.
이십 년 동안 한 번도 플루 예방주사를 맞지 않았지만 그간 독감쯤 끄떡없이 씩씩하게 잘 지냈다.
물론 주사 맞는 일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불가피한 경우, 이를테면 영주권이나 시민권 서류 준비를 하기 위한 신체검사는 받아야 했다.
특정 질환에 대한 예방 접종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므로 꾹 참고서 각종 주사도 맞았으며 이 악물고 채혈도 받았다.
부득이 치과치료 차 국소마취 주사를 맞긴 했지만 어떤 질병에 대해 예방 차원에서 주사 맞은 기억은 유년기뿐이다.
타이레놀 한 알 복용하지 않고 이민살이 무탈하게 잘 살아왔는데 이게 웬일?
귀국하자마자 그누메 코로나로 온 나라가 야단법석, 난리 치는 통에 곱다시 1차 2차 3차까지 예방접종을 받았다.
접종 차수와 접종 일자가 명시된 코로나 백신 접종 증명서가 없으면 외부 활동은 전면 봉쇄됐다.
다중이 모이는 교육 활동이나 식당에도 못 들어가니 집구석에서 꼼짝하고 않고 두문불출해야 할 판.
오죽하면 정치 방역이란 기묘한 단어가 자연스레 회자되기도 한, 삼년간이 아닌가.
미국에 있는 딸내미는 예방접종을 한 번도 받지 않았지만 클리닉 운영에 아무런 차질이나 문제를 겪지 않았다.
법으로 강제 규제 또는 일률적으로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아닌 철두철미 개인 자유를 신봉하는 사회라서 일까.
주사 맞기 너무너무 싫은 차에 옳다구나, 처음부터 이참저참 백신 맞지 않으려 요리조리 빼봤다.
하지만 그물에 물고기 몰아넣듯 철저히 여론을 몰아가는데야 올가미에 걸리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백신 접종을 받지 않으면 마치 반역이라도 한 양 눈총 받는 데다 따돌림 대상이 될테니 눈 꾹 감고 주사를 생짜배기로 맞았다.
암묵적으로 사회 전체가 백신 접종률 100% 달성해서 코로나로부터 해방되자는 슬로건을 내 건듯 했다.
더구나 밖에 나가선 백신 인증서 없이는 끼니도 못 챙기게 됐으므로 도리가 없었다.
따라서 날 잡아잡수! 수준의 포기상태에서 어거지로 주사를 맞아뒀다.
접종 후 사고가 여러 건 생기기도 했으나 생사문제는 하늘에 달린 것, 그 때문에 우려한 건 아니었다.
희한한 건 백신 맞고도 코로나 걸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부작용으로 생고생하는 예도 허다했으니까.
무증상 확진자도 많은 데다 코로나 확진자 가족 관리에 숭숭 헛점이 뚫린 걸 보고 회의감이 들기도 여러 번이다.
암튼 예방접종 덕인지 코로나의 포로가 된 적은 없다.
삼세번이면 뭐든 끝나는 줄 알았는데 한여름에 다시 신규 확진자 수가 팍팍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 백신 접종을 하라고 사방에서 쪼아댔다.
다문화가정 한글 수업에도 당장 영향이 미칠 모양이었다.
백신접종일을 전산에 등록해야 한다며 4차 접종 관계를 물어왔다.
이처럼 간접적으로 압박해오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솔직히 코로난지 오미크론인지가 겁나서라기보다 독려에 못 이겨 접종 예약을 해놨다.
방학을 맞아 옆집 현주씨도 서울에 갔으니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타이레놀을 미리 준비해뒀다.
어제 오후 서귀포 시내 가까운 병원에 가서 4차 백신 접종을 했다.
접종 완료 후 아들네와 언니에게 백신 맞았노라고 알렸다.
혹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므로 안위에 대해 수시로 확인을 해보라는 뜻이었다.
3차까지는 부산에서 접종을 하였기에 아들 옆에 머물며 경과를 지켜봤다.
당시는 바로 곁에 주치의를 두었으므로 아무 걱정이 없었다.
이번이 네 번째 접종, 여태까지도 별일 없었으니 뭔 일이야 생길라구....하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며늘도 괜찮냐며 연락이 왔다.
2022년 여름, 만일의 경우를 상정하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백신을 맞았는데 무사히 지나갔다.
모쪼록 억지 백신 접종 이번으로 끝이길!
열은 안 나지만 주사 맞은 팔이 여태껏 뻐근하니 묵직하나 약 먹어야 할 정도는 아니다.
주사 맞은 덕에 어제는 초저녁부터 무조건 '쉼' 모드로 전환, 열 시간 넘게 숙면을 취했다.
오늘 낮에도 수업 마친 뒤 오후 내내 잠을 잤다.
팔은 우리하나 푸지게 잠을 자고 난 지금은 심신 날아갈듯 개운하고 산뜻하다.
지레 호들갑을 떤 게 좀 겸연쩍다.
그래도 사흘까지 조신하게 몸 사린채 조섭 중이다.
하긴 이 나이에도 지나치게 겁쟁인 겨? 엄살이 심한 겨?